구름 낀 회색 하늘에서 찬비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축축한 날이 계속되는 11월이면 겨울은 멀지 않다. 대자연은 잠자리를 준비한다. 낙하하는 나뭇잎들을 모아 식어가는 흙을 덮어 떨어진 씨앗이 얼지 않게 보호한다. 숲속의 좁은 산책길의 풀들이 말라가고 있다. 물기를 잃어 바싹거리는 소리가 가을바람에 석인다.
도시민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염병을 피해 숲속으로 몰려와 오염된 공기를 내뿜고 태고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는다. 숲속의 맑은 공기 속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연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인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짜증과 피로를 가득 담아와 토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다.
가을이 자리를 내놓고 떠날 준비를 하면 어느새 기다린 겨울이 계절의 바턴을 넘겨받는다.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두 계절의 인계인수는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험악한 사건과 달리 평화스럽게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자연을 사람들은 사랑한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목으로 스며드는 찬 공기를 느끼고 가을 옷 위에 겨울 목도리를 걸친 것이 보인다. 철로 다리아래 구석에서 살아온 노숙자들에게 하루가 다르게 아스팔트에서 냉기가 스며들기 시작하여 겨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린다. 다가올 한겨울과 함께 노숙자인생 의 한해도 끝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아껴둔 찬 맥주로 슬픈 마음속을 적신다. 갈 곳 없는 인생을 손잡고 같이 울어줄 사람 도 없다. 긴 겨울을 보낼 생각을 하며 아직 조금 남은 가을의 마지막 온기를 느껴보려 다시 자리에 눕는다 . 철없는 아이들만 날짜를 세며 다가올 니콜라우스와 성탄절을 기다린다.
11월 2일 지난 50년을 거의 빼지 않고 참석하는 토니 생일 모임에 가는 길 은 변한 게 없었다. 베를린 테겔에 사는 그녀는 이곳에서 제일 오래된 지인이다. 간신히 찾게 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파티장소를 찾아 걷는데 이전에 보지 못한 이상하게생긴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외형은 노란색 시내버스의 모습인데 몽땅하게 잘라 놓은 듯 보통시내버스의 삼분의 일 크기로 단층버스다. 유리창문을 통해 서너 명의 여객이 앉아있이 보이는데 운전석 이 비어있었다.
새로 만들어 세운 듯한 버스정류소에 정차하면 소리 없이 문이 열리고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 내리고 줄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이 미니버스에 올라탄다. 내가 정신을 잃고 바라보는데 옆에선 얀이 기사 없는 자동식 테스트 시내버스라는 설명을 했다. 이미 매스컴에서 예고한 일로 요금 없이 시행하는 것으로 손님들 역시미리 신청을 한 테스트 손님들 이라고 했다. 이들은 그 대가로 기사 없이 달리는 버스속의 느낌을 설문서를 통해 발표할 것이다.
다음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 사라지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면서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 역시 영화 세트 속에서 관객의 한 역할을 맞은 것 같은 망상 속에 잠겼다. 코로나를 피해 집안에 들어박혔다가 오랜만에 나온 나인데 버스가 운전사 없이 혼자 달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거리의 번호를 확인 하여 찾은 파티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걸어온 보도 옆으로 다시 그 몽당 버스가 그림처럼 서서히 달려오고 있었다. 시민들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 속도를 줄여 테겔 중심기를 돌아 달린다고 했다. 다시 모퉁이를 돌아 나가 지정 정류소에 다시 정류하는 것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시내 중심지에 자리한 베를린 교통부 첸트룸 건물 안에서 누군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마우스로 조종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황당무계하게만 보였다. 나의 놀라움은 상관하지 않고 기사 없는 자동버스는 로봇처럼 정확하게 같은 속도로 달리다가 정차했고 모퉁이를 용케 돌아서 갔다
오직 나만 이해가 느려 정신을 잃고 바라보는 듯하고 테겔거리는 변한게 없다. 무표정하게 앞을 보고 걷거나 헨 디를 귀에 붙이고 지껄이는 중년남자와 자전거를 타고 차도를 달리는 젊은 남자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젊은 여자 역시 놀라는 기색이 없다. 비현실적인 현실이다. 코로나를 피해 외출을 피해온 내가 오랜만에 거리에 와서 보는 현상인가 ?
이날 모여 앉은 생일 손님들은 지치지 않고 비루스 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샴페인으로 축배를 하면서도 나는 그미니 자동버스생각을 했다.
12월 26일 성탄절의 두 번째 날이다. 5일후면 묵은 해가 끝난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이 마지막 성탄절 날과 함께 시작되었다. 내가 즐겨 걷던 숲속으로 산책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전야에 내리던 눈발이 저기온의 숲속 나뭇가지 위에 걸려 있다. 잠깐 내린 눈의 흔적이다. 오랜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게 될까 좋아한 눈 송이었는데 땅에 도착하자말자 녹아 없어져 밤새 곳곳에는 얼어붙은 땅과 빙판으로 변했다.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사 없이 시내를 달리게 될 몽당버스를 생각했다. 과연 다가오는 새해에는 기사 없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게 될 것인가 상상을 했다.
숲속의 얼음판에서 두 번을 미끄러지며 온몸을 다시 제 정리하며 걷다가 거리공사로 쌓아 논 모퉁이 토담을 지나다가 넘어져 쓰러졌다. 쓰러지는 대로 그냥두면 몸이 자연스럽게 대지위에 넘어질 것인데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바람에 오히려 왼발이 디딜 곳을 못 찾고 뒤로 삐어져나가 결국 일자로 뒤로 넘어졌다 .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심한 진통이 발목을 감쌌다.
부상자가 되어 앰뷸런스로 실려 갔다. 발목뼈 골절진단을 받고 깁스를 한 다리를 끌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연말연시 인사를 하는 지인들에게 한쪽발목을 못 쓰게 된 불행을 이야기를 하면 위로의 표현을 한다.
“어차피 바깥에 나가면 안 되는데 오히려 잘됐지 뭐냐 ? 핑계가 좋잖아 ? 이유가분명하니까 !”
오히려 잘됐다고 한다.
억지 춘향이가 된 내 마음을 모르는 소리다. 이럴수록 유머를 잃지 않고 여유 있게 다가올 날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생활의 변화, 그동안 판데미로 지루한 2년을 지냈으니 내신분에 일어나는 변화라고 생각해보라는 분도 있다. 어느 여소설가가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생활이 지루하면 멀쩡한 이빨을 빼어서라도 변화를 만들어야한다고 ….”
“발목에 깁스 좀했다 뿐인데 뭘 그래? 머리통은 온전하지 않아! 못 움직이니 억지로 어디 나가는 것 피하고 글을 쓰기위해 억지로 마음잡고 앉을 필요가 없잖아 ! ”
그럴 것 같은데 그렇지가않다 .
한쪽발목이 자유롭지 못할 뿐인데 그 영향이 온몸에 퍼지고 머리까지 올라가 뇌 속의 활동이 정지 된 듯, 사고 정지를 의식했다. 이점은 경험자가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다친 발목을 보호하기위한 깁스를 머리통에 한 느낌이다. 내 심신의 변화와는 관계없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은 변함없건만 내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읽던 소설속의 이야기도 흥미 없이 추구하고 싶지 않다. 내문제가 시급한데 누군가 생각해낸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고 싶지 않다. 깁스로 무거워진 발을 이리저리 옮기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시작되었다.
발목을 부축하고 있는 뼈의 골절진단에도 수술여부를 의사들은 일주일 후로 엑스레이 재검을 하자고 했다. 결정하지 못하는 의사들의 심사숙고는 코로나비루스로 비상상태인 병원 상황을 고려해서다. 환자인 나의협조가 필요한 일이란다. 깁스로 뿌러진 뼈가 다시 접착 될 때까지 참고 버틸 수 있을까도 문제라는 것이다.
뒤척거리다가 잠시 깊은 잠에 들었던 것 같은데 고인이 된지도 10여년이 된 어머니께서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옥아 부러진 발목뼈가 다시 붙으면 되는 기라! 몹쓸 병이 아니니 참아라! 이해 마지막의 액땜 이라고 생각하고 잘 나은 후면 새해에는 일 년 내내 좋은 일만 있을 기다. 너는 어릴 때부터 참을성이 없었지만 그래도 참아라! ”
어머니를 생각하며 며칠을 지나는데 어머니이자주하신 말이 생각났다
“병은 자랑을 해야 낫느니라. !”
며칠간 열지 않았던 컴퓨터를 열어 내 소식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깁스를 하고 들어앉게 되었다고 썼다 .자랑을 한다고 생각했다.
“심신을 완전히 회복하고 2022년을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너그럽게 가져 !”
이 마음을 너그럽게 가진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다 .
빙판에 넘어진 자신에 대한 배신 감이 괴롭혔다.
일주인후 다시 엑스레이를 찍어 재검을 한 후 수술은 안하는 것으로 정했다 골절부분에 철판을 대고 나사로 접착을 하고 뼈가 다시 붙도록 기다렷다가 일 년 후에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는 수술을 거절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잘못되었을 때의 책임추궁을 내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얀이 전화를 받으면서 얼굴색이 변해가는 것을 보며 소파에 앉았다. 성인이 되기 전에 두부모를 잃은 그를 키워준 형수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2주후 숲속의 자연 묘지의 얼은 땅을 파고 고인의 재가 담긴 뚜껑 닫힌 항아리를 묻었다.
나도 휠체어에 앉아 4대의 가족들이 모여 이별의 노래를 부르는 속에 끼었다.
1259호 14면, 2022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