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에서 다시 만난 여자

류 현옥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내에서 코니와 첫 대면이 이루어 졌다.

좌석 번호를 찾아 앉으려는데 세자리 칸의 창문자리에 젊은 외국인 여자가 앉아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나는 얀이를 보며

“저 젊은 여자 옆에 앉겠어요?”

“아니야, 오래 알고 있는 늙은 여자 옆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 내가 먼저 들어가 그 젊은 여자 옆에 앉기를 재촉했다

그녀는 곱슬머리에 진한 브라운 피부의 여자였다. 진주목거리를 이중으로 하고 여러 손가락에 눈에 뜨이는 보석반지들로 장식하고 있었다. 그녀가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우리는 조금도 견제하지 않고 다음말로 넘어갔다

“제주 섬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알려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프리카 대륙에까지 소문이 나 그곳 부자여자들이 휴양 올 만큼 유명할 줄이야?”

“돈 많은 아프리카 부자 남자가 부인 혼자 안전한 한국의 섬으로 보내어 쉬고 오게 할 수도 있지!”

나는 강한 향수가 풍겨오는 그녀를 다시 한 번 보며 고개를 끄떡이며 호의의 인사를 했다. 짧은 비행시간이지만 운명을 같이하게 된 동행의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짐작으로 나이는 서른 중순은 된 것 같았다. 그러면서 요새 젊은 여자들의 나이를 짐작 할 수가 없다고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얼굴에서도 그렇고 옷차림에서도 그렇다. 특히나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일 경우 더 그렇다.

그녀는 빙긋이 웃으며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당당하기 짝이 없는 여유 있는 그녀의 태도가 호기심을 끌었다.

나는 머릿속을 스쳐가는 예감이 있어 영어로

“독일 말을 이해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녀는 영어보다 독일 말을 더 잘한다고 독일어로 대답했다. 재치 있는 대답이다.

한국여행을 제주도에서 시작하여 2주간 쉬었고 이제 부산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3주 후에 서울에서 한국을 떠난다고 했다

“당신 말은 스위스 독일어인데요?”

얀이 그녀의 말을 중단하며 끼어들었다.

그녀는 갑자기 큰소리로 깔깔 대며 웃었다.

“남편이 스위스 사람 이예요.”

“당신도 스위스 독일어를 하시는 모양이지요?”

얀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내가 다 알아들을 수 없는 스위스 독일 말로 속도를 내어 중단했던 그녀의 여행 루트를 말했다.

나를 의식했는지 다시 독일말로 부산역 옆 호텔에 예약이 되어있어 우선 3일 정도는 걸어서 부산시내 관광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비행기에서 내리면 혹시 부산역 방향으로 가는지 물었다.

얀이 제주도 여행을 동행한 일행과 자동차로 창원 쪽으로 갈 것이고, 서울에서 온 여행 일행이 다른 친지들은 서울 행비행기를 갈아 탈 것이라고 설명하자, 역력한 실망의 눈빛을 보이며 부산중앙역 까지만 안내해 줄 수 없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기내 복도 건너편 좌석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남동생이 말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눈치로 때려잡아 조심해야할 여자라고 한국말로 일렀다.

그러면서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인천국제공황을 그치지 않고 제주도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정상 귀국이 아니란다.

불법 귀국자들은 한번 들어왔다 하면 현지인들과 가까이 해서 눈에 뜨이지 않게 몇 개월 살면서 불법행위를 한단다. 한국도 마약중독문제가 심각한데 이런 루트로 묻혀들어 온단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제주도로 갔는지 궁금했다. 동생은 배를 타고 들어간다고 했다. 아마 일본을 통해 제주도 관광객으로 까다로운 한국 입국 과정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인데 이런 의심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피로하다는 핑계로 의자를 뒤로 제키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얀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얼마나 한국에 머물 것이냐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비행기가 착륙하여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섰는데 그녀는 얀이 옆에 붙어 서서 오랜 지인처럼 손발을 동원하여 스위스 독일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이 몇 번째 한국여행이며 한국의 어느 도시를 추천하느냐, 선호하는 한국 음식이 무엇이냐 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동행한 제부가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처형 저 두 사람 때어놓아야 되겠는데…”

나는

“여행 중에 만난사람끼리 정보교환을 하는데 뭐 그러냐고, 그렇게 쉽게 붙을 수가 있을까 싶은데…”,

남동생이 큰소리로

“자형 이리와 ! 짐 나오는가. 지켜야하는데 먼눈팔지 말고…”

나는 자동차로 우리를 운반해갈 동생에게 물었다.

“저 여자 부산역까지 데려다 주면 안될까?”

“신분이 분명하지 않는 사람인데…, 부산역을 둘러 가면 한 시간은 더 걸릴 것인데, 미안하지만 안 돼!”

“먼 곳에서 여행 온 사람인데 잠시 도와주는 건데… 뭐 신분운운 해야 하나?”

“차가 밀리면 지연시간을 예상할 수가 없어. 안 돼. 큰누나는 외국에 많이 돌아다녀 더 잘 알 것 같은데…, 오히려 청바지 입은 뤽삭 여행자라면 당연하게 해주지.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과시하는 여자는 믿을 수 없어 !”

나는 그녀를 곁눈으로 주시해 보았다.

다시 보니 서른 말에서 사십 초반에 들어선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나이에 혼자 다른 대륙으로 혼자 여행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기까지 했다.

동생이 다시 옆에 와서 속삭였다

“저 여자 관광여행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 카이. 큰 누나가 자꾸 그러네. 종교가 모슬렘으로 제주도 돼지고기도 안 먹었을 것이고 새벽에 일어나 물속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해 성산에 올라갔을 여자도 아니야 ”

그녀는 악수를 청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코니 입니다!”

얀이 옥이 하고 나가는데 동생은 도착한 가방을 끌어내려야 한다며 제부를 불러갔다.

기회라 싶어 나는 그녀에게 일을 하는 동생이 시간이 없어 부산역까지 데려다 줄 수 없어 미안하다며 좋은 여행을 하라는 말로 작별인사를 했다.

그녀는 서울서 만날 수 없는지 다시 얀이 에게 물었다

우리의 계획은 하루 전에 서울로 가서 선물도 사고 짐을 싸고 준비하여 다음날 출국을 할 것이라고 내가 설명을 하며 그럴 시간이 없을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3주가 쏜살같이 지나고 고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아부다비 비행장에 내렸다. 4시간을 기다렸다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한다.

대합실 구석자리에 젊은이들이 뤽삭에 기대고 누워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어디 그런 자리가 있을까 살폈다. 벽을 등진 긴 의자가 있어 신발을 벗고 드러누웠다

잠시 잠이 들었다 얀의 목소리를 듣고 깨어나 앉았다. 부산 비행장대합실에서 헤어진 코니와 다시 만난 반가움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신을 신고 하품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동행인은 십년은 더 젊어 보이는 한국 남자다

그녀는 오랜 친구라도 만난 듯이 나를 끌어안고 내 볼에다 입을 맞추었다. 향수냄새가 진동을 했다. 은은한 고급 향수가 아니고 공격적인 싼 향수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우리와 같은 비행기로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취리히 행을 갈아탄다고 설명했다. 그녀를 따라와 옆에선 한국남자는 묵묵히 서있었다.

우리가 베를린에 산다는 말을 하자 새삼 인사를 하며 베를린은 가보고 싶은 곳으로 오랫동안 염원한 도시란다. 이제 유럽에 살게 되었으니 원하는 대로 유럽을 여행하고 물론 베를린은 옆집처럼 드나들게 될 것이니 두고 보라고 코니가 말했다.

유럽의 분위기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남자가 코니보다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세상천지 모르고 가볍게 떠다니는 젊은 세대라고 생각하며 젊은 남자에게 물었다.

“코니를 어떻게 만났습니까?”

“코니가 제가 일한 호텔에 묵게 되어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었던 저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녀에게서 서울 시내관광을 부탁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차로 시내관광을 시켜준 대가로 워커힐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그 다음날 아침식사까지 같이하고 헤어졌다. 이후로 매일만나 저녁 늦게까지 서울의 밤을 즐기고 그녀의 호텔방에서 정사를 즐겼다.

호텔 직원 팀장이 알게 되어 해직을 당하게 되자 코니가 취리히로 초대를 했다. 남자는 전화위복으로 인생의 새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취리히 시에서 호텔 경영을 하고 있는 코니의 남편 도와줄 것이라는 코니의 약속으로 따라나섰다.

이미 남편에게 연락이 되어있고 당분간 호텔직원 방에 살면서 현지 언어도 배우고 스위스 호텔 규칙도 배우면서 장래계획을 세울 거란다.

코니는 핸드백에서 호텔 프로스펙트를 얀이에게 주며 말했다.

“두 분이 취리히에 오면 하룻밤은 공짜로 재워 주겠습니다.”

“하룻밤만?”

얀이 조크를 하자

“한 달을 머물 경우 호텔비를 30% 할인해 드리겠습니다.”

코니는 이미 여행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대화의 중단을 재촉했다. 듣고 있기가 불편한 말들이었다. 사업상의 속없는 선전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일하는 남편을 혼자 두고 벚꽃 피는 대한민국 땅에 가서 즐기다가 내연의 남자를 데리고 귀가하는 미스테리의 여자라는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따라가는 젊은 남자는 행운의 꿈속에 잠겨 장대로 구름을 휘젓고 있었다.

탑승이 시작되어 각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며 세상 물정을 파악하며 상식을 익힌 남동생 생각을 하며 창가에 앉았다.

기내를 가득 채운 사람들과 그들의 걱정을 실은 비행기는 칠흑 같은 어두운 창공에 불빛을 반짝이며 서쪽으로 향해 날랐다. (끝)

1315호 14면, 2023년 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