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 126 – 독일의 교육제도(6)

김나지움(Gymnasium)의 역사

‘김나지움(Gymnasium)’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사용된 ‘김나지온(Gymnasion)’에서 유래되었다. 김나시온은 체육장이자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지성을 길러주는 장소였다. 이 말은 독일에서는 교육기관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고 영어권 지역에서는 체육관을 의미하게 되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16세기에 고전적 교양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로 김나지움을 세웠다. 19세기 초에 대학입학을 위한 준비교육기관이 되었다. 그 후 사회의 발전과 근대과학의 발달에 따라 외국어나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각종 김나지움이 생겼다가, 김나지움 1종으로 통합되었다.

성립배경

김나지움은 18세기 말 프로이센에서의 대학 진학 억제책으로서 등장했다. 당시의 대학은 절대주의 국가를 위한 관리 · 성직자 · 의사 등의 소수 엘리트를 양성하는 장이었는데, 일정한 입학 자격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입학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청년들이 병역을 피하기 위해서도 대학에 입학하고, 결국에는 졸업해도 취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하여 사회불안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정부 당국은 대학 진학을 억제하기 위해 김나지움이라는 9년제 중등학교를 설치하고, 이곳의 졸업시험 합격을 대학 입학의 자격요건(Abitur)으로 삼았다. 하지만 당초에는 대학의 독자적인 입시도 존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나지움에서 아비투어를 취득한 경우에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특혜 조건을 설정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학 진학 억제책으로서는 충분치 못했다. 대학에 의한 독자적인 입시가 폐지되고 김나지움이 대학 입학 자격의 수여권을 명실상부하게 독점하게 되는 것은 1834년의 일이었다.

교육내용과 시대에 따른 변화

프로이센 정부는 김나지움을 설립함에 있어 당시 존재했던 라틴어학교 중에서 설비와 교원이 충실한 곳을 김나지움으로 격상시켰다. 라틴어학교란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던 곳들의 총칭인데, 주로 교회 등이 성직자 양성의 예비교육 시설로 하고 있었던 곳으로서 라틴어로 성서의 강독 등을 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설립 배경은 김나지움의 교육 내용에 라틴어 우위라는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다. 그에 더하여 김나지움의 교육 내용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19세기 초엽에 교육개혁이 단행되어 김나지움에 관한 법률적 정비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신인문주의의 깃발 아래 그리스 · 로마문화가 이상으로 간주되고, 그것을 배움으로써 인간성의 전면적인 개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정신운동의 일환으로서 교육개혁이 착수되었다.

이것은 김나지움의 교과 과정에 반영되어 고대 그리스 · 로마의 고전을 고전어(그리스어 · 라틴어)로 학습하는 교육이 중시된다고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화적, 사회적 기능

김나지움이 대학 입학 자격의 수여권을 독점하게 되자 그 문화적 · 사회적 영향은 엄청났다. 근대 독일의 대학은 관리 · 성직자 · 의사, 대학이나 김나지움의 교사라는 정치 · 사회 · 문화의 엘리트적 담당자 양성의 장으로서, 각각 법학부 · 신학부 · 의학부 · 철학부에서 전문적 지식이 교육되고 있었다. 근대 독일에서는 이러한 대학 수료자를 교양시민층이라 부르고, 기업가나 상인 등의 경제시민층과 구별된 보다 높은 사회적 위신을 지닌 존재로 간주하고 있었다.

김나지움은 이와 같은 대학의 이를테면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김나지움은 교양시민층의 생산 메커니즘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며, 그 교육은 교양시민층의 교양 목록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김나지움 진학자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동일 세대의 3~4%이고, 바이마르 시기에서도 본질적 차이는 없었다. 게다가 9년 동안 재학하고 졸업시험에 합격하여 아비투어를 취득한 자는 동일 세대의 2%를 넘지 않았다. 이를테면 김나지움 진학자는 소수 엘리트이고, 아비투어 취득자는 한층 더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었다.

이상과 같은 체제는 기본적으로 1901년까지 존속했다. 이 해에 김나지움 이외의 실업계 중학교에도 전 학부의 아비투어 수여권이 인정되어 김나지움의 아비투어 독점은 붕괴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법률상의 대등화일 뿐이어서 교육사회의 현실에서도 대등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바이마르 말기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1299호 29면, 2023년 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