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코리아협의회
소녀상 철거 시위하러 왔다가 간 이들이 남긴 것들


“위안부는 사기다”, “거짓말 하지 마, 천벌 받을 거야”, “역사부터 공부하라.” 이번에 온 극우 4명이 독일 평화의 소녀상 현장에서 한 발언들이다. 그것도 오로지 한국어로만 말이다. 나는 독일 코리아협의회(이하 코협)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이다. 주옥순 대표 등이 소녀상 철거 등을 주장하며 이곳에 온 지난 6월 26일부터 6월 30일까지, 5일 동안 코리아협의회가 마련한 대응 집회에 동참하면서 가능한 그들의 모든 순간을 지켜봤다. 이들의 망언과 만행에도 침묵시위를 하며 참고 또 참았던 한국 교민분들, 그 분들의 고통스런 표정을 잊을 수 없어 펜을 들었다.

지난 6월 27일 베를린 소녀상 인근. 그들은 “코리아협의회는 거짓말 하지 말라”는 등 구호를 외쳤고, 다음 날도 비슷한 주장과 구호 등을 반복했다. 6월 29일 오전 11시께 그들은 더욱 부적절한 행동을 감행했다. “위안부는 나라 망신”이라며 고성을 지르다가, 소녀상을 건드리지 못하게 설치해 둔 예술작품 ‘이방인의 집’ 안을 침범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피해자를 조롱하는 내용의 독일어 피켓을 들어 보였다. 이후 “요시코 15분 1.5엔”이라는 문구가 쓰인 피켓을 소녀상에 들이대고는, 빈정대며 웃었다. 이는 이들이 방송하는 유튜브에 고스란히 방영됐다. 우리는 현장에 있던 독일 현지 경찰에 항의했지만 경찰은 지켜보기만 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에 따르면, 이들 시위를 지켜보던 한 미테구 독일 시민은 화가 난다며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극우성향인 이들과의 조우는 분명 고통스러웠지만, 한편으론 기이한 풍경이기도 했다. 이곳에 온 며칠 내내 자기들끼리 외로이 집회를 진행하는 모습, 영어나 독일어도 아니고 오로지 한국어로만 고성을 지르다가 지나가는 독일 시민들에게 항의를 듣던 모습이 그랬다. 그들은 그렇게 지내다 물러갔다. 비싼 비행기 티켓을 끊어 여기까지 와서는, 근거도 없는 망언을 매일 퍼붓다가 말이다. 그들의 망언으로 가득 찬 집회에 독일 시민들과 코협 측 집회 참가 시민들은 오히려 “내 말이”, “(당신들이야말로) 역사 좀 공부하라” 등 구호로 대응하고, 수준 높은 예술 공연으로 응답하려 애썼다. 현장에선 국제적 연대도 이뤄졌다. 실제로 며칠 간 내가 만난 사람들만 꼽아봐도 독일과 아일랜드, 이탈리아와 일본, 타이완 등 12여개 국가에 달한다.

그렇게 극우성향의 인사들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베를린 소녀상은 이제야 잠시 평화를 찾은 듯하다. 이들의 행패를 보러 온 독일 미테구 소속 3개의 정당 의원들은 한결같이 소녀상의 영구 존치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이번에 온 이들인 일본 극우인사들과 함께 이 곳에 다시 올 것이란 소식을 접했다. 지금 느끼는 이 잠깐의 고요함은, 나중에 더 큰 태풍으로 돌아올지도 모를 징조가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다. 베를린 방문 인사들에 대한 언론 보도도 두려움을 더하게 한다. 이번에 온 인사들이 과거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했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A급 전쟁범죄인으로 꼽히는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일본재단(사사카와재단)은 “전 세계 곳곳에 ‘친일 인사’를 심어 놓으려는 의도”로 미국에 매년 6000억 원, 한국에 600억 원에 달하는 로비를 벌인다고 한다(<한국일보> 2021년 2월 20일). 한일관계 전문가로 불리는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이 같은 대규모 유착 의심 관계가, 실은 일본 제국주의 전략의 일환으로 러일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지적한다. 이들 극우 단체의 행태는 저급한 수준일 뿐이었지만, 일본 기업과 이들의 뿌리 깊은 유착 관계는 이 문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독일 미테구청은 소녀상 설치를 올해 9월 28일까지만 허가해, 이 날짜 뒤로는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는 상태다. 그에 더해 유튜브는 극우성향 인사들의 심각한 역사 왜곡 주장이 담긴 영상에도 아직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사안은 엄연한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망언, 비윤리적 행태 등을 이렇게 국제적으로, 지속적으로 저질러도 처벌받기는 커녕 표현의 자유를 악용할 수 있는 현실에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시민들의 저항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오는 7월 6일 수요일에도 한국에서는 수요집회가 열릴 것이고, 이들은 그 집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한편, 내가 느끼기에 5일 간의 대응 집회는 전 세계 반식민주의 교육의 현장이었다. 독일 시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과 직장인이 국가의 장벽을 뛰어 넘어 일본군 ‘위안부’ 역사부터 전 세계 식민주의 문제에 대해 서로 공감하며 대안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무더위 속에도 소녀상을 지키려 매일 현장을 찾아준 재외동포분들, 용기를 내어 반박 집회에 함께 해준 일본인 등의 지지가 사안에 관심을 지닌 베를린 시민들과 현지 활동가들에게 정말로 크나큰 힘이 되었다는 점도 꼭 전하고 싶다.

1274호 17면, 2022년 7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