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pl.-Ing. WONKYO INSTITUTE
미국 살렘 (Salem) 의 마녀 사냥 (Hexenprozesse)
유럽과는 달리 17세기 북미 식민지에서는 마녀사냥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마녀사냥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고 드물게나마 있기는 했었다. 1776년에 영국으로부터 미국이 독립선언을 했으나 아직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사회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마녀사냥이 일어났다.
현재는 미국이 50개 주로 구성되어 있지만 마녀사냥이 일어 날 당시는 13개의 주였으며 독립을 선언하고도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5년 정도의 혼란기를 지낸 1781년에 가서야 분명한 자주국으로서의 기틀을 잡아가기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다.
마녀사냥은 백년전쟁이 끝난 다음 본격화하기 시작했고 백년전쟁에서 불란서를 구한 잔다르크마저도 마녀사냥에 걸려 재판을 받고 처형당했다. 이렇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마귀에 걸렸다는 혐의를 받으면 재판을 받아야만 했고 처형까지 당한 사람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사회적으로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대상이었으나 정치적이거나 인종적으로 걸려들어 재판과 죽음이라는 비극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녀사냥이 가장 극성을 부리던 시기가 가톨릭 종교가 가장 약했던 시기로 성당에 가지 않는 여성을 마귀로 몰기도 했다. 마녀사냥 이전에는 종교재판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믿음을 잃어버린 신자들이 회개하면 종교재판에서 용서를 받고 풀려났지만, 마녀사냥에는 한 번 걸려들었다 하면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마녀사냥에 걸렸다는 것은 곳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았다.
재판은 재판관의 업무이고 범인을 잡아 오는 것은 경찰이다. 하지만 경찰이나 재판관이나 죄수를 잡아 오거나 재판을 할 경우에는 벌에 대한 죗값을 치르게 하기 이전에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함에도, 당시에는 소문만으로도 형무소로 보내거나 사형을 시켰으니 법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여론재판이었다.
오늘 날의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살렘(Salem) 마을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고발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이때부터 동네에서 꼴 보기 싫었던 사람이거나, 어른으로써 젊은이의 행동거지에 대해 꾸지람을 주는 일이 있었다면 마녀사냥에 걸려들지 않았을까 싶다. 어린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에 주의를 주었다가는, 마귀로 몰림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692년 2월부터 1693년 5월까지 1년여 사이에 매사추세츠에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는데 이 고발사건은 지역 청교도 공동체에 새로운 지도자로 사무엘 패리스(Samuel Parris)가 선출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패리스가 공동체에서 만장일치로 회장에 당선되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만, 패리스의 찬성파와 반대파가 엇비슷한 인원으로 청교도 공동체장으로 당선되다 보니 서로 비방하던 차원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됐을 것이다.
사무엘 패리스는 한때 발바도스 (Barbados)에서 크게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했던 사람이다. 1692년 이른 봄, 사무엘 패리스의 딸 베티(Betty)와 조카딸 아비게일(Abigail)이 같은 시기에 병에 걸려 앓아눕게 되었다.
두 소녀는 그 어떤 의사의 진료와 처방에도 불구하고 완치를 볼 수 없었을 뿐더러 처음 보는 이상한 발작증상까지 나타내고 있었다. 장기간의 진료와 치료에도 효과를 보지 못한 소녀들을 보고 패리스 회장의 반대파측에서는 마귀에 씌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두 여성보다 먼저 티투바(Tituba)라는 흑인 노예가 마귀와 결탁되어 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곧 이어 마귀에 걸린 사람이라는 고발이 뒤를 이었고 밑도 끝도 없는 마녀사냥은 매사추세츠주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인 앤도버와 탑스필드(Andouver & Topsfild) 등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유럽에서 있었던 마녀사냥이 미국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마녀사냥이 시작된 초창기에는 이 고발사건을 순회 재판소에서 담당하다가 1693년부터는 고등법원에서 맡았지만 교수형만큼은 살렘에서 집행했다.
첫 번째로 마귀에 씌웠다고 잡혀 온 피고인들은 마녀재판에서 스스로를 변호해야만 했던 것은 누구도 이들이 무죄임을 변호하려는 사람이 없었을뿐더러,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가난하여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조차 없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1692년 6월 10일. 살렘 마녀 사냥의 첫 희생자가 발생하게 되는데 브리짓 비숍(Bridget Bishop) 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마녀라고 고발을 당해 잡혀왔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 후 몇 달 동안 총 19명(여성 14명, 남성 5명) 이 교수형으로 목숨을 잃었고 제일스 코리(Jails Cory)라는 남성은 귀신에 씌었다고 자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마녀사냥으로 모두 150명이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고 이중에 많은 사람들이 형무소내에서 사망했으며 그중에는 새로 태어난 신생아도 있었다. 55명이 고문을 당하면서 자신이 마귀에 씌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강요를 당했다.
저 사람이 마귀에 걸렸다고 고발한 사람들 대부분은 10대의 소녀들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마녀사냥이 잊힐 무렵 자신들이 꾸며낸 것임을 시인했으나 이 소녀들이 무고죄로 어떤 재판을 받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너무나 엄청난 거짓말을 했음에도 그들의 거짓 증언만 믿고 재판을 받게 된 피고인과 그 가족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겠는가.
마녀사냥이 끝난 10년 뒤인 1702년에 매사추세츠 의회는 마녀 재판이 불법으로 이루어진 재판이었음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9년이 더 흐른 1711년에는 마녀사냥으로 사망했던 22명의 이름을 호명한 후 그들의 판결을 무효화 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청교도 공동체 회장이었던 사무엘 패리스(Samuel Parris)도 나중에 재판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집단성 히스테리로 나타난 이 마녀사냥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이미 유럽에서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뒤늦게 식민지 미국에서 나타났을 뿐이다. 마녀 사냥 이후 꼭 300년이 되는 1992년. 이 재판 때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살렘공원에서 열렸으며 이때 추모관도 세워졌다.
마녀 사냥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뒷조사는 309년이 지난 2001년에도 계속되어 5명이 사면되었고 2004년에는 이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 모두를 사면할 것인가의 논의도 있었다. 꼭 350년이 지난 2022년에 마녀사냥재판 때 마지막으로 잡혀와 유죄판결을 받았던 엘리자베스 존슨 쥬니어 (Elisabeth Johnson Jr.)가 공식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서 마녀사냥에 걸려 유죄판결을 받았던 모든 피고인들이 사면되었다. 마녀사냥에 걸려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들이 마귀에 걸리지 않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 마녀사냥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고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1452호 22면, 2026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