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영국 죠지 3세(George III)의 등극

정원교의 귀띔 – 천 년을 가라 한들 멀다 했으랴

Dipl.-Ing. Wonkyo Institute

1761년 9월 죠지 3세가 왕으로 등극했다. 죠지 3세는 영국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란 최초의 독일 하노버 왕가의 군주였으며 하노버 왕가로서는 영국에 세 번째 왕을 낸 것이다.

그의 아버지 죠지 2세가 사망하고 왕위를 물려 받아을 때 그는 22세에 불과했다. 그가 왕위를 물려받자 영국은 물론 속국인 아일랜드에서도 그의 즉위를 환영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이유는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네들의 국가에서 태어난 왕족이 왕으로 계승되었기 때문이다. 죠지 3세 이전까지는 독일 하노버의 선제후 (Kurfürst)가 영국의 국왕을 겸하고 있었고, 죠지 3세는 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독일 선제후가 영국의 국왕이 될 수 있었을까?

유럽의 여러 왕가들은 영국 왕가처럼 독일 혈통으로 이루어진 왕족이 많다. 독일 하노바 왕가로서 영국의 국왕이된 최초의 왕은 죠지 3세의 할아버지인 죠지 1세 (본명: 죠지 루트빅히, George Ludwig) 이다. 그는 앤 여왕의 “내종 5촌 아주머니” 소피(Sophi)의 장남이었으며 먼 친척 오라버니뻘이었다.

내종 5촌이 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어떤 관계가 되는지를 알아보았다. 나로부터 5촌인 친척 중에서 “내종”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종은 또 무엇인지 알아보았더니 나를 기준으로 아버지 쪽의 큰 아버지나 고모님의 여자 형제, 다시 말해 아버지 쪽 고모의 자녀를 뜻하며 그들의 자녀인 5촌을 내종이라 한다는 설명으로 일반적으로는 “당숙” 또는 “종숙”으로 부른다고 했다.

죠지 루티빅히 하노버 선제후가 영국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랬다.

영국의 앤(Anne) 여왕이 후손이 없이 사망하게 되자 왕실이 후계가 끊어질 위험에 처하게 되었고 더군다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왕손 중에서 후손을 찾아내야 했기에 내종 5촌이 되는 머나 먼 하노버 왕손에까지 연락이 간 것이다. 하노버 게오르크 루드빅히 선제후가 영국왕의 계승권을 얻어 1714년에 영국 왕 죠지 1세로 등극할 수 있었다.

죠지 1세는 영국 제임스 1세 손녀의 아들로서 왕위 계승 자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54세의 나이에 영국 왕과 하노버의 선제후를 겸하게 되면서 증손자인 죠지 4세까지 영국의 왕이 될 수 있었다.

1761년 9월 22일. 죠지 3세와 그의 아내 독일인 메켈렌부르크-스트렐리츠(Meckelenburg-Strelitz)의 샬롯테(Charlotte) 공주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r Abbey)에서 영국과 아일랜드 국왕과 왕비가 되는 즉위식을 성대히 열었다.

이 즉위식은 죠지 3세가 여느 왕들과는 다르게 오랜 통치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죠지 3세는 공식적으로 59년간이나 왕으로 재위했으며 그 중 마지막 20년은 영국과 아일랜드 연합 국왕 (1801년부터) 되기도 했다.

2022년 9월 8일 별세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 214일 (70년 7개월)을 영국과 식민국가를 통치했다. 이는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재위 기간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재위였다. 다음이 64년간 재임했던 빅토리아 (Victoria) 여왕 1837-1901) 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국왕은 불란서 루이 14세로 1643년부터 1715년까지 72년간 권좌에 있었다. 그는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왕위에 올랐지만 섭정은 쥘 마재랑(Jules Mazarin) 재상이 1661년까지 18년 동안 맡았었다.

죠지 3세의 통치 기간에는 미국이 독립 전쟁을 일으켜 승리함으로써 식민지였던 미국을 잃었고 나폴레옹 전쟁(1792-1815) 을 경험하기도 했다.

미국의 독립 전쟁의 발단은 이랬다.

불란서가 인디언과 연합하여 영국과 전쟁(1754-1763) 을 치루고 있을 때 미국은 영국군을 도와 불란서 군대를 물리쳤다. 죠지 3세는 오랜 전쟁으로 경제가 핍박해졌고 부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늘어나게 되자 미국의 도움으로 불란서군대를 물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금제도를 만들어 미국민에 부과시키려고 했다.

당연히 미국민의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죠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이끄는 군대는 영국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하고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다음으로는 나폴레옹이 전쟁을 일으키고 나서 어떤 결과를 맞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추려 본다.

나폴레옹은 영국의 경제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육지로부터 봉쇄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을 위해서는 먼저 해양국인 스페인을 정복해야 했고 불란서에 동조하지 않고 있는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계절의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고 부닥친 추위에 한 발 늦게 퇴각하다가 참패하고 말았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참패를 당한 이후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폴레옹 군대였음에도 독일로 쳐들어 온 불란서 군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연합군이 3일만에 라이프치히 전투(181310월 16-19일까지, Leipzig Krieg) 에서 완전히 패퇴시켰는데 나폴레옹이 치룬 전쟁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투였다.

이어서 영국과 스페인 연합군이 프랑스를 공격하여 파리를 함락시킨 후 나폴레옹을 엘바섬(Elba Island)에 유배시켜 버렸다. 탈출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불란서에서 다시 군사를 모았다.

나폴레옹은 영국과 벨기에를 상대로 워털루 전쟁을 일으켰지만 패전하자 영국은 나폴레옹을 생포하여 이번에는 엘바섬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세인트 헬레나 섬(St.Helena Island) 으로 유배시켜 버렸다.

죠지 3세는 영국 왕으로서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 혁명과 불란서 혁명을 목격했다.

그는 전임 왕들의 방탕하고 사치스럽게 생활해 왔던 것과는 반대로 왕으로서의 의무감을 가지고 덕망 있는 군주로 평가되고 있으며 농사에 깊은 관심을 보여 국민들로부터 “농부 죠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그의 통치 후반기부터는 대사질환 중에 하나인 “포르피린증 (Porphyria)”과 관련된 정신질환(유전병) 으로 고통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포르피린은 적혈구 혈색속의 헤모글로빈이 철분과 잘 결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 결핍증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을 수 있거나 성인이 되어서 나타나게 되는 희귀병으로 심한 피부 질환이나 신경 정신과적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죠지 3세의 경우는 복통, 피부염, 소화기능 저하 등의 여러 증상 중에서 기억상실증으로 고생했다.

죠지 3세는 건강이 따라 주지 않게 되자 1811년부터 그의 장남이 섭정하도록 했다. 평소 검소하고 소탈한 사생활로 지내 왔던 아버지 죠지 3세가 사망하자 섭정을 하던 장남이 죠지 4세로 즉위 했다.

1453호 22면, 2026년 4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