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봉 전 연합회장 별세

‘한인사회발전과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타의 귀감된 모습 남겨”

재독한인연합회(현 재독한인총연합회) 제17대, 18대 회장으로 봉직했던 박석봉 전회장이

지난 6월17일 오후 14시, 심장마비로 향년 82세 일기로 한국 부산에서 별세했다.

박선유 재독한인총연합회장은 부산 영락공원에 차려진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하고 유족들에게 “박석봉 고문님의 소천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유가족 위에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평강을 기원하였다” 또한 고인이 제17-18대 연합회장으로 봉직하며 한인사회 발전에 남긴 훌륭한 업적에 대해 재독한인을 대표해 깊은 고마움을 표했다. 고인의 유해는 20일 발인, 장지인 실로암묘지공원에 안장되었다.

고인은 연합회장 재임시, 전임이었던 여우종 회장(작고)에 이어 재독한인사회 화합에 필요한 Bonn 소재 연합회 사무실 임대, 유지비 등, 많은 부문을 개인적으로 감당해 냈으며,

서울 효창운동장에 최초의 인조잔디 구장 건설을 주선하는 등, 한국축구발전에도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파독광부로 당시 고인과 일자리인 막장에서 작업 동료였던 한일동 한인사회 원로는 막장에서 도급 일을 다 마치고 쉬고 있을 때, 간부급 슈타이거(Steiger)가 지나가다 일을 말끔히 해 놓은 것을 보고 이를 칭찬하더니, ”한국에서 무엇을 하다가 이곳에 왔느냐?“ 고 물었다.

박 회장이 수학선생을 하다가 왔다고 하니, 그가 믿기지 않았던지, 기다란 널판지에 2,3차 수학 방정식을 쓰고 답을 내 보란듯이 내밀었으며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내는 모습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자신이 쓰고 있던 간부급 하얀 헬멧을 벗어 박회장의 노란 헬멧과 바꿔썼다는 일화는 당시 한국인 동료들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고 전하고 “법없이도 살 분인데,,,,,” 라며 고인의 급작한 타계소식에 애통해 했다.

고인된 박석봉 전회장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파독광부로 지원, 1964년 10월 제2진으로 아헨근교인 메르크슈타인 아돌프 광산에 근무하였으며 이후 필립스 회사에 오래도록 근무하다가 80년대 후반에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독일부인인 엘리자벳과 결혼, 슬하에 딸 둘을 두었다.

고인은 1973년 12월 재독한인글릭아우프회 창립 멤버로 조희영, 권영목, 김다현 원로들과 함께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글뤽아우프회 각종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아헨지방한인회 제3대, 4대 회장직을 역임하였으며 1980년(61회.전주)과 1983년(64회.인천)에는 전국체전 재독동포선수단 단장으로 선수단을 인솔하였으며, 재독한인연합회 제17대 회장(부회장:허종술,이성문,최완), 제18대 회장으로, 18대(수석부회장 한일동, 김홍, 윤남수부회장, 한상철사무총장)임기 중에는 재독대한체육회 제5, 제6대 회장을 겸직하며 한인사회 발전에 동분서주, 타의 귀감이 된 모습을 주위에 보여 주었음을 후배 동문인 김무현 축구컬럼니스트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행적을 들려주었다.

나복찬 중부지사장 (nbc@kodb.de)

2020년 6월 26일, 1176호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