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현 집사님!
이국 땅 독일에서 당신과 만난지 어느 덧 30여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번의 강산이 변한 시간이군요.
30여년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언젠가는 이런 작별의 시간이 오고, 이렇게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드리는 글을 써야 될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시간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코로나 위기로 자주 만나지 못 했고, 가끔 전화를 드릴 때면,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이렇게 심각한 상황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3개월 전 까지만 해도 수술하면 상태가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었는데, 결국 이렇게 황망한 상황이 되어 버렸군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자주 찾아 뵙고 같이 산책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자책감이 앞섭니다.
개인적으로 집사님은 저의 가족에게 큰 형님, 큰 아빠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저희는 무슨 문제가 있으면 당신을 찾았고, 그 때마다 당신은 저희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셨고,
해결책을 찾아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은혜 잊지 않을 것입니다.
김 무현 집사님,
당신은 정말 가정적인 분이셨습니다. 자상하고 듬직한 남편이자 아버지이셨습니다.
어디를 가던 아주머님과 함께 가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
성년이와 지애가 어릴 때에는 항상 가족이 함께 휴가를 다녀오시곤 하셨습니다.
성년이와 지애가 출가한 후에도 번갈아 가며 그들이 사는 곳을 방문하여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 오셔서 자랑스러워하시던 모습 눈에 선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당신은 장남으로서 한국에 계시는 어머님과 형제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미안함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의 대소사나 명절이 되면 빠짐없이 송금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독일 생활이 그렇게 여유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도 당신은 장남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함에 대해 한국에 계신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해 하셨습니다.
김 집사님,
당신은 한인 사회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몇 차례에 걸쳐 한인회 총무, 한인 회장, 축구 동우회 회장, 한글학교 교장, 한글학교 이사장, 파독 광부 역사 기록 편집 위원 등, 그 동안 당신에게 주어진 이러한 직책들이 말하듯이 당신은 한인 공동체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직책들은 어떤 명예도 어떤 금전적 이득도 주어지지 않는, 자기 희생이 강요되는, 책임과 헌신만을 요구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주변으로부터 칭찬보다는 적지 않게 불평과 이유없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많은 경제적, 시간적 희생을 감내하셔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한인 공동체를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이러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힘든 일을 맡으셨습니다. 한인 가정에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당신이 먼저 찾아 가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한인회 설잔치 등과 같은 단체의 행사나, 육순 잔치, 자녀 결혼식, 장례식 등 이웃의 경조사에 항상 앞장서서 준비하고 진행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당신은 조그마한 것이라도 나누어 주시려고 했습니다. 당신은 항상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가질 때, 대화할 거리가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이웃과 나누기를 좋아하셨고, 앞장 서서 이웃을 돕는 일을 기꺼이 하시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부담이나 폐 끼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육순이나 칠순, 자녀 결혼식 같은 당신 개인의 큰 일들은 소문 없이 조용히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당신은 집안의 장남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공동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당신의 삶이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가 되어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과 딸, 성년이, 지애가 당신의 가르침과 당신의 삶의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어느 덧 듬직한 성인이 되어,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김 무현 집사님,
당신은 정말 후회없는 보람된 삶을 사셨습니다. 이제 모든 무거운 짐들 다 내려놓으시고,
어떤 미련이나 아쉬움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행복합니다.
결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Lieber Herr Kim,
mit Dir waren wir glücklich.
Dank Dir werden wir immer glücklich sein.
Dafür danken wir Dir herzlich.
Wir werden Dich nie vergessen.
Wir lieben sehr.
2021년 9월 4일
이 창현 드림
1234호 17면, 2021년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