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에 불어 닥친 한류 음식 “김밥과 김치”

함부르크. 온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한류”가 함부르크에도 불어 닥쳤다.

“김치와 김밥!”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김치는 음식만이 아닌 한국인의 영혼이요 고향이요 정체성이다. 즉 김치 맛이 한국인이고 한국인의 정서가 김치 맛이다.

현재 1970년을 기점으로 함부르크에 한국인 정착 53년을 맞고 있는 가운데 함부르크 주요 언론들이 이번처럼 “김치와 김밥”에 대하여 떠들썩하게 대서특필한 적이 없었다.

2월 16일 함부르크의 유력 신문 Hamburger Abendblatt와 2월 27일 Morgen post에서 김치와 김밥을 전면 내지 2개면 정도의 분량으로 기사화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 외에 세계한인언론인협회지인 Global Korean 및 Korea Weekly 그리고 한국의 유명한 김어준 방송의 “겸손은 힘들다” 등에서도 보도를 하여 갑자기 유명해 졌다.

언론보도는 순간 영웅이 되게도 하였다가 순식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지게도 하는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신문에 난 후로 화재 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김밥과 김치”를 맛 보겠다면서 찾아온 사람들로 일찌감치 음식이 다 팔려 아쉽다는 말을 듣곤 한다. 이렇게 시작된 빨리 김밥 창업자를 만나 보았다.

이 기사의 주인공은 기도 슈미트(Guido Schmidt)씨와 안나 마리아(Anna -Maria Bahr -Schmidt)씨다. , “Go Hallyu GmbH”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내고 “빨리 김밥과 김치 (Bballi Kimbap und Kimchi)”를 파는 이 가계는 함부르크의 중앙부에 있다.( Moenkebergstr 31) .

무엇보담도 큰 관심을 끈 것은 한국인도 아닌 한독 부부 2세로 독일인인 아내와 함께 김치와 김밥 집을 냈다는 것이다. 매우 흥미진진하고 관심을 갖게 하여 그 사연을 파 헤쳐 본다.

기도 슈미트 씨와 동생 모나씨는 어려서 부터 태권도 및 부채춤 등 한국 문화를 늘 접했고 12년이나 되는 긴 한인학교 과정을 마친 함부르크 한인학교 졸업생들이다. 대학시절에도 남매는 한국에서 실습까지 한 한국사랑 팬들이라고 한다. 그의 부인 Anna- maria Bahr -Schmidt씨는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였다.

기도씨는 졸업 후, 함부르크 소재 Airbus에서 근무를 시작하다가 결혼 후, 부인과 함께 3년 반이나 부산에서 에어 부스와 관련된 회사에서 근무를 하였다. 부인은 3년 반 한국에서 사는 동안 한글과 한국 음식 등을 배우며 한국 정서를 익혔고 첫째 딸의 출생지를 해운대로 하고 싶다며 고집했던 진정 “한국 사랑 부부”다.

독일로 귀국 후 다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3년을 살다 2021년 귀국하였다. 귀국 하면서 에어버스에 사표를 내고 완전히 다른 직업인 “김밥과 김치”를 파는 직업을 택했다. 3년 반이나 부산에서 사는 동안 가까운 곳에 수많은 음식점과 김밥 집이 있었는데 이 김밥집 아저씨는 김밥 왕이라고 칭할 만큼 모양이나 맛이 유난히 좋았다고 한다.

갈 때마다 사람들이 많고 또 꼬마 김밥, 왕 김밥 등등 종류도 다양한 먹음직스런 김밥들이 발길을 재촉하였다. 아마도 3년 반 동안 먹은 김밥을 센다면 엄청난 숫자일 것이라면서 해운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 올리곤 한다.

어느 음식 보담 싱싱한 야채나 견과류를 사용하여 건강에도 좋고 맛도 깔끔해 많이 먹어도 살찔 염려가 없고 나갈 때도 아주 간편하고 갖고 갈수도 있고 먹은 후에도 쓰레기가 적어 친 환경 음식이라며 김밥 칭찬에 늘 큰 점수를 주곤 하였다.

그럼 어떻게 한국인의 음식 “김치”에 반하게 되었느냐? 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김치는 한국인에겐 없어서는 안 될 음식 중 하나로 “엄마는 내가 없어도 살지만 아마도 김치가 없으면 못 살거야!” 하는 말을 아버지로 부터 듣기도 했지만 맵기는 하나 맛으로는 ‘일등’ 이라고 한다. 아나리아씨는 매운것을 싫어해 김치를 좋아 하지 않았으나 김치를 만들고 맛을 보는 동안 김 치 맛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지금은 좋아 한다고 한다.

몬트리올에서 귀국할 때 자립하고 싶다는 꿈이 컸다. “무엇으로 어떻게?”해야 좋은지 결정하기는 매우 어려웠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을 토대로 “김밥과 김치”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고 전한다.

결정 후, 약간 부모님과의 마찰도 있었지만 부모님은 늘 내 편에 서서 응원해주는 편이라면서 결정 후엔 김치와 김밥 만드는 방법을 손수 실습으로 보여 주는 등 결정에 용기를 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후, 김밥 집 이름을 “빨리 김밥”이라고 정했다. “빨리 빨리”는 한국 사람들이 즐겨 쓰는 단어로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라고 하여 “빨리 김밥”이라고 했다며 처음엔 엄마 고향인 공주를 생각하여 공주김밥, 전주김밥, 서울김밥 등으로 칭했으나 독일 사람들에겐 큰 의미가 없어 속에 들어가는 소재에 따라 이름을 붙이고 있다.

통 크게 시작한 빨리 김밥집!

첫날 김밥집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자신을 보니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고 또 맛도 보라면서 대화를 걸었으나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손님들이 많이 와 김밥을 사고 김치를 먹으며 맛있다는 말을 들으니 후회 대신 용기가 났다.

아내는 디자인어로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실력으로 가계를 멋지게 장식하였다. 한글과 독어 그리고 영어를 넣어 홍보물을 만들어 여러 인터넷 매체에 공개 하는 등 조금씩 조금씩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고 또 재미있었다.

가계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용기가 났고 또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도 생겼다. 아침 7시 반이면 Hafencity 에 있는 부엌으로 달린다. 춥고 어두운 길을 달려 밥을 하고 야채 및 갖가지 김밥 속에 들어 갈 것들을 다듬고 볶아 놓는다. 그리고 김을 깔고 속을 넣고 둘둘 만다.

손을 거쳐 나온 갖가지 김밥을 썰고 상표를 붙이고 가계로 향하면 약 아침 10시 경이 된다. 어느 사람들은 식사시간이 되기도 한첨 전인 이른 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시작된 “빨리김밥” 집은 고소한 김밥 냄새와 맵고 빨간색으로 변한 배추 잎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여기저기서 주문 소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어느 때에는 일찍 준비한 자료가 바닥이 날 때도 있고 다 팔리지 않아 걱정도 되는 날이 있다. 비싼 가계 임대료가 가슴을 꿍 내리 누를 때도 있지만 맛있다면서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과 맛있는 김밥의 유혹으로 일부러 먼 곳에서 왔다는 손님도 있어 시소게임을 하듯 매일매일 여러 경험들로 빨리 김밥 주인 부부의 일과는 매우 바쁘다.

“Kimbap, ein Preisverdaechtiger Snack aus Hamburg”
“Korean Street food! ”
“Pausenstulle!”
“Pop with Kimbap!”

이런 제목들을 달아 대서특필 하였다. 더 나아가 해마다 열리는 “Internorga Hamburg” 음식, 식품, 제과 그릇 및 호텔 등 의 국제 전시회가 코로나로 열리지 못하다가 지난 3월 10-14일 까지 열렸다. 이 전시회의 포인트인 Internorga Gruenderpreis에 나갈 수 있는 자격까지 얻게 되면서 다시 한 번 “김밥과 김치”가 눈길을 받게 되었다.

시작한지 아주 짧은 시간에 인터뷰 및 언론에 노출된 한국의 음식 김밥과 김치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으며 슈퍼 및 음식점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Hamburger Abendblatt 에서는 가장 앞면에 화재가 되고 있는 사람을 싣는 난에 “Mann am Herd”라는 제목으로 슈미트씨에 관하여 기사화 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었다.

슈미트씨는 1995년엔 똑 같은 곳에 어머니에 대한 기사가 났다며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Gruenderpreis”에 응모한 사람들은 약 1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유럽 이웃나라에서도 응모 하는데 응모자 중에는 초보도 있지만 현재 요식업이나 그외 이 계통의 전문직인 사람들도 있다. 10명 선정에 뽑힌 “빨리 김밥”은 또 다시 Augsburg에서 열린 2차 경쟁에 도전하였다. 또 다시 5명 선정에 뽑혀 3월 10일 마지막 경쟁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1등은 놓쳐 버렸지만 김치와 김밥의 이름을 알리는 데는 큰 성공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초보자로써 마지막 경쟁에 까지 올수 있었던 것 하나만으로도 승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승자가 될 수 있게 용기와 힘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좋아요!”를 눌러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특히 엄마처럼 한국이 가난했을 때 낯선 땅 독일로 오셔서 훌륭하게 자녀들을 키우시고 성공적인 정착을 하신 한국인 1세대 분들께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함께 함부르크에 한류의 열풍을 불게 하자고 하였다. 앞으로 적당한 가계 자리가 나오면 계속 문을 열겠다면서 지난 3개월간 쌓았던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고 전했다. 김치와 김밥의 맛을 전수해 주신 엄마와 맛있게 한국음식을 만들어 내는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찌됐던 함부르크에 김치의 물결, 김밥의 물결이 시작되었으니 끊이지 않고 넘쳐나길 바라며 “빨리김밥”의 성공을 빈다.

빨리 김밥 – instagram@bballi_kimbap, www.bballi.de

이영남기자 youngnamls @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