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명품, 독일 총리들(4)
명품 왕국 독일에는 제품·인프라·시스템뿐만 아니라 인물에도 명품이 많다.
경제적으로 ‘라인강의 기적’과 정치적으로 ‘베를린의 기적’을 이끌어온 ‘서독과 통일독일의 연방총리들’이야 말로 나치 정권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 독일이 길러낸 최고 명장들이며 독일 국민이 만들어낸 최고의 명품이다.
독일의 연방총리를 보면 자유민주주의와 강력한 서독(아데나워)- 시장경제와 경제기적(에르하르트)- 동방정책(빌리 브란트)-동서 데탕트 시대(슈미트)- 유럽 통합과 독일 통일(헬무트 콜)- 노동개혁과 독일병 처방(슈뢰더)- 독일병 치유와 EU 대주주(메르켈) 그리고 현재 올라프 숄츠로 이어지며, 제2차 세계대전 후 건국-분단-냉전-성장-통일-통합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구성되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Ludwig Erhard) ➁
라인강 기적 일구다
독일 초대 경제부 장관(1949~63년)이자 제2대 총리(63~66년)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전쟁의 폐허에서 허덕이던 독일인들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풍요롭게 사는 게 꿈이었다. 이 꿈을 실현시킨 리더가 바로 에르하르트였다.
65년 9월 제5대 연방의회 선거 때 예상을 깨고 에르하르트는 다시 승리를 거머쥔다. 보수진영인 기민당/기사당(CDU/CSU)이 47.6%, 진보당인 사민당(SPD)이 39.3%, 자유계열의 자민당(FDP)이 9.5%를 각각 득표했다. 독일 언론은 이를 에르하르트 개인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서독 건국 이후 다섯 차례 선거에서 모두 기민당이 이긴 배경에는 에르하르트가 있었다. 독일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은 비(非)정치인처럼 행동하는 뚱보 에르하르트였기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신조어들을 만들어냈다. ‘불사조’ ‘사회적 시장경제’ ‘모두를 위한 번영’ ‘모두에게 복지를’ ‘서방과 함께 번영의 양탄자 위에 함께 올라타야’ ‘고도 경제성장’ 등이다.
경제학 교수 출신인 그는 사상가이자 행정가였다. 그는 아데나워에 비해 덜 권위적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았다. 명(名)문장과 수려한 말솜씨로 유권자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에게 ‘선거의 기관차’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그는 ‘철도가 가장 발전한 나라’ 독일에서 기차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유세활동을 펼쳤다. 그가 내건 최고의 선거 슬로건은 ‘모두를 위한 번영’이었다.
기민당은 국민경제와 국민 전체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반면, 사민당은 노동자 계급만을 위한 정당이라고 몰아붙였다. 에르하르트 시절 경제 호황과 더불어 성장 과실을 골고루 나누는 시스템이야말로 연전연승의 숨은 동력이었다.
그래선지 진보진영인 사민당은 59년 수도 본의 ‘바트 고데스베르크(Bad Godesberg)’에서 드디어 정강정책을 바꾸게 된다. 에르하르트가 제기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한편, 계급정당을 포기하고 국민정당으로 거듭나는 게 골자였다. 이를 주도한 사민당의 리더가 훗날 총리가 될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였다.
에르하르트는 기존의 정치가들과는 달랐다. 그는 사상가에 가까웠다. ‘사회적 시장경제’로 독일 재건이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국가 발전의 ‘어젠다 2’를 찾아 나섰다. 교수 출신답게 그는 ‘합리적인 틀을 갖춘 사회(Formierte Gesellschaft)’를 내건다.
대중에겐 어려운 용어였다. 그는 정파나 이익집단 갈등이 경제발전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회를 꿈꿨다. 서독의 고도성장 이유 중 하나는 기득권 또는 특권 집단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총리직에서 중도 하차해야 했다. 고도성장에서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국민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당원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지금 잣대로 보면 당시 3%대의 성장률은 좋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당원과 국민들의 기대 수준은 더 높았다.
결정적인 패착은 당원과 정당을 멀리한 것이다. 그보다 국민과의 직접 만남을 선호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엇박자가 났다. 대서양주의자였던 그는 미국을 믿었지만, 당시 유럽에선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유럽 중심의 드골주의가 득세했다.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르하르트는 보통사람이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낙천적인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선지 후대 독일의 정치 리더들은 경제 위기 때마다 에르하르트를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유럽 경제 위기를 맞아 “에르하르트였다면 어떤 처방을 내릴까?”라며 그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1312호 29면, 2023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