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31)

폴란드, 베를링카 반환 거부

독일 국보 ‘베를링카’를 인질로 잡은 폴란드 ➀

■ ‘전후 인질’이 된 독일 국보, 폴란드 반환 거부

독일 언론은 이들을 ‘마지막 전쟁 포로’라고 일컫는다. 그 포로는 독일을 대표하는 괴테, 루터, 베토벤, 바흐, 실러 등 철학자, 음악가, 시인, 소설가 등이다. 이들의 수기 원고와 악보 등 50만 건 이상을 폴란드가 소장하면서 독일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독일 국가와 유명 저작물의 초판본등 독일 문화와 지성의 정수로, 가히 국보급이다.

폴란드는 이런 것들이 베를린에서 온 것이라 하여 ‘베를링카(Berlinka) 컬렉션’이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9월, 독일 당국은 연합국의 공습에서 보호하고자 베를린에 있는 국립프로이센도서관 컬렉션을 여러 곳에 분산해 대피시켜 놓았다. 그 대피처 가운데 동부 프로이센인 니더 슐레지엔에 있는 그뤼사우(오늘날 폴란드 크제슈프) 수도원에도 상자 500개를 옮겨 숨겨두었다(<뉴욕타임스>, 1995년 4월 25일자 기사).

■ 독일 땅에 숨겼는데, 전쟁 후 폴란드 땅이 되다

전쟁이 끝나고 1945년 8월 포츠담 협정으로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선을 정한 ‘오데르-나이세 선(Oder – Neisse line)’에 따라 그뤼사우가 포함된 독일 동부지역이 폴란드 땅으로 결정되었다. 전후 이곳에 있던 컬렉션을 비밀리에 고스란히 확보한 폴란드 정부는 양도 어마어마하지만, 독일의 대표적 고급 문화유산이었기에 깜짝 놀랐다.

뜻밖에 횡재한 폴란드는 1945년 겨울부터 1946년 사이 경찰을 동원해 이 컬렉션을 남부에 위치한 과거 폴란드 왕국의 수도이자 문화예술 중심지인 크라쿠프로 옮겼다. 그러고는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폴란드는 독일은 물론, 약탈을 우려해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폴란드는 1965년 동독 정부와 프로이센 도서관의 대규모 컬렉션 반환에 합의했지만, 베를링카 컬렉션은 유서 깊은 야기엘론스키(Jagielloński) 대학 도서관에 옮겨두고는 극비에 부쳤다.

그러던 1977년, 사라진 줄 알았던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 악보 원본과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 ‘합창’ 등 악보7 장을 폴란드 공산당 제1서기 에드바르트 기에레크(Edward Gierek)가 동독 파트너인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 서기장에게 선물로 주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넘었고, 수도원에 보관했던 악보와 원고들이 폴란드가 보관한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나타나지 않으면서 독일 당국은 폭격에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독이 받은 선물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다.

■ 베를링카 가치, ‘수백억 달러 악보 한곳에서 볼 유일한 컬렉션’ 베를링카 컬렉션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천재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 존(Felix Mendelssohn, 1809~1847)의 ‘봄의 노래(Im Frühling)’ 원본 악보 한 장이 2020년 7월 소더비 경매에 나왔다. 가격대를 소더비는 2만 5000달러에서 3만 달러 사이로 추정했다. 래리 토드(Larry Todd) 미국 듀크대학 음악학교수는 멘델스존의 빼어난 손글씨를 격찬하면서 “멘델스존의 수기 악보 자체가 바로 예술품”이라며 “그의 손글씨는 아주 놀랍다”라고 평가한다(<월스트리트저널>, 2020년 7월 26일자 기사).

베를링카에는 베토벤이 휙휙 갈겨쓴 교향곡과 모차르트가 또박또박 쓴 오페라 등 대가의 악보 원본 400여 장이 더 있다. 바흐, 슈베르트, 브람스, 슈만, 하이든, 파가니니, 부소니, 케루비니, 텔레만 등의 악보 원곡도 포함되어 있다.

음악학자들은 베를링카에 대해 수백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악보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컬렉션이라고 평가한다. 수백억 달러는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조 원에 이른다.

300년 이상 된 그림, 괴테의 글,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기 원고와 도서 수천 권이 포함되어 있다. 그림 형제(Brüder Grimm)가 손으로 쓴 메모와 독일어 사전의 필사본, 루터, 칼뱅, 괴테, 실러, 헤겔과 헤르더 등을 포함한 친필 서명 등5 0만 건이 넘는다. 독일 문화와 예술, 지성의 정체성을 이룬 정수들이다.

독일 언론들은 베를링카를 ‘독일의 마지막 전쟁 포로’라고도 평한다(<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2007년 7월 26일자).

이와 관련하여 크쥐시토프 자모르스키(Krzystof Zamorski) 전 야기엘론스키대학 도서관장은 “우리가 베를링카 컬렉션을 독일과 교환하려 한다면 쉽지 않다”라며 “도대체 어떤 물건과 교환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여기에 그대로 두면서 모두가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포로 교환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야기엘론스키대학 도서관은 현재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연구자들과 대학원생들만 베를링카 컬렉션에 접근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자모르스키는 “가장 중요한 것은 컬렉션을 공개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독일 정부는 폴란드가 1907년의 「헤이그협약」 제56조 위반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폴란드는 그 컬렉션은 약탈한 것이 아니고 전쟁이 끝나고 폴란드 땅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맞대응한다.

전시 약탈과 반환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헤이그협약」에 따라 베를링카 컬렉션이 전시 약탈품이라는 독일의 주장에 폴란드는 약탈품이 아니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2000년 폴란드는 논란이 된 컬렉션의 소유권을 다루는 ‘폴란드-독일재단’을 설립하자는 구상을 내놓았으나 독일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독일은 베를링카를 무조건 반환하라고 요구하지만, 폴란드는 이를 일축하면서 되레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약탈한 폴란드 문화예술품을 돌려달라고 반격한다.

전쟁 기간 예술품 약탈로 악명 높았던 나치의 후유증이 계속되는 가운데, 독일은 문화재를 회수하지 못한 나라의 고통을 체감하고 있다.

1312호 30면, 2023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