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 대한 향수는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카피톨리노 언덕은 로마 초기 건국시기에 로마 시민이 집단 거주했던 7개의 언덕중 하나이다. 현재도 고전 건축물과 보존가치가 높은 유물들을 소장한 박물관을 포함하고 있어 꼭 한번은 방문해 볼 필요가 있다.
6세기경에 지어진 산타마리아 인 아라코엘리교회와 1348년에 페스트 퇴치 기념으로 건설된 아라코엘리 층계를 포함하여 원로원으로 사용했던 세나토리오궁과 중세 후기부터 시 행정 판사들의 집무실이었던 누오보 궁이 있다. 현재도 1층은 시 행정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고 2층과 3층은 많은 조각품과 더불어 중요 회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누오보 궁은 마주보고 있는 콘세르바토리궁과 함께 현재 카피톨리노 박물관으로 불려지며 이탈리아 고대로마의 중요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카피톨리노언덕에서 볼 만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콘세르바토리궁 뒤로 내려다 보이는 포로 로마노를 빼놓을 수 없다. 로마 시대에 로마시민의 중요한 공공장소이며 수많은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현장이다. 남아있는 것은 파손된 건축물 터이지만 그중 특이 눈을 끄는 것이 바실리카 터이다.
로마시대에 공공재판, 각종 연설회, 또는 상인들의 견본시장등 공적인 용도로 자주 사용되어왔던 바실리카. 포로 로마노에는 유명한 바실리카의 유적이 셋 있다. 포로 로마노를 관광할 때 카피놀리노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상례인데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셉테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이다. 기원 203년에 황제 셉테미우스 세베루스의 즉위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개선문을 언덕 쪽에서 마주보고 왼쪽에 있는 작은 건물이 원로원 건물이고 그 뒤에 있는 것이 에밀리우스 바실리카이다.
기원전 179년에 에밀리우스 레피두스가 세운 바실리카로 현재는 대리석 바닥과 기둥의 밑부분만 만아 있다. 폭 9미터, 길이 24미터, 3랑식의 건물이다. 지붕은 목조 지붕이었다.
이 바실리카는 410년에 서고트족이 로마를 점령하고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을 때 불에 타버렸다. 그때 지붕 장식의 청동이 녹아 떨어져 흩어져 있던 동전과 함께 대리석 바닥에 녹아 붙은 흔적이 오늘날까지도 곳곳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바로 앞에 높이 서있는 기둥 셋은 사투르노 신전 기둥이었고 그 뒤편에 율리우스 케사르의 바실리카가 남아있다. 기원전 54년에 제국 건설을 시작했던 율리우스 케사르의 이름을 땄으며 전에는 문관 법원의 장소였다. 5랑식으로 많은 기둥의 주춧돌이 바둑판처럼 놓여 있어서 누구나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다시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눈을 돌려보자.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또 볼 만한 것이 있다면 박물관 건물들 중앙에 있는 카피톨리노 광장이다. 바닥에 기하학 문양이 잘 어울어진 이 광장은 1539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샤를5세의 로마 방문 기념으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 당시 교황 바울3세의 명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광장 주변에 있는 궁전들의 정면을 다시 설계하고 광장에는 여러 개의 동심타원을 겹쳐 훌륭한 기하학 문양을 만들었다.
또 광장 진입로에는 코르도나타라는 새로운 계단을 만들고 광장 입구 양쪽에 거대한 석상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세웠다. 원래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그리이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미녀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이다. 태어날 때부터 알에서 태어나는 기형적 출생설을 가지고 있고, 또 자라나면서 벌이는 일들이 대체적으로 야만적이며 강간, 납치, 약탈을 일삼는 못된 신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로마 신화에서는 이들 쌍둥이 형제들이 로마를 건국한 로물로스와 레무스를 도운 것으로 설명되면서 로마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다. 못된 형제 카스토르와 폴룩스가 로마의 주요 유적지에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쌍둥이 형제라는 동일한 처지가 협력자로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전설로 볼 수 있다.
청동 기마상은 실수로 보존
카피톨리노 박물관에서 소장한 작품중 제일 중요한 작품을 한점 꼽으라면 광장 한 복판에 세워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 일 것이다. 고대 로마 시대 만들어진 청동 기마상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크기를 보아도, 만들어진 시기를 생각해도 또 제작기법을 연구해 보아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한때 거대 청동기마상 제작 기법은 로마제국 몰락이후 중세 오랜 기간 동안 잊어져 왔던 기술이었다. 다시 가능하게 된 때가 르네상스때 도나텔로에 의해서였다. 도나텔로는 당시 유명한 용병대장 가타멜라타상을 거대한 기마상으로 제작하는데 성공했는데 그때 참고한 작품이 바로 이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상이었다.
로마시대의 거대 청동 기마상중 대부분은 후대 기독교 시대에 우상 숭배 금지라는 이유로 녹여 없어졌다. 그런데도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동상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있다. 이유는 그 모습이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비슷해 두 인물을 혼동했기 때문에 훼손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대 유물 보존차원에서 본다면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광장 중앙에 세워진 청동상은 모작임을 알아두자. 원본은 박물관 내부에 소장되어 있다.
근대에 조성된 베네치아광장과 르네상스이전부터 조성된 카피톨리노광장. 또 로마시대의 생생한 현장인 포로 로마노. 규모와 조성된 시기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치와 성향이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역사와 더불어 이어진 고전>이 아닐까? 로마를 방문해서 베네치아 광장을 본다면 그것은 바로 이탈리아를 보는 것이다.
다음호에는 광장<베네치아>가 아닌 도시 <베네치아>로 가보자.
2020년 4월 17일, 1167호 20-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