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도자기
- 마이센 도자기
마이센의 명성이 300년간 지속된 데는 세 이름의 힘이 크다. 우선 앞서 나온 뵈트거가 경질자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주원료인 ‘카올린(Kaolin)’을 찾아낸 덕분이다. 게다가 그가 알아낸 최상의 유약 제조법은 지금까지도 마이센의 비밀이다.
궁정조각가 출신의 요한 요아킴 켄들러(Johann Joachim Kaendler)는 섬세한 조각같은 도자기를 만들었다. 또 화가인 요한 그레고리우스 해롤트(Johann Gregorius Hoeroldt )는 이 위에 유려한 그림을 그려 품격을 높였다. 켄들러 조각의 특징은 살아있는 듯한 디테일이다. 주물로 찍어낸 섬세한 작은 흙덩이를 붓에 물을 묻혀 하나씩 도자기에 붙인다. 형태가 완성되면 1200~1300도에서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을 바른 뒤 다시 같은 온도에서 재벌구이를 한다. 그러면 백자가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다시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한 후 다시 900도에서 구워 완성한다. 전 제작과정은 수(手)작업으로 이뤄진다.
화가 해롤트는 중국과 일본 도자기의 패턴을 모방하지 않고 유럽의 풍경과 정물, 초상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 오늘날 도자기회화의 시초이기도 하다.
마이센 도자기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레스덴 츠빙거궁전내의 도자기 박물관을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이곳에는 마이센 도자기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해 온 형형색색의 도자기가 전시돼 있다.
- 빌레로이 앤 보흐 (Billeroy & Boch)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도자기 제조사로 유럽 황실 뿐만 아니라 교황이 사용하는 명품으로 더욱 유명한 빌레로이 앤 보흐사는 서로 경쟁관계였던 빌레로이가와 보흐가의 병합으로 이루어졌다.
1748년 장 프랑수아 보흐(Francois Boch)는 그의 세 아들들과 함께 작은 도자기 공장을 세운다. 폭증하는 주문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1767년 복제생산을 시작한다. 한편 1791년 도기공장을 세운 니콜라스 빌레로이(Nicolas Villeroy)는 도자기에 세밀화를 입히는 획기적인 기술에 성공하면서 보흐가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보다 견고한 시장입지 구축하기 위해, 1836년 이 두 집안이 병합의 길을 택함으로서 지금의 빌레로이 앤 보흐가 세워지게 된다.
오르세미술관(Musee d’Orsay)에 전시중인 빈센트 반 고흐 작 ‘유진의 초상화’의 주인공은 보흐가의 유명한 화가 유진 보흐(Eugene Boch)인데, 이 둘은 절친한 친구사이였다 한다. 이처럼 빌레로이 앤 보흐가 사람들은 그 시대를 이끌어 갔던 예술가들과의 개인적인 친밀함에서 오는 영감의 교류를 소중하게 여겼다. 이는 그들에게 무한한 상상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 꾸준한 제품 개발을 가능하게 했고, 이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브랜드가 되었다.
- 웨지우드(Wedgwood & Corporation Limited)
영국의 대표하는 세계적인 도자기 브랜드인 웨지우드는 1812년 본차이나(Bone China)를 최초로 개발한 회사로도 유명하다. 영국의 세계적인 도자기 공예가인 조지아 웨지우드(Josiah Wedgwood)가 1759년에 설립하였다.
영국의 도자기 산업은 17세기까지 런던과 브리스톨(Bristol)에서 생산되는 델프트 도기(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연유된 시작된 연질의 석유도기)가 주를 이뤘지만, 18세기에 들어서면 고급 도자기와 석제품이 이를 대체하는데, 특히 이러한 생산에 필요한 고품질의 점토와 석탄이 생산되면서 도자기 산업이 급격히 발전했다.
웨지우드가 개발한 녹색 유약을 이용한 도기는 호평을 얻었으며, 1762년에는 에나멜을 이용한 엷은 황색 도기를 완성시켰다. 이것은 샬로트 왕비(Queen Charlotte, 조지 3세의 아내)에게도 납품되어 1765년 ‘퀸즈웨어’(여왕의 도기 Queen’s Ware)라는 명칭 사용이 허가되었다. 퀸즈웨어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대륙에도 출시되었고, 1774년에는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에서 944점의 프로그 서비스 (Frog Service) 도자기 세트를 주문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 로얄 코펜하겐 (Royal Copenhagen)
로얄 코펜하겐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자기 브랜드로 200년이 훨씬 넘는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역사는 1770년대 초 화학자 프란츠 하인리히 뮐러(Frantz Heinrich Mueller)가 덴마크의 진흙을 이용한 자기 제작에서 성공하고, 독일에서 시집온 율리안 마리(Juliane Marie) 왕비의 지원으로 덴마크 도자기 제작소가 개설되면서 시작됐다.
1775년 왕실 도자기 업체가 된 로얄 코펜하겐은 이후 100여 년간 덴마크 왕실의 전용 식기를 제작, 왕실을 위한 그릇만을 만든다. 일반인의 구입이 가능한 자기가 된 후에도 왕실로부터 ‘로얄’이라는 칭호를 내려 받고, 왕실이 부여한 이름을 지키기 위해 “왕가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그릇에 담아왔다.
로얄 코펜하겐은 본차이나가 아니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1400도 이상의 온도에서 소성된 완벽한 화이트의 색상과 투명성이 바로 로얄 코펜하겐의 가치다.
또 하나, ‘로얄 코펜하겐’의 차별화된 기술력은 상회기법과 하회기법을 이용한 유약 작업이다. 초벌구이 후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재벌구이하는 하회기법을 사용할 경우, 유약을 굽는 온도인 1400도 이상의 열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견디는 세 가지 색상인 청색과 적색, 녹색만이 사용 가능한데, 특히 로얄 코펜하겐은 로얄 블루의 색상을 사용하여 수채화처럼 맑은 느낌의 그림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동양의 신비로움을 유럽적 취향으로 표현한 이 투명한 블루의 느낌은 로얄 코펜하겐만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로 ‘코펜하겐 블루’라는 색 명칭을 탄생시킬 정도로 유명한 푸른 빛이다.
한편 유약 위에 그림을 그리는 상회기법을 통해 다채로운 색감으로 화가의 캔버스를 보는 것 같은 화려한 느낌의 자기를 만들었고 이는 로얄 코펜하겐을 ‘도자기 수공예의 극치’라 불리게 했다.
2020년 6월 5일, 1173호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