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울려퍼진 한•독시민의 평화 외침

© Dong-Ha Choe

베를린에 울려퍼진 한•독시민의 평화 외침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풍경

일본 정부의 사전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비공개로 진행된 소녀상 건립 준비 과정과 제막식 직전에 공개한 행사 정보에도 불구하고 3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제막식에 모여들었다. 경이로운 일이었다.

소녀상 건립을 주도한 코리아협의회 대표이사 겸 코리아협의회 산하 <일본군위안부문제대책협의회>(이하 ‚협의회‘)대표인 한정화는 ‚소녀상은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의 의미를 넘어, 미래를 위해 함께 과거를 청산하자는 제안‘이라는 말로 행사를 열었다.

독일의 역사를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조형물이 아닌 경우 사실상 건립이 불가능한 현지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소녀상 건립이 성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을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제막식 잔치에 손님들을 불러모은 주최자가 협의회와 베를린 모아비트 지역 지역공동체인 <레유니온>(reUNION)인 만큼 레유니온 소속, 에스더 클로베 바이만(Ester Kolbe-Weihmann)도 환영의 말을 보태었다. 침묵을 깨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소녀상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용기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이어졌다.

이번 소녀상은 베를린시 도시공간문화위원회의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 처음으로 공공부지에 건립한 만큼, 건립을 허가해준 베를린시 미테구의 <평생교육, 문화, 환경, 자연, 도로, 녹지부>를 대표하여 우테 뮐러 티쉴러(Dr. Ute Müller-Tischler)도 축사를 건넸다. 소녀상으로 인해 우리는 영혼이 파괴당한 어린 소녀를 보고 있지만 또한 동시에 강한 여성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를 통해 여성 성폭력이라는 주제를 시민들에게 상기시킬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나의 고통이 어떻게 우리의 고통이 되는지, 고통의 사회성은 어떻게 획득되는지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이 날 행사는 인권운동가이자 팟캐스트 ‚DonnaSori‘ 진행자인 테아 서(Thea Suh)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핸드팬 연주가인 진성은의 ‚길‘ 연주, 도이체 오퍼 소속 목진학의 독창 ‚가시리, 정은비 트리오의 타악기합주, 가야무용단의 아리랑무, 신효진과 나래 쉐아플링(Na-Rhee Scherfling)의 설장고, 민요노래모임의 민요로 더욱 풍성했다. 그 동안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함께해왔던 예술가들이 꾸민 다양한 무대는 제막식 참여자들뿐 아니라 주변 시민들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제막식 초청이 불발된 국내 인사들의 비디오 영상 메시지도 이어졌다. 올 한 해 일본군 안부 운동을 둘러싼 논란의 한가운데 서서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 이용수 할머니와 이번 소녀상 제작비 및 운송비를 후원한 <정의기억연대>의 이나영 이사장,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 김운성 작가였다.

재정적 후원을 비롯해 ‘베를린 여성액션 주간’, 국제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평화집회 등 운동 현장에서 대책위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하나된 세상을 위한 독일 재분배재단> 여성분과대표 베레나 프랑케(Verena Franke)와 <야지디족 여성협의회> 활동가인 누지안 귀나이(Nujian Günay)의 발언도 있었다.

귀나이는 “2014년 이슬람국가(IS)의 야지디족 인종 말살 공격 뒤 많은 여자들이 성폭력 희생자가 됐다. 아직 3천명은 실종상태다. 이들 대부분은 여자”라면서, 소녀상 건립은 여성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전 세계인에게 의미 있는, 영광스러운 날이라 했다. 프랑케 역시 야지디족 여성들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였다. 독일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세계 여성운동사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발언이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소녀상 제막은 대책위 활동가들과 레유니온 소속 시민들이 맡았다. 모처럼 맑고 따뜻한 가을 하늘 아래 화관을 얹은 소녀상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한참 동안 줄을 지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편, 전범국가의 역사 청산이란 측면에서 독일은 대개 모범국가로 거론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적으로 자행된 성노예 제도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정작 드물다. 라벤스브뤼크시 나치강제수용소 전시관 관장이었던 종교학자 에쉐바흐 박사(Dr. Insa Eschebach)는 축하 발언에서 “평화의 소녀상은 공격적이지 않으며, 주먹이나 깃발을 쳐들거나 불꽃이나 무기를 손에 들지 않고서 항의하고 있다. 소녀상은 존재와 인내로서 대항하며, 이것이 바로 소녀상의 힘이다”라고 일갈했다.

에쉐바흐는 이어 2차대전 당시 수용소 내에서 이뤄진 독일의 성노예 역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라벤스브뤼크 수용소에서 여성들은 군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10 개의 다른 강제 수용소에 있는 남성 수감자들을 위한 성노동을 위해 징집되었는데, “열심히 일하는 수감자”에게 인센티브로 “위안소의 여성”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성욕을 충족시키는 것은 수감된 남성에게 주어지는 보상이자 더 나은 작업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는 2 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일본의 군의관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었다고 덧붙였다.

소녀상 철거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압력을 가하는 일본 정부의 집요함을, 기념관 내 소녀상 건립 과정과 초소형 소녀상 철거 사례를 통해 몸소 체험한 경험자이기도 한 그는 결국 독일의 전시 성폭력 역사를 통해 한국의 소녀상이 지금 왜 베를린 한복판에 서 있는지 길게 질문하고 있었다.

문화•정치학자이자 독일과 유럽의 이주민 정체성 및 이주민정책 연구의 권위자로서 ‚우리 모두에게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 하 키엔니 박사(Dr. Kien Nghi Ha), <메디카 몬디알레>(medica mondiale 세계적인 전시 성폭력 여성인권단체), <Frauenverband Courage>(독일 전국 여성단체), <Zusammen Hamhung e. V.> (북한 장애인지원 독일시민단체)도 단상에 올라 세계여성인권을 위한 연대를 호소했다. 대책위 활동가인 김진향과 최영숙, 조혜미의 수어로 행사는 마무리되었으나, 소녀상과의 기념촬영으로 인해 인파는 좀처럼 흩어질 생각이 없었다.

제막식 다음날 바로 일본 정부는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위해 다양한 관계자와 접촉하고 기존 입장을 설명하는 등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 공표했다. 유럽을 방문 중인 일본의 모테기 외무상은 또한 10월 초 독일 외무장관 하이코 마스(Heiko Maas)와의 전화 회담에서 독일 수도 중심부에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일본의 입장과 어긋난다며 철거를 위한 협력을 요구하기도 했다.

대책위는 앞으로 주변 학교들과 협력하여 교육사업에 집중하고, 이 일환으로 지난해에 개관한 소녀상 근처<무언다언 전시관>(일본군 위안부 문제 및 여성 전쟁 성폭력을 주제로 한 상설전시관)을 청소년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필시 긴 싸움이 될 소녀상 지킴이 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대책위는 이를 위해 대대적인 시민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아플 때 더 분명하게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이현승의 시 <빗방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중)

평화의 소녀상 후원계좌:

Korea Verband e.V.

Bank: GLS BANK

IBAN: DE74 4306 0967 1223 1367 00

BIC: GENODEM1GLS

글 / 코리아협의회 정유진 jung@koreaverband.de

사진 제공 / 코리아협의회 www. koreaverband.de

1190호 19면, 2020년 10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