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76)

우리문화의 정수 판소리(2)

클래식에 취미가 없는 사람들에게 서양의 오페라는 바로 듣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쉬운 상대는 아니다. 우리의 판소리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서양의 오페라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쩌다 들어 본 판소리에 마음이 실리고 절로 흥이 나는 경험을 한번씩은 해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에 녹아있는 전통이 갖는 힘이다.

문화사업단에서는 우리 문화의 정수인 판소리에 대해 살펴본다.

판소리다섯마당 (1)

판소리에서는 작품하나를 ‘한 마당’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의 정조, 순조때는 그 종류가 매우 많았다. 그 중에서 12가지를 골라 ‘판소리 12마당’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소리꾼들에 의해 완성되어 온 것이다.

현재 전창되고 있는 판소리는 5마당(춘향가ㆍ수궁가ㆍ심청가ㆍ홍보가ㆍ적벽가)이다.

◇ 심청가

어린 심청이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을 받고 뱃사람들에게 인제수로 팔려 바닷물에 빠지나, 옥 황상제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와 황후가 되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심청 이야기가 어느 때에 판소리로 짜였는지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순조 때에 송만재가 쓴, 판소리 <심청가>의 내용을 다룬 문헌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 “관우희”라는 글에 <심청가>가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하나로 꼽힌 것을 보나, 일본 제국주의 시대 때에 정노식이 쓴 <조선 창극사>에 “순조 때의 명창인 방만춘이 그때에 불리던 <심청가>를 다시 고쳐 짰다”고 적혀 있는 점들로 미루어 생각하면, 영조, 정조 무렵에는 이미 판소리로 불리고 있었던 것 같다.

<심청가>는 예술성이 높기로는 <춘향가> 다음으로 평가되며, 슬픈 대목이 많아서 계면조로 된 슬픈 소리가 많다. 또한 아니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소리에 능하지 않고는 <심청가>를 이끌어 가기가 매우 어렵다.

<심청가>는 이야기의 줄거리와 가락의 짜임새로 봐서, 첫째로, 심청이 태어나는 대목부터 심청 어머니 출상하는 대목까지, 둘째로, 심 봉사가 젖을 동냥하러 다니는 대목부터 몽은사 화주승에게 공양미 삼백석을 바치겠다고 하는 대목까지, 세째로, 심청이 후원에서 기도하는 대목부터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까지, 네째로, 심청이 용궁으로 들어가는 대목부터 황후가 되었으나 아버지를 만날 길이 없어서 탄식하는 대목까지, 다섯째로, 심 봉사가 맹인 잔치에 참예하려고 황성으로 가는 대목부터 눈을 뜨는 대목까지의 다섯 부분으로 가를 수 있다.

역대의 명창 가운데 <심청가>를 잘 부른 사람들을 살펴 보면, 먼저, 순조 때의 명창인 김제철이 있는데, 심청이 태어나는 대목이 그의 더늠(옛날 명창들이 특징있는 가락으로 짜서 장기 삼아 부르던 판소리 대목)이라고 전해진다. 철종 때의 명창인 박유전도 <심청가>를 잘했다고 하는데, 그의 <심청가>는 이날치, 정재근을 거쳐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 춘향가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의 딸인 성춘향이 남원 부사의 아들인 이몽룡과 백년가약을 맺었으나 이별한 뒤에, 신임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여 옥에 갇히자, 암행어사가 된 몽룡이 구해 준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으로, 문학성으로나, 음악성으로나, 연극적인 짜임새로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가장 예술성이 높은 마당으로 꼽힌다.

춘향의 이야기가 어느 때부터 판소리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알 갈이 없으나, 영조 30년에 유진한의 문집인 <만화집>에 실린 “가사 춘향가 이백귀”라는 글에, 가색이 춘향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부르는 것이 시로 읊어져 있다.

또한 순조 때의 문인인 송만재가 적은 “관우희”라는 글에는 <춘향가>가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음으로 보아, <춘향가>는 적어도 숙종 무렵에는 판소리로 불리기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춘향가>는 이야기의 줄거리나 소리의 음악적인 짜임으로 따져, 첫째로, 몽룡이 광한루에서 춘향과 만나는 대목, 둘째로, 몽룡이 천자풀이를 하는 대목에서 두 사람이 사랑가를 부르는 대목까지, 셋째로, 이별하는 대목, 넷째로, 신연맞이 대목에서 춘향이 옥중가를 부르는 대목까지, 다섯째로, 몽룡이 과거에 급제하고 전라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와서 춘향 어머니와 옥에 갇혀 있는 춘향을 만나는 대목까지, 여섯째로, 변 사또의 생일잔치가 벌어지는 데에서 뒤풀이까지로 나눌 수 있다.

해방이 되고 난 뒤에는 판소리가 많이 쇠약해졌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김연수는 <춘향가>를 새로 길게 짜서 불렀는데, 그의 제자 오정숙이 여덟 시간 반쯤에 걸쳐 부른 적이 있다. 이에 앞서, 박동진도 새로 짠 <춘향가>를 여덟 시간쯤에 걸쳐 쉬지 않고 불러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오늘날 <춘향가>를 부르는 명창들에는 이밖에도 김여란, 김소희, 정광수, 박봉술, 정권진, 성우향, 조상현, 성창 순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김여란은 정정렬의 바디( 어느 명창이 짜서 불렀고, 또 뒷사람이 전해받은 판소리 한 마당 모두)를, 박봉술은 형인 박봉래에게서 전해 받은 송만갑 바디를, 정권진,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은 김찬업과 정응민을 차례로 거쳐 전해진 김세종 바디를, 정광수는 김창환 바디를 부르고 있다.

1251호 23면, 2022년 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