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 88

그리스신화 유럽 미술 작품: 제우스신의 변신이야기①

제우스(Zeus)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신들의 제왕이다.

‘아버지 신’ 제우스의 능력과 권위는 여인들과의 관계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맘에 둔 여인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취하고 만다. 특히 자주 쓰는 방법은 ‘변신술’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에는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제우스 신의 흥미로운 모험담이 그려져 있다. <변신이야기>는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문학과 미술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문화사업단에서는 신들의 제왕 제우스의 일화를 미술작품들과 함께 짚어보도록 한다.

제우스와 다나에

신들의 신인 하늘을 지배하는 제우스는 여성편력이 너무도 심한 바람둥이였다. 그는 부인 헤라의 눈을 피하고 여자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조차 서슴치 않았다.

먹구름으로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울리지 않는 백조의 모습으로 심지어는 황소의 모습으로 변해서 수많은 여자들을 탐닉했는데 이번호에는 제우스가 황금의 비로 변신하여 ‘다나에’를 유혹하는 것을 주제로 한 작품을 살펴본다.

아르고스(Argos)의 왕 아크리시우스(Acrisius)는 슬하에 아들이 없고 다나에(Danae)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신탁에 따르면 그녀의 아들이 아크리시우스를 죽인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딸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그녀를 지하 감방에 가두어 버렸다.

그런데 그녀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 신이 황금의 비(雨)로 변해 그녀와 교합했고, 거기서 페르세우스(Perseus)가 태어났다. 다나에는 그 후 4년 동안 그를 지하 감옥에서 길렀으나 어느 날 아이 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버지에게 발각되었고, 그는 두 사람을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워 버렸다. 둘은 세리포스 섬의 딕티스라는 어부에 의해 구조되었고, 불길한 신탁은 위대한 영웅으로 자란 페르세우스에 의해 실현되었다.

티치아노의 다나에

이탈리아의 거장 티치아노는 제우스가 변신한 구름이 금빛 소나기를 뿌리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그림 속 침대 위에 누드로 누워있는 여자가 공주 다나에다. 그녀의 곁에 있는 늙은 유모는 큐피트의 역할을 대신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금빛 소나기를 천을 들고 받아내고 있다.

이는 상당히 에로틱한 표현이다. 금빛 소나기는 남성의 정액을 상징한다. 다나에가 침대 위에 옷을 벗고 누워 금빛 소나기를 맞고 있는 장면은 바로 그녀와 제우스의 정사를 의미한다.

티치아노는 이 관능적인 주제에 매혹돼 다나에를 소재로 세 번이나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에 얽힌 일화가 하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또 하나의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가 이 그림을 본 뒤 티치아노에게 가서 경의를 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방을 나온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티치아노의 기법에 대해 혹평했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다나에

렘브란트가 아내가 죽은 후 완성한 작품으로 그의 복잡한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화면의 황금빛이 새어든 방안은 포근한 잠자리와 풍만한 여체로 감미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제우스를 반기는 다나에의 모습에서는 삶의 희열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85년에 어떤 사람이 물병에 황산을 담고 Hermitage 박물관으로 들어와, 그림에 황산을 붓고 칼로 두 군데를 찢는 사건이 일어나 복원에만 10년이 걸렸지만 아직도 황산자국이 조금 남아있다고 한다.

클림트의 다나에

클림트에 의해서 다나에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되었다. 늘어진 커튼을 제외한 모든 소품들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다나에의 웅크린 자세는 비좁은 청동감옥의 공간감을 충분히 살려주기도 하고, 사랑의 자세를 표현하기도 한다.

관능적 희열이나 공포가 아닌 야릇한 표정 속에 첫경험의 감정을 담고 있다. 이 여인의 다리 사이로 제우스의 황금비가 쏟아진다.

티치아노의 ‘다나에’는 황금소나기로 변한 제우스가 빛나고, 렘브란트의 ‘다나에’는 남자를 기다리는 애틋한 그리움이 강조되어 있다면, 클림트의 ‘다나에’는 사랑 속에서 혼연일체가 된 감각적이고 관능적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263호 23면, 2022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