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16)

크베들린부르크의 성과, 협동교회 구리고 구 시가지 (Stiftskirche, Schloss und Altstadt von Quedlinburg)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작센안할트 주에 있는 크베들린부르크(Quedlinburg)는 작센 오토 왕조 시대 동프랑크 왕국의 수도로서 중세 이후 번성했던 무역 도시였다. 잘 보존된 목조 건물이 다수 있는 크베들린부르크는 중세 유럽 도시의 예외적인 사례이다. 성 세르바티우스 협동교회(Stiftskirche St Servatius)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걸작이다. Stiftskirche는 왕이나, 귀족 등이 종교적 이유로 교회를 지어 헌납한 교회를 뜻하는 단어로 한국교계에서는 협동교회로 번역하고 있다.

크베들린부르크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현재까지 보존된 중세의 거리 형태, 16세기~17세기에 지은 목조 주택, 중요한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인 성세르바티우스 협동교회가 그것이다. 이는 유럽 중세 도시의 성장을 보여주는 고전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하르츠(Harz) 산맥 북쪽의 구릉지역에 위치한 크베들린부르크는, 독일 왕이자 신성로마황제인 하인리히 1세의 922년 공식 문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그는 하르츠 계곡을 내려다보는 언덕 2개 가운데 하나에 성을 세웠고, 이후 동 프랑코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922년〜1207년 69차례에 걸쳐 신성로마황제들이 크베들린부르크에 머물렀을 정도로. 크베들린부르크는 정치적으로 높은 위상을 갖고 있던 도시였다. 이러한 환경으로 크베들린부르크에서는 중요한 정치·종교 집회와 축제가 자주 열렸고, 도시의 부와 명성도 높아졌다.

936년 하인리히 1세가 죽자 왕비 마틸데는 크베들린부르크의 성 언덕에 있는 성 세르바티우스 협동교회에 남았다. 이 교회는 하인리히의 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인 오토 1세가 귀족 미혼 여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건립하였다. 왕족들의 교회로서 세르바티우스 협동교회는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었고, 이후 944년부터는 크베들린부르크에서 동전 주조 권리를 얻었다.

한편 946년에는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뮌첸부르크(Münzenberg) 언덕에 건축되었다.

부르크베르크(Burgberg) 주변 지역인 베스텐도르프(Westendorf)는 곧 상인과 장인들의 정착지가 되었고, 994년에는 시장 설립 허가를 받았고, 이 시장하가는 1040년, 1134년 재차 연장되었다. 주변의 다른 정착지들도 발달하여 초기 도심지를 형성하였는데, 11세기, 12세기에 하인리히 3세와 로타르 4세는 이들 지역에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였다.

크베들린부르크의 상인들은 북해에서 알프스에 이르는 지역에서 규제와 납세 의무 없이 무역할 권리를 얻었고, 자신들의 재판소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도시는 번창하였고 급속히 확장되었다. 12세기에 보데(Bode) 강 동쪽 기슭에 신도시(Neustadt)가 중세 유럽도시의 표준적 설계를 따라 세워졌다. 두 도시는 1330년에 통합되었다고, 이어 ‘암 노이엔 베그(Am neuen Weg)’와 ‘인 덴 그로펨(In den Gropem)’ 같은 교외 지역이 급속히 발달하였다. 새로 확장된 도시는 1384년 니더작센(Lower Saxon) 도시동맹(Stiidtebund)에 합류하였고, 1426년에는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의 일원이 되었다.

크베들린부르크는 15세기 정치·경제적 분쟁에서 패배하여 결과적으로 1477년에 독점 사업권과 상업 특권을 잃었다. 그러나 16, 17세기에 만들어진 다수의 정교한 목조 주택은 크베들린부르크가 당시에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한편 작센의 선제후는 1698년에 브란덴부르크 프로이센 가문에 크베들린부르크의 보호령(Vogtei)을 매각하였다. 1802년 이곳은 프로이센 왕국에 공식적으로 통합되면서 크베들린부르크가 황실의 근거지로서 특별히 누렸던 자유로운 지위는 사라졌다.

크베들린부르크 지역은 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시벽이라고 불린다) 안에 자리한 역사적 도시로 구성되는데, 오래된(10세기) 도시와 새로운(12세기) 도시, 협동교회와 황실의 근거인 건물들이 있는 베스텐도르프 지구, 성바이페르트 성당과 뮌첸베르크 등이 있다.

세르바티우스 협동교회의 지하 묘소에는 하인리히1세와 아내 마틸데가 매장되었는데, 1070년 대화재로 파손되었고, 1129년에 재건축되었다.

통로가 3개인 지하 묘소에는 서쪽에 있는 기둥 사이 구획 2개가 남아 있다. 거기에는 오토 왕조의 ‘버섯’ 모양 기둥머리[柱頭]가 있다. 교차 궁륭의 둥근 천장, 치장 벽토로 장식한 주두, 황실 묘소와 다른 묘들, 벽화 등으로 이 새로운 지하 묘소는 예술 역사상 10, 12세기의 주요 기념물로 꼽힌다. 쌍둥이 탑이 있는 서쪽의 정면 부분은 재건할 때 추가하였다. 장식은 대부분 북부 이탈리아 양식으로, 황실이 교회와 연관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성 박물관(Schlossmuseum)이라는 이름으로 하인리히 1세와 그의 아들 오토 1세(Otto I) 등 역대 오토 왕조의 역사와 보물이 전시되어 있다.

1264호 31면, 2022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