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아침 7시, 카셀행 기차를 탔다.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해오던 카셀대학 소녀상이 드디어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소녀상 설치뿐 아니라 전시회에 임시로 비치할 때도 매번 일본 측의 방해가 있어 왔기에 대학교 내에 소녀상을 영구적으로 설치하는 게 정말 실현되는 것일까 믿기지 않았다. 코레아협의회는 일본 측의 사전 방해를 차단하기 위해 그동안 모금 활동도, 제막식 홍보도 마음껏 하지 못했다.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을 학생들이 무슨 인연으로 소녀상을 캠퍼스에 세우는 일을 벌인 것일까. 학생들의 동기와 생각이 너무나 궁금했다.
오후 4시, 카셀대에 도착. 30분 뒤 제막식이 열릴 총학생회 본관 앞 신축공원에 다다르자 보라색 천으로 덮인 소녀상이 보였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분들께서 이 현장을 직접 보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에는 소녀상을 제작하고 카셀 학생회 측에 기증한 김운성 작가도 참여했다. 김 작가는 축사에서, 이번 소녀상 설치는 전 세계적으로는 99번째, 유럽 및 독일 공공부지에 건립되는 사례로는 두 번째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진성은 씨(핸드팬)와 박현정 씨(가야금)가 각각 ‘자유’와 ‘지속성’이라는 주제로 즉흥 연주를 펼치기도 앴다.
카셀 지역 신문사에서도 취재 차 찾아왔고 현지 반파시스트 단체도 참여해 연대사를 전했다. 카셀 내 한인회가 없어진 후 다시 한글학교를 만든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 박사과정 중인 유학생도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행사 후 총학생회 회장 토비야스를 만났다. 특별한 동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먼저 스스로를 반파시스트주의자라 소개하며 전세계적으로 파시즘이 재등장하고 있는 경향성에 우려를 표했다. 일본 전시 성폭력 문제 또한 그 사례 중의 하나임을 지적하며 국제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별히 소녀상이란 작품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소녀상이 ‘저항’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론을 통해 베를린 소녀상을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와 현재 소녀상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알게 되었고, 총학생회장과 학생회 임원들은 이처럼 외교적인 이해관계로 피해여성들이 다시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큐멘타> 전시 때 소녀상을 설립하여 전 세계인에게 이를 알리고 싶어 기획했다는 것이다.
총학생회 측이 소녀상을 세우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토비야스가 코레아협의회에 연락을 한 건 올해 1월, 제막식까지 6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반 년 만에 가능했느냐는 질문에 “왜냐하면 내가 원했으니까요! “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소녀상이 설치된 공원 부지 조성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세바스찬 (27)도 만났다. 그는 “카셀에 유학중인 국제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이 학생들을 함께 모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소녀상 설치를 기획했다고 했다. 총학생회가 학교 측에 소녀상 설치 제안을 했을 때 대학 부총장은 학교에 이 같은 기여를 해줘서 감사하다며 오히려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소녀상 바로 뒤 건물은 아픔의 역사가 깃든 장소라 더 큰 울림을 준다. 세바스찬은 소녀상 뒤의 건물은 2차대전 당시 나치 군대가 활용했던 건물로 당시 유대인들이 강제 노역을 했던 곳이라 저항을 상징하는 소녀상을 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즉 갈등의 상징이 아닌 화합과 국제 연대의 상징물로, 그릇된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의미로 설치했다는 것이다.
소녀상 설치를 성사시킨 것에 감사의 뜻을 전했을 때 그는 “우리가 한 일은 매우 작은 부분이다. 집단 기억을 존중하며 만약 일본정부가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면 언제라도 맞설 준비가 돼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학생회는 일본군 ‘위안부’ 및 여성성폭력 문제 관련하여 매년 학술회, 전시회, 워크숍 등을 개최한다. 장기적으로 소녀상을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관련 행사를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대학 내에 “캠퍼스에 소녀상을!”라는 후원회를 공식 발족하여 운영 중이다.
끝으로 이 소녀상을 독일로 공수해 오기 위한 운송요금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다. 이제 소녀상은 설치되었으나 운송비 모금캠페인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운송비를 기부한 시민들 및 단체는 추후 카셀소녀상 옆 동판에 이름을 별도로 새겨 소녀상 옆에 설치할 예정이다. 교민 분들의 정성 어린 후원을 기다린다.
기사제공: 코리아협의회 편집부
1275호 15면, 2022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