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한국의 삼보사찰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를 살펴보다(4)

한국인들의 삶은 한반도에서 2000년의 역사를 지켜온 불교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기에 깊은 산중의 산사(山寺)는 마음속에 잠재된 고향과도 같이 편안하고, 한번쯤은 꼭 찾아보고 싶은 존재이자 우리의 한국 여행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방문지이기도 하다.
문화사업단에서는 한국의 사찰 가운데 이른바 삼보(三寶)사찰을 살펴보며 한국 사찰의 진수를 살펴보도록 한다.

승보사찰 송광사

송광사(松廣寺)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양산 통도사(불보사찰), 합천 해인사(법보사찰)와 더불어 한국 삼보사찰로 불리고 있다.

신라 말엽에 혜린대사(慧璘大師)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吉祥寺)라 부르던 것을 시작으로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도, 참선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승보사찰이 되었다. 지눌, 혜심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하였다. 외국 승려가 수도하는 국제선원이 있다.

역사

신라 말 혜린대사(慧璘大師)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길상사(吉祥寺)로 작은 규모의 절이었다. 이후 고려 인종 때 석조대사(釋照大師)가 절을 확장하려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이다. 이때 고려 희종이 길상사를 수선사(修禪社)로, 송광산을 조계산(曹溪山)으로 개명하였다.

이후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4]

그 동안 정유재란, 한국 전쟁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의 유래

고려 희종 이래로 수선사(修禪社)였던 사명(寺名)이 언제 송광사로 개칭됐는지는 알 수 없고,[4]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전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18명의 승려가 나서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즉,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승려를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둘째, 지눌이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을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 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셋째,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주요 문화재

목조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경내에는 약 80여 동의 건물과 부도·비석 등이 있다.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하는 국사전 등의 국보 4점을 비롯하여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등 보물 13점, 천연기념물인 쌍향수 등 국가문화재 17점과 정혜국사사리합 등 지방문화재 10점을 포함, 모두 27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송광사는 절의 전체 면적, 전각의 수가 전국에서 손 꼽힐 정도로 크다. 다만 큰 절임에도 불구하고 탑이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풍경과 석탑, 석등이 없기 때문에 송광사에는 3가지가 없다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풍경이 없는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스님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며, 석탑과 석등이 없는 이유는 송광사 터가 연화부수형으로 무거운 석탑을 세우면 가라 앉는다는 의미 때문이다.

또한 3가지 명물도 있는데, ‘비사리구시’라고 불리는 커다란 나무 밥통, ‘능견난사’ 라고 하는 음식을 담는 그릇들, ‘쌍향수’ 라는 향나무. 이 3가지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어 장엄한 기상을 나타내며, 전마다 피어오르는 향과 은은한 목탁 소리, 낭랑한 독경, 찬란한 고찰의 승맥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송광사는 빼어난 풍경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특히 삼청교 위의 우화각이 육감정과 어우러진 모습이 최고로 꼽힌다. ‘육감정’은 임경당 건물의 대청마루 구조로 지어졌는데 ‘눈, 귀, 코, 혀, 몸, 생각을 고요히 해 지혜롭게 마음을 비춰보는 정자’라는 뜻이다. 그 너머로 보이는 우화각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삼청교 위에 지어진 건물이다.

사람들의 통행을 돕고자 만들었으며 들어가는 입구는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자와 비슷한 팔작지붕을 올렸다.

삼청교는 다리 밑으로 흐르는 계곡을 이용하여 19개의 4각장대석을 각지게 맞춰 홍예(虹蜺)모양을 이루고 양쪽 측면으로는 막돌이 아닌 4각판석을 쌓아올렸다. 또, 난간 받침돌과 돌출된 중심돌 위에 4개의 긴 돌을 연결하여 난간을 이루었고, 홍예 천장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돌이 나와 있다.

다음은 송광사 내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이다.

  • 국보 제42호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 국보 제43호 혜심고신제서
  • 국보 제56호 순천 송광사 국사전
  • 국보 제314호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 21개의 보물, 천연기념물 제88호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

1310호 23면, 2023년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