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생활 속의 경제이야기]
튀르키예 케밥으로 해장하는 독일인

코트라 함부르크 무역관 윤태현 과장

교포신문에서는 2022년 11월부터 코트라 함부르크 무역관 윤태현과장의 “독일 생활 속의 경제이야기”를 매월 첫째 주에 연재한다. 귀한 원고 게재를 허락해 준 윤태현 과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편집자주


연말·연초가 되면 술자리가 많아진다. 이는 한국이나 독일이나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외식업 비중이 적은 독일에서는 식당을 미리 예약해야 한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그 외에 술을 마시고 취하는 빈도가 잦아지는 건 한국이나 독일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문제는 술 먹고 난 다음날이다. 특히, 다음날 출근을 하고 퇴근 후 연달아 지인과의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고역이다. 20대 초반이 아닌 이상 나도 모르는 사이 간(肝)의 회복 속도는 이미 한참 더뎌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다음날 일상을 이어나가기 위해 한국에서는 국물 요리를 찾는다. 감자탕, 콩나물 해장국 등 속이 뜨끈해져야 비로소 해장을 했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과음한 다음날 국물 요리를 찾는 것은 일종의 소위 국룰이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어떤 음식으로 주로 해장을 할까? 지역과 개개인의 취향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대중적으로 해장하는 음식 중 하나는 놀랍게도 튀르키예 요리 되너 케밥(Döner Kebap·이하 케밥)이다.

케밥은 구운 고기와 야채를 10센티 정도 되는 빵에 넣어 먹는 음식으로, 독일에서는 독일인 입맛에 맞춰 양고기와 닭고기 두 종류 위주로 판매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한 끼 식사까지 할 수 있는 음식이다.

이를 보여주듯 함부르크 대표 번화가 중 하나인 레퍼반(Reeperbahn)에도 약 10개의 케밥집이 있다. 한 블록을 지날 때마다 케밥 특유의 고기 굽는 기름 냄새가 난다. 한국으로 치면 강남역 10번 출구 주위에만 설렁탕집 10개가 있는 꼴이다.

그럼 독일에서 튀르키예 케밥이 인기 해장 음식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과거 독일의 이주 정책에 있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독일은 경제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미국의 마셜플랜 등에 힘입어 1950년대를 기점으로 다시금 경제 호황을 맞았다. 흔히 알려진 ‘라인강의 기적’이다. 하지만 급성장하는 경제 속도에 비해 노동력이 부족했던 독일은 이를 채우기 위해 각국과 초청 노동자협정(Gastarbeiter)을 체결했다. 여기에는 튀르키예, 모로코, 튀니지 등이 있었고, 광부·간호사를 파견한 한국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 중 가장 많은 노동자를 파견한 나라가 튀르키예다.

당시 튀르키예에서만 약 250만 명이 독일로 넘어왔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 광부, 간호사 등으로 독일에 온 사람들이 약 2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튀르키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튀르키예 대부분의 노동자는 초청 노동자 계약 종료 후 현지에 정착하여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

이렇게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 땅을 밟은 튀르키예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케밥을 포함한 튀르키예 식당이 늘고 커뮤니티가 형성된 것이다. 독일 수도 베를린만 해도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베딩(Wedding) 등 튀르키예인들이 특히 많이 사는 주거구역이 있다. 실제 튀르키예인지 헷갈릴 정도의 크로이츠베르크는 ‘작은 이스탄불’로 불리기도 한다. 시장조사기관인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베를린 전체 인구 377만 명 중 약 10만 명이 튀르키예인이다.

독일 전체로 보면 숫자는 더 증가한다. 슈타티스타에 의하면 2021년 기준 독일 거주 튀르키예인은 약 145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튀르키예 부모님을 뒀거나, 튀르키예 출신 가족이 있는 독일 국적의 튀르키예 2세, 3세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약 275만 명까지 늘어난다. 과거 레알 마드리드와 아스널에서 뛰고, 독일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축구선수 메주트 외질(Mesut Özil)이 대표 사례다.

이처럼 독일은 이민자의 국가가 되었다. 2019년 독일연방 이민·난민청(BAMF) 통계에 따르면 독일 전역에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은 총 2,230만 명에 달한다. 독일에서 만나는 사람 4명 중 1명은 이주민 배경을 지닌 것이다. 이번 러-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9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독일 땅을 밟았다. 또 메르켈 전 총리는 2015년 아랍의 봄 당시 시리아, 이라크 난민 약 130만 명을 대상으로 국경을 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최근 독일 정부는 이민자 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시민권 취득 규정을 기존 독일 내 8년 거주에서 5년으로 줄였고, 학업 성과와 직업 전문성 등을 인정받으면 3년만 거주하여도 시민권 취득 조건을 충족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 불가능했던 이중 국적도 가능해졌다.

이렇게 시민권 취득 문턱을 낮춘 것은 초고령화 사회에 맞춰 독일 내 노동력을 확보하고 경제력 활성화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이미 독일인처럼 살고 있는 외국인이 많은 독일 내 사회 통합을 이루고 장기적인 인구수를 유지하려는 목적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은 출산 장려 및 육아 지원 정책에도 적극적이다. 독일에서 출산 시 산모 대상으로 무료 의료서비스 제공부터 출산·부모·아동수당 지급 등의 경제적 지원이 있다. 나아가 3년의 육아휴직과 고용 보장 등으로 휴직자의 경력 단절도 최소화한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이러한 지원책 덕분에 독일의 21년 기준 합계 출산율은 1.58명을 기록했다.

반면, 한국의 21년 합계 출산율은 0.81명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인 1.6명의 절반에 불과하다. 전체 OECD 국가 중 꼴찌는 물론 1명 미만을 기록한 유일한 국가다. 이를 두고, 여러 경제 기관과 학계 및 언론에서는 ‘인구 절벽’ 등의 표현을 쓰며 국가적 위기라고 경고한다.

출산을 하고자 하는 건 개인 선택의 문제다. 강요할 수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다만, 장기적인 국가 발전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적·정책적 인프라가 선행될 경우 저출산 이슈가 지금과 같은 심각한 위기에 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출산이 사회·경제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것처럼 말이다.

또 이민자 수용 이슈는 한국에서 예민한 주제다. 사회적, 종교적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존재하고, ‘한민족’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나’라는 가치보다 ‘우리’라는 문화가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저출산 이슈가 지속될 경우, 이민자 정책과 외국인 노동자 이슈는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한국이 머지않은 미래에 맞닥뜨려야 할 대표 사회 이슈 중 하나다.

경제적 관점에서 독일의 이민자 수용 이슈를 바라보며,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한국의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를 위한 전제조건이자 사회 통합의 필수요소인 남들과의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가 더욱 자리 잡길 바란다.

1297호 17면, 2023년 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