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 함부르크 무역관 윤태현 과장
2021년 여름, 독일 함부르크 무역관으로 발령을 받았다. 근무를 하러 오기 전에도 함부르크라는 도시 자체는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약 십여 년 전 유학생 시절 손흥민이 함부르크에서 뛸 때 홈경기를 보러 경기장을 찾곤 했었다.
당시에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구경했지만, 이번에 근무를 하면서는 보다 세세하고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발견하고는 한다. 루틴한 일상 속의 쏠쏠한 재미다. 그중 하나가 함부르크에 다리가 정말 많다는 사실이다. 함부르크가 독일 대표 항구 도시인 것을 누구나 아는 것처럼, ‘운하가 많으니 아무래도 다리도 많겠지’라고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져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꽤 신선한 사실을 확인했다. 바로 함부르크가 유럽에서 다리가 가장 많은 도시라는 것이다. 실제 시장조사기관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함부르크에만 2,485개 다리가 있다. 함부르크 주 정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총 2,500개 다리가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흔히 물 위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진 대표 관광도시 암스테르담, 베니스보다도 많다는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함부르크 다음으로 다리가 많은 유럽 도시는 오스트리아 빈(1,716개)이며 암스테르담과 베네치아는 각각 1,281개와 400개로 3위와 5위에 올랐다.
마찬가지로 독일 전역에서 가장 긴 다리 1위와 2위도 함부르크에 있다. 1위는 호흐슈트라쎄 엘프마슈(Hochstraße Elbmarsch)로 약 4,258미터에 달한다. 이어 쾰브란트브뤽케 (Köhlbrandbrücke)가 3,618미터로 2위에 올랐다. 쾰브란트브뤽케는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두 다리 모두 이미 자동차로 지나갔던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이를 토대로 구글맵을 다시 보니 함부르크에 정말 많은 다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매일 다니는 출근길에도 자동차로 이동하면 4개의 다리를 지나고, 지하철을 타면 8개의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운하의 도시’ 함부르크에서 그 많은 다리를 매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부르크가 유럽에서 가장 많은 다리를 가진 도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함부르크가 경제적으로 물류·해운 등 독일, 나아가 유럽 대표 항구 도시로 발전하게 된 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함부르크는 지정학적 배경에 따라 무역업을 중심으로 번화한 항구 도시다. 북해에서 내륙으로 들어오는 엘베강을 중심으로 알스터강, 빌레강 등 총 세 갈래의 강이 합류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수로는 중요한 물자 조달 수단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함부르크는 14세기에 도시 상인들의 상호 교역을 확대하기 위한 조합인 한자 동맹에 가입하며 중개무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소금, 후추, 담배 등 당시 대표 물품들이 운송되었다. 또 곳곳에 수로를 통해 운송된 물품들을 육지에서 신속하게 옮기기 위해 차도, 기찻길을 위한 다리가 생겼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 곳이 옛 창고 건물 지구인 슈파이셔슈타트(Speicherstadt)다. 이곳에는 고풍스러운 갈색빛을 띠는 벽돌로 이뤄진 4~5층짜리 창고들이 운하를 중심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외부에서 운송된 물품들을 저장해두는 창고 지구로 기획됐다. 상공에서 바라보면 마치 웅장한 성을 보는 것 같아서 ‘물 위의 성(Wasserschloss)’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역으로 선정됐다. 현재는 박물관, 식당, 카페 등이 있으며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이처럼 함부르크는 역사적으로 다른 도시들보다 외부와 교역이 많은 개방형 도시로 발전했다. 이러한 특징 덕에 1558년에는 독일 최초로 증권거래소가 설립됐다.
현재에도 함부르크는 다른 국가, 도시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적극적이다. 대표적으로 함부르크는 마르세유, 다레살람 등 9개 도시와 자매결연을 하고 있다. 아시아 도시 중에서는 오사카와 상하이가 포함되어 있다. 또 부산과는 이와 유사한 우호교류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함부르크가 협력 도시를 정하는 데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함부르크처럼 한 국가의 수도가 아니면서 활발한 산업 도시이고, 함부르크와 유사한 경제 구조를 가진 도시일 것 등이다. 이에 대부분의 협력 도시들이 각 국가를 대표하는 항구 도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도시들과 함께 적극적인 교류를 하기 위해 문화 행사, 프로젝트 협력, 상호 학술 연수 교류 등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함부르크에는 각 나라의 대표 도시명을 딴 다리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부산교가 있다. 다리 자체는 1931년 지어졌고 2010년 부산교로 개명되었으며 보행자와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다. 다리 위에는 실제 한국어 팻말로 부산교라고 적혀있다. 이 외에도 인근에 오사카교, 상하이교 등 국제적인 항구 도시들의 이름을 딴 다리들이 많다.
이처럼 독일, 나아가 유럽에서 다리는 단순히 이동 매개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실제 유럽 내 유로존에서 사용되는 유로화 지폐 뒷면을 보면 다리가 그려져 있다. 특정 국가의 다리를 지폐에 넣으면 일종의 차별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에, 유로화 출범 당시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로버트 카리나가 가상의 다리를 디자인하여 지폐에 그렸다. 각 지폐마다 삽입된 다리는 해당 시대의 건축양식을 반영했다. 5유로는 고전 양식, 10유로는 로마네스크, 50유로는 르네상스 시대 등을 나타내는 식이다.
그리고 화폐에 다리를 넣은 것은 유럽 국가 간, 그리고 나머지 대륙의 세계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덧붙여 지폐 앞면에는 창문이나 대문이 그려져 있는데, 외부를 향한 유럽 사람들의 개방적이고 협력하는 정신을 담았다고 한다.
이처럼 평소 아무렇지 않게 무심코 지나치는 다리에 생각보다 많은 의미와 역사가 담겨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다리가 많은 함부르크에 살면서 자연스레 ‘외부와의 연결’, 그리고 화합을 생각해보는 건 허황된 사치일까. 얼마 전 23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전 세계적으로 새해맞이 폭죽을 터뜨리는 동안,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폭탄이 터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문득 뇌리를 강타했다. 비일상의 일상화로 전쟁의 심각성이 무뎌진 현재, 22년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느덧 1년이 되어 간다. 이른 시일 내 전쟁이 종식되고 23년에는 국내외 언론의 국제면에 보다 긍정적인 뉴스들이 가득 차길 기원한다.
1301호 17면, 2023년 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