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44)

독일 정신의 발원지 보름스(Worms)

중세 게르만 문학 서사시 니벨룽엔(Nibelungenlied)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며, 라인강이 흐르는 보름스는 루터(Martin Luther)의 외침과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이끌어낸 역사의 장소이다. 이렇듯 보름스는 자연과 개신교라는 종교 그리고 게르만족 고유의 문화를 아우르는 독일 정신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에게는 루터에 대한 종교재판이 열린 도시, 루터가 거대한 위협과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곳으로 보름스는 잘 알려져 있다. 2021년 보름스 시는 이 종교재판을 기념하기 위해 “500Jahre Luther in Worms”라는 표어로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였으나, 코로나로 인해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어 많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루터에 대한 종교재판의 유명세로 인해 2000년 역사 도시 보름스의 가치가 매우 제한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이번 “역사산책 보름스” 편에서는 중세시대 중요 도시로서의 보름스, 루터의 종교재판 현장,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공동체 유적, 그리고 독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니벨룽엔의 노래”의 주 무대 보름스를 함께 살펴보며, 보름스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다.

◈ 광장에 서서

보름스 역사산책은 시장광장(Marktplatz)에서 시작한다.

유럽 대부분 도시의 중심지에는 광장이 있다. 이는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해왔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광장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 로마의 포룸(Forum), 그리고 중세로부터 현재까지 시장광장(Marktplatz)과 근대 시민혁명의 중심지, 축제의 장 등,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의 현장으로 그 도시에 살았던 자들의 삶의 흔적을 모두 지니고 있다.

보름스의 광장(Marktplatz) 역시 보름스 역시의 전반을 품고 있다.

시청(Rathaus)

보름스 시청

보름스 광장 후면에는 병풍처럼 시청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중세시대 대도시로서의 명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1184년 신성로마황제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아, 중세 도시로서 오랜 역사를 지난 보름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시청사이다.

원래는 이곳 광장을 중심으로 중세시대부터 “Bürger Hof”라는 명칭으로 매우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날의 시청사는 물론, 그 옆의 삼위일체교회, 그리고 뒤편의 시립도서관까지가 “Bürger Hof”였으며, 특히 현 시립도서관 위치에는 화폐국(Münze)이 자리하고 있어, 보름스 시장광장은 보름스의 영화를 상징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팔츠왕위계승전쟁(1688-1697)의 여파로 1689년 보름스 시는 프랑스 루이 14세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다. 이 광장에서 보름스의 영화를 상징하던 “Bürger Hof” 역시 피해가지 못하고 파괴되고 만다.

오랜 시간 방치된 시청사 터는 약 200년이 지난 1885년 4월 2년간의 공사를 끝내고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금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고 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보름스는 가장 많은 포격을 당한 도시가운데 하나로, 1944년 9월부터 1945년 3월까지 총 4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항공 폭격을 당하게 되고, 그 결과 시내 공공건물 대부분과, 2,5000채의 가옥들이 파괴되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시청사는 1958년 완공된 건물로, 2차세계대전후 독일 전역에서 지어진 전형적인 전후 재건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재정난으로 인해 보름스 광장 주변에서 2차 세계대전 이전 시대의 원래 모습으로 복원한 건축물은 삼위일체교회가 유일하다.

정의의 분수

시청사 한 편에는 정의의 분수(Gerechtigkeitsbrunnen)가 서있다. 원래는 현재 시립도서관 앞에 위치했던 분수를 1778년 펌프식 분수로 교체하면서 현 위치로 옮겨왔다.

중앙 가운데에는 칼과 천칭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Justitia)이, 좌우로 삼지창을 들고 있는 포세이돈과 사자를 둘러멘 헤라클레스가 서있다.

삼위일체교회(Dreifaltigkeitskirche)

삼위일체교회

광장 옆 사거리에 위치한 삼위일체 교회는 보름스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회로, 보름스의 개신교를 대표하는 교회이다.

이 삼위일체교회는 팔츠 왕위 계승 전쟁 이후 황폐화된 “Bürger Hof”의 자리에 세워졌는데, 이 자리를 교회부지로 선정하는 데에는 작은 오류가 있었다. 전쟁 후 시의회는 루터의 종교재판으로 개신교의 성지와도 같은 보름스에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그 부지는 1521년 제국의회가 열린 “Bürger Hof” 자리인 현 위치를 선정하였다. 그러나 사실 제국의회는 “Bürger Hof”에서 개최되었으나, 루터에 대한 종교재판은 대성당 뒤편, 주교정원(Bischofshof)이 있는 현재 하일공원(Heylshofpark) 안에서 열린 것이다.

교회건축은 1709년부터 1725년까지 26년이 소요되었다

“슈파이어 역사산책” 편에서 살펴본 바와 슈파이어 시도 팔츠왕위계승전쟁 후 개신교교회로 삼위일체교회를 건설하였는데, 이처럼 보름스와 슈파이어가 경쟁적으로 대규모로 삼위일체 교회를 전후 최초의 공공건설사업으로 채택한 것에는 이 두 도시 사이의 미묘한 경쟁심도 한 목하였다.

보름스는 루터의 종교재판, 루터의 신앙수호로 개신교가 탄생할 수 있었음을 강조하고, 슈파이어는 1529년 제국의회에서 항의서한(Protestant)을 통한 개신교회의 인정 그리고 이것을 개신교(Protestant)의 출발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보름스의 이 삼위일체교회도 2차 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당하게 된다.

1945년 2월 21일, 보름스에 대한 영국의 공습으로 교회는 완전히 전소되었다.

목재와 그림 장식이 있는 원래 바로크 양식의 건물 내부는 거의 다 소실되고, 교회 과, 탑의 하부 및 삼위일체의 상징적 표현이 있는 정교하게 조각된 이중문이 있는 서쪽 정문만이 공습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삼위일체교회는 교회는 시민의 수많은 기부 덕분에 Otto Bartning과 Otto Dörzbach의 계획에 따라 1955년부터 1959년까지 재건되었다. 그러나 외관만 대대적으로 이전과 동일하게 복원하였고 내부는 성경 장면이 있는 15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대표되는 현대적 디자인으로 장식되었다.

지그프리드 분수(Siegfriedbrunnen)

삼위일체교회에서 왼쪽으로 돌게 되면 시립도서관 앞 광장에 니벨룽엔 전설이 깃든 지그프리드 분수가 있다.

지그프리드 석상은 게르만의 영웅 지그프리드가 용을 죽이고 한 손에는 그가 죽인 용의 꼬리를, 다른 한손에는 그의 보검인 Balmung을 들고 있다.

보름스에는 이 게르만 설화의 주 무대답게 도시 전체에 니벨룽엔의 전설이 깃들어있다. 시내 중심에는 하겐 길(Hagen Strasse)이, 라인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이름은 ‘니벨룽 다리’이다. 또 니벨룽엔 박물관(Nibelungen Museum)은 이 게르만 설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심지어서는 전설에서 나오는 인물임에도 그의 무덤(Siegfried Grab)이 니벨룽엔 박물관 인근에 있을 정도이다. 그뿐 아니라 매년 여름 니벨룽엔-페스트슈필레(Nibelungen-Festspiele)라고 하는 연극공연 행사가 성대히 열린다.

독자들의 보름스 시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하게 니벨룽엔의 노래를 소개한다.

니벨룽엔의 전설은 용을 물리친 불사의 영웅이자 사랑하는 남편 지크프리트를 죽인 일족에게 복수하기 위해 크림힐트가 훈족의 왕 에첼과 재혼해 복수를 단행하면서 부르군트족이 멸망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용은 전반에서는 영웅 지크프리트와 군터 왕(王)의 누이동생 크림힐트의 결혼, 군터 왕(王)과 브륀힐트의 결혼, 하겐의 배반에 의한 지크프리트의 암살이 화려한 정경 묘사로서 표현되어 있다. 후반은 아주 판이하게 음울한 분위기 가운데 이야기가 펼쳐진다. 크림힐트는 훈족의 국왕 에첼과 결혼하여 지크프리트의 원수를 갚을 것을 결의한다. 이렇게 해서 흉노국(匈奴國)에 초청된 부르군트의 사람들과 훈족 사이에 사투가 벌어져 마침내는 양(兩) 민족이 모두 멸망한다는 것이다.

“니벨룽의 노래”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시기에 구전되어 오던 영웅 설화와 북유럽 신화 등을 영웅서사시 형식으로 집대성한 것이다. 게르만의 영웅 전설들 가운데 ‘지크프리트’ 전설과 5세기경 라인 강 지역에 동고트족이 세운 부르군트 왕국이 훈족에 의해 멸망한 역사적 사건을 결합시켜 장엄하고 비장한 영웅서사시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이 작품에는 게르만 특유의 철저성과 충성심 등 독일 민족의 민족성이 잘 드러나 있으며, 충의와 정절, 신의와 같은 기사도 정신을 충실하게 재현하여 중세 기사 문학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지그프리드 분수와 시립도서관

시립도서관(Stadtbibliothek)

지그프리드 분수 뒤편에 있는 건물이 시립도서관이다. 그러나 이 시립도서관은 다른 도시들의 많은 시립도서관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루터와 니벨룽엔 연구의 보고인 까닭이다.

먼저 ‘루터도서관’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유명한 루터관련 소장 자료를 살펴보자.

617편애 달하는 라틴어와 독일어로 된 루터 저작물이 그 소장 자료이다. 그 가운데에는 1521년 종교재판의 판결문이 쓰인 플래카드, 초기 개신교 예배의식표, 취리히나 비텐베르크 판본 보다 앞서 1541년 인쇄된 2권으로 된 루터의 독일어성경본,(이 독일어 성경인쇄본 첫 장에는 루터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1524년 루터가 발표한 독일 전역의 개신교 학교들의 교육에 대한 지침서 “An die Radherrn aller stedte deutschland: das sie Christliche schulen auffrichten vnd halten sollen”가 있다. 특히 이 지침서는 2015년 루터의 다른 저작물 13편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었다.

한편 “니벨룽엔 전설”과 관련해 시립도서관은 1000여 편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1757년부터 현재까지의 라틴어, 독일어 필사본, 방언 및 일부 외국어 번역(영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으로 된 텍스트 에디션, Nibelungen 자료의 문학적 각색(소설, 희곡) 영화 편집(예: Fritz Lang), 대중적이고 학술적인 2차 문학(19세기 초 이후),청소년 도서(19세기 중반 이후), 언론 인쇄(20세기), 삽화가 있는 Nibelungenlied 판(19세기 초부터)등이 이 소장 자료에 포함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중세 1000년의 영화가 깃듯 보름스 대성당 지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1301호 20면, 2023년 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