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그림 속의 그리스 신화 이야기(4)

유럽 문화를 관통하고 있는 두 가지 줄기 헬레니즘과 유대이즘, 즉 고대 그리스 신화는 성경과 함께 서양의 문화를 읽어내는 코드이자 일반인들에게 서양문화의 모태를 설명해 주고 있는 교과서라 할 수가 있다.
이렇듯 서양문화의 원류인 그리스 신화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상상의 세계로, 시공을 초월하는 삶의 보편적 진리와 인간의 희로애락을 촘촘하게 엮어나간 대서사시이다.
이는 유럽인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는 서양 문화의 원천으로 문학과 미술, 연극 등 수많은 예술작품의 창작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안티오페>,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가니메데스>를 주제로 신화와 함께 이들이 후대 미술작품에는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살펴본다.

제우스와 가니메데스

가니메데스는 꽃다운 미모를 가진 트로이 출신의 왕자였다.

제우스는 미소년 가니메데스를 마음에 두게 되었고 그는 독수리로 변신해서 가니메데스를 올림포스로 데려가게 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12신들에게는 그들이 먹는 음식 암브로시아와 음료 넥타르를 시중들어 줄 이가 필요했는데, 신들의 식생활을 담당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였다.

그 임무는 이전까지 제우스와 헤라의 딸인 젊음의 신 헤베가 맡고 있었지만, 헤베는 불사의 몸이 되어 천상으로 올라온 헤라클레스와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마침 제우스의 눈에 가니메데스가 들어 온 것이다.

제우스에 의해 가니메데스가 시중을 들게 되자 헤라는 화를 못 이겨 가니메데스를 죽이려 하였고 훗날, 트로이 전쟁에서 헤라가 그리스군의 편을 들어 가니메데스의 조국인 트로이를 함락시키는데 일조한 것도 이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반면 갑자기 아들을 잃은 가니메데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러 날 동안 상심해 슬픔에 빠졌고, 제우스는 이들에게 그의 심부름꾼이자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보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말 두 마리와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값진 황금 포도나무를 줘 위로했다. 그리고 아들이 보고 싶을 땐 밤하늘에서 물병을 들고 있는 소년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가을 밤하늘의 물병자리는 곧 가니메데스가 변한 모습이다.

이 물병자리 바로 근처에는 독수리자리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제우스가 변한 모습으로 늘 가니메데스를 옆에 두길 원했던 제우스의 뜻은 밤하늘의 별자리에서도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태양계에서 제일 큰 행성인 목성은 주피터라고 하는데, 이는 제우스의 로마식 이름이다. 그런데 이 목성 주변을 맴도는 제일 큰 위성이 가니메데스라는 점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렘브란트, <가니메데스의 납치>

가니메데스의 납치를 소재로 그린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루벤스와 코레지오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가니메데스의 납치 순간을 화폭에 담았다. 그들의 공통적인 모습은 가니메데스가 미소년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납치 당시 두렵고 공포에 질려있을 가니메데스를 황홀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렸고, 가니메데스를 예쁘게 그린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몸 또한 나체로 그렸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이 그림에서의 가니메데스는 공포에 울부짖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미소년으로 그려져 온 가니메데스를 렘브란트는 왜 그처럼 공포에 떠는 어린애의 모습으로 그려냈을까? 이 작품에서 렘브란트는 신화(神話)에서 테마를 취하면서도 그것을 한낱 신화적인 세계의 것으로 다루지 않고, 그것을 현실의 한 장면으로 묘사하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을 위해, 독수리에 채여 공포에 울부짖는 어린애의 스케치를 남겨놓고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이 그림에 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비롯하여 렘브란트는 신화의 단순한 서술적인 묘사보다는 인간의 공포감을 보다 리얼하게 표현하려고 했으며, 그것이 특히 1630년대 중반기에 나타나는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벤베누토 첼리니, <독수리 위의 가니메데스>

첼리니는 르네상스 이후 잠시 전개된 매너리즘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미켈란젤로에 버금가는 솜씨를 가진 조각가로서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에서 독수리로 변신한 제우스가 가니메데스를 신의 세계로 납치해 가기 직전의 모습이다.

독수리는 일반적으로 우주의 태양을 상징하고 하늘신의 으뜸으로 친다. 또한 영원한 존재로도 알려져 있기에 신들의 우두머리인 제우스는 때때로 독수리로 변해 하늘을 지배하기도 한다.

작품 ‘독수리 위의 가니메데스’를 자세히 살펴 보면 가니메데스는 왼손을 높이 쳐들고, 오른손은 날개를 막 펼치려는 독수리의 날개 윗부분을 잡고 있다.

첼리니는 아마도 긴장감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가니메데스가 독수리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는 모습을 묘사한 것 같다. 특히 독수리가 급히 머리를 돌려 하늘을 향하고 있는 시선에서 독수리로 변한 제우스의 조급함과 절박한 심정이 묻어나고 있다.

이 작품은 첼리니가 즐겨 사용한 재료인 구리와 주석이 합금된 청동주조 조각이다.

1301호 23면, 2023년 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