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중인환시 (62)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 에티오피아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키 위해 1960년 이태리 로마에 도착했을 때에야 그가 시합 때 신으려고 가져온 운동화가 터져있음을 알았다.

로마 올림픽 당시 비킬라의 나이는 28세였고 마라톤 계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선수였다.

비킬라는 에티오피아의 왕 하일레 셀라시에(Heile Selassie)의 경호원이었으며 육상선수로의 체력과 조건들이 왕의 눈에 띄게 되어, 그의 추천으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고 한국 전쟁 때 참전하기도 했다.

현재의 에티오피아는 세계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로 꼽히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195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보다 생활수준이 높은 나라였다

선수촌 합숙훈련 때에 보인 그의 실력이 국내에서 먼저 선발된 선수들 보다 뛰어난 것을 알게 된 트레이너가 다른 선발선수를 제치고 특별히 발탁해서 로마 올림픽에 참가시킨 것이다. 인재는 숨어 있으려 해도 알려지기 마련이라는 낭중지추(囊中之錐)격이다.

하지만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운동화가 구멍이 난 것을 알게 되었고 발에 익숙하지 못한 새 운동화를 신고는 달릴 수 없을 것을 알게 된 비킬라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달려왔듯이 맨발로 뛰기로 작정했다.

드디어 로마 올림픽경기 마지막 날이 돌아 왔다.

이 날은 올림픽의 꽃이라고 부르는 마라톤이 열리는 날이며 마라톤 코스를 따라 응원과 구경꾼으로 길거리는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마라톤 출발점에서 모든 선수들이 몸을 풀며 출발의 총소리가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눈에 띄는 한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맨발의 비킬라 선수였다.

모두들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유독 혼자만이 맨발로 뛸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발신호는 울렸고 마라톤 중간지점까지는 그룹으로 어울려 어께를 나란히 하며 뛰던 비킬라가 그 후부터 선두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룹에 섞여서 뛸 때는 그의 맨발을 보지 못한 시민들이 많았을 것이지만 그가 단독선수로 나서며 뛸 때에는 모두들 그의 맨발을 보게 되었으며 저러다가 발바닥이 아파 뛰다 말겠지 또는 뛰어 오다가 어느 지점에서 한쪽 운동화가 벗겨지다 보니 나머지 한쪽을 벗어 버리고 뛰는 거겠지 하는 생각들도 했을 것이다.

비킬라는 처음부터 맨발이었다.

그렇게 맨발로 뛴 비킬라는 2시간 15분 16초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는데 이는 마라톤 세계신기록을 갱신하는 기록이었다.

1등으로 골인 후,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다시 뛰라면 또 뛸 수 있다> 고 했다. 아베베 비킬라가 이날 받은 올림픽 금메달은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지역 국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킬라 선수는 4년후에 있은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에도 출전하게 되는 데 2시간 12분 11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도쿄 올림픽 때는 운동화를 신고 뛰었는데 이 또한 그가 4년전에 로마에서 세웠던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는 세계신기록이었다. 올림픽 마라톤 선수로서 최초의 2관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비킬라 선수가 두 번 우승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에티오피아의 국가를 준비해 놓지 않아 당황하게 되자 일본국가인 기미가요를 틀어 주는 만행을 벌이기도 했다.

고국으로 금의환향한 비킬라는 부사관에서 중위로 특진급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다시 4년 뒤인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마라톤에도 참가해 보지만 고지대의 산소부족현상을 견디지 못하고 17km 지점에서 기권했다.

그 다음해인 1969년에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베바 근교에서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비운을 맞지만 그 후 장애인 양궁 국가대표로도 활동하였다.

비킬라선수는 1973년 세상을 떠나게 되니 41살 때였다.

마라톤계에서는 비킬라 선수를 <맨발의 기관차>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독일이 동,서독으로던 분리되어 있을 당시 동독에서도 마라톤 2관왕이 있었다.

발데마 치어핀스키(Waldemar Cierpinski) 라는 마라토너로서 1976년 카나다 몬트리올 올림픽과 1980년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선수다.

올림픽 역사상 지금까지 비킬라와 치어핀스키 두 명이 마라톤 경기에서 2관왕에 올라있는 선수다.

2019년 11월 22일, 1148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