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 (2)

류현옥

(1158호 14면에서 이어집니다.)

경찰서에 두 번이나 불려가 우베와 별거한 서류상의 아내로 그녀가 모르는 우베가 보낸 돈에 대한 출처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했다.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비장한 결심이 그녀를 얼음장같이 찬 여자로 만들었다. 우베와는 헤어질 때의 약속대로 만나지 않았고 문자로 알려오는 간단한 메모 외에는 정보를 받은 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 형사는 우베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것과 죽은 우베를 위해 형사의 일에 협조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에게 우베를 떠맡기고 도망간 두 남자가 마약단의 중요인물들이었다는 것도 확인했단다. 우베가 마약단에서 빠져 나갈 계획으로 거금을 국외로 빼 돌리는 도중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우베와 헤어진 이후의 그녀의 삶은 밤일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대학을 가기위해 고등학교 과정을 밟는데 전력을 다했다. 야간고등학교 교실에서 만난 그녀보다 5살 연하의 레니와 주말이면 침대에서 만나는 정도였다. 우베가 그녀에게 일깨워준 성의 즐거움을 누리는 관계였다. 레니는 최선을 다하여 그녀를 만족시켰다. 그녀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늦게 시작한 학문에 전력을 다했다.

그녀가 세 번째 출두 편지를 받았다. 사인을 알게 되는 마지막 경찰서 호출이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기로 했다. 이미 저 세상에 가있는 죽은 우베는 이제는 그녀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밤번을 하고 잠을 안 잔 상태에서 왔다고 하면 오랜 시간을 붙들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녀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밤번을 변명으로 날짜를 미루면 오히려 일을 끝내는 데 오래 걸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밤부터 내린 비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지하철 출구를 나오는 데 레니가 그녀 앞을 막아섰다.

“아니 무슨 일로 여기에?”

“너를 기다렸어!”

“왜, 무슨 일로? 전화로 해도 될 걸 여기 와서 기다렸어?. 나 지금 시간 맞추어 가야 할 곳이 있어”

“알고 있어. 우리는 같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야.”

“무슨 소리야? p 형사를 만나려 가는 거야?”

“맞아, 우리 거기 가서 이야기 해. 미리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어서 너를 기다렸어. 나중에 무슨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 너는 절대 잘못한 거 없어. 내가 실수를 했는데 너를 해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리고 싶었어.”

“무슨 말이야? 너도 우배 일에 관련되어 있는 거야?”

“영이, 미안해 지금 시간이 없으니 우선 가서 이야기 해.”

둘은 우산으로 접어들고 비를 맞으며 p형사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예감이 레니와 한 우산을 쓰고 걸어가지 말라는 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둘은 비를 맞으며 제각기 깊은 사색에 머리를 숙인 채 경찰서의 시멘트 건물을 향해 걸었다.

“둘이 약속해서 만나서 같이 오는 겁니까?”

형사는 레니를 향해 물었고 악수를 청했는데 구면인 듯 했다.

“아닙니다. 지하철 입구에서 만났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한 것으로 간주해도 됩니까?”

“아닙니다. 그럴 사이가 없었습니다.”

“영이씨 얼굴이 안 좋은데?”

“밤 근무를 하고 바로 온 겁니다.”

“아 그래요 곧 시작 합시다.”

형사는 병리실에서 온 사체부검 결과서를 빠르게 훑어보고는 별 새로운 것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화학명으로 사약 이름을 말한 후 사인은 알려졌지만 범인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영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레니는 우베의 청탁으로 자영에게 접근하였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했다. 형사를 증인으로 한 자리에 앉아 인간 우베에 대해 말한다고 했다. 이미 은행에서 보내온 정보에 의해 알려진 것이다. 우베가 지난 몇 년 동안을 레니에게 송금한 금액은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레니를 증인으로 부른 것이다.

가영이의 위장 속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하기 시작하여 숨이 차오는 것을 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화장실을 찾아서 뒤틀어 오르는 위 내용물을 토했다. 따라온 레니를 밀어붙이고 형사실로 돌아와 핸드백을 들고 다시 뛰어 나갔다. 뒤따라온 레니가 잡는 손을 뿌리치고 건물 밖으로 달려 나갔다. 큰소리로 세상을 향해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이 없었다.

그 사이에 굵어진 빗줄기가 쏟아내려 물이 흐르고 있는 건물의 시멘트 계단을 급히 뛰어 내려오며 지하철 입구를 찾았다. 그를 부르고 있는 레니의 목소리가 악몽 속 외침같이 울렸다.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계단을 의식할 여지도 없이 지하철 입구를 향해 뛰어가다가 발을 헛디디면서 넘어졌다. 그녀는 층계 아래로 머리를 박은 채 드러누웠다. 굵어진 빗방울이 그녀를 사정없이 때렸다. 계단의 모퉁이에 부딪친 머리 부분에서 흐르는 피가 빗물에 씻겨 계단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

가영은 정신과병원에서 깨어났다. 뇌진탕에서 회복을 하고 의식이 돌아온 날 채혈에 필요한 온갖 도구를 담은 쟁반을 들고 그녀가 누운 침대 가까이 다가서는 젊은 의사의 하복부를 발로 차며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 침상 옆 상위에 놓인 물건들을 창문을 향해 집어던졌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울부짖는 그녀를 약물로 안정시킨 후 정신과병원으로 옮긴 것이다. 불려온 레니가 정신적인 위기일 뿐 그녀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며 환자의 증상이 없었다고 담당 의사를 붙들고 호소를 했다. 레니를 통해 가영이의 지난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오히려 속에 쌓아온 정신적 노폐물을 해소시키는 동기가 될지 모르니 너무 걱정 하지 말라고 위로 했다.

레니는 가영의 가족이 아니며 어떤 점에 있어서도 보호자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가영이 우베의 보호자가 아니라고 할 때와 같이 레니 외에는 연락할 가족이 없단다.

“제가 보호자로 등장하면 가영은 다시 정신적 불안정의 상태로 되돌아갈 겁니다.”

“당신보다 무책임한 보호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보호자는 퇴원한 후에 중요합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책임지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레니는 가영과 동거하는 친구도 아니며 퇴원 후에 한 집에서 살며 보호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말했다. 의사는 병원의 사회사업과를 찾아가서 담당자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라며 시계를 보며 일어났다.

“시간이 문제입니다. 나 아닌 남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레니는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정신병원 사회사업과 문을 노크했다. 그는 수정이 불가능한 과거사로 연결되어 꼬여진 현실을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예상 불가능의 미래도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2020년 2월 21일, 1159호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