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해와는 달리 5월의 날씨가 끄물끄물하게 변덕을 부린다. 오전엔 비가 내려서 늦은 오후에 있을 음악회에 오가는 발걸음에 신경을 쓰며 우리 부부는 일찍이 집을 나섰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안방과 같은 뒤셀도르프 한인교회 예배당에는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인은 물론 독일인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파란 하늘엔 단술에 밥알처럼 뭉게구름이 둥둥 뜨고 눈을 뜬 잔디에는 색색 가지 예쁜 꽃들이 그려져 있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하얀 감꽃 팔찌를 만들어 차고 뽐내던 5월의 어린 날을 불러온다. 드디어 18.00시에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음악회의 순서를 김성미 지휘자님이 한국어로 설명하면 박혜정 집사님께서 독일인들이 들어서 민망할 정도의 완벽한 독일어로 번역을 해주셔서 참석한 독일인들에게 조금의 어려움이 없이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뒤셀도르프한인교회 이권행 담임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가 끝난 후에 김성미 지휘자의 환영 인사말과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오늘의 음악회는 1, 2부로 짜였고 1부 첫 순서로 Sonate Nr.1. Op. 120 1.Satz Allegro appassionato von J.Brahms 윤한나 님의 클라리넷 연주, 뒤이어 바리톤 김재휴 님의 Verborgenheit von H.Wolf, 베이스 김태훈 님의 O Isis und Osiris aus <Die Zauberflöte>von W.A.Mozart, 소프라노 이소람 임과 바리톤 이해원 님의 이중창 Papagena! Papagena! Papagena! aus <Die Zauberflöte>von W. A.Mozart, 테너 김현중 님의 Nessun dorma aus <Turandot>von G. Puccini, 청소년 윤다영의 바이올린 Concerto 연주 Nr.1 Op. 26-3 Finale von M. Bruch, 소프라노 김혜진 님의 Caro Nome aus <Rigoletto> von G.Verdi, 베이스 정준호 님의 Arie des Gremin aus <Eugen Onegin>von P.Tchaikovsky 독창이 있었다. 모든 피아노 반주는 이건주 반주자가 수고해 주셨다.
떡잎부터 남다른 악기 연주자 인재들의 출연,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스몄듯 폭 넓은 천상의 목소리는 정말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다음은 김성철 님의 오 보 에, 아들 김동진 군의 바이올린 연주 Erbarme dich aus <Matthäuspassion>von J. S. Bach로 진행되었는데 아버지와 붕어빵 아들이 함께한 환상의 하모니를 이룬 모습이었다. 20분 간의 휴식을 마치고 드디어 2부 순서로 뒤셀도르프한인교회 성가대 출연이 있었다.
뒤셀도르프한인교회 성가대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네 분야로 35여 명의 성가대원, 유 정자 성가대장, 김성미 지휘자, 이건주 반주자로 단단한 기틀로 구성되어 있다. 김성미 지휘자는 불릴 찬양곡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2부 순서의 첫 번째 무대 4곡은 <찬양의 노래>로 하나님의 친밀한 이름인 여호와, 곧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 그리고 그분의 권능과 영광을 찬양한 시편 성가곡이라고 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시편 121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편 23편), ‚주여 들으소서 응답하소서‘(시편 20편) ‚아름다운 주님의 이름‘(시편 8편) 을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무대의 제목은 <주의 사랑, 주의 축복>으로 엮은 4곡의 연주곡은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한없는 사랑, 놀라운 약속과 축복을 담고 있는 신약 말씀을 가사로 한 찬양곡으로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 37-39)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마태복음 22; 37-38) ‚모든 권세‘마태복음 (28; 18-20) ‚축복‘(마태복음 5; 3-12) 은 천국과 하늘의 상을 우리에게 약속하신 주님의 축복을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앞자리에 앉은 우리 부부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그 많은 곡의 악보를 외우다시피 하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2시간 이상을 쉼 없이 피아노 반주를 해낸 이건주 반주자이시다. 비단의 꽃무늬처럼 가끔은 폭풍이 요동치는 듯 열 손가락을 움직이는 그 모습,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기에 그토록 노련한 반주를 할 수 있을까? 고개가 숙연해졌다.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열렬하게 호응을 한 청중들은 합창이 끝나자, 비눗방울처럼 터지는 박수에 앙코르를 소리치는 청중들의 성화에 ‘You Raise Me up’, ‘축복’을 덤으로 불러 흐르는 땀을 뒤로하고 서로 힘을 모아 하나가 되어 화음 단합을 한 귀중한 오늘의 음악회가 막을 내렸다. 노래하시는 분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즐거움과 평화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보좌를 울리는 찬양, 우리의 지친 마음을 다독여 주며 쉰내 나는 생각과 짐을 내려놓는 편안한 은혜의 시간이었다.
35여 명이 어쩜 이렇게 한 지휘봉으로 조율이 되어 하나의 목소리로 화음이 되었는지. 사람의 몸이 최고의 악기임을 증명하듯 감화 감동의 무대였다. 공교롭게도 오늘의 음악회를 위하여 다듬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제단 祭壇을 새롭게 단장할 수 있도록 거금을 찬조 기부하신 교우 가정에 깊이 감사드린다.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려 탄탄한 자리매김한 오늘의 이 우뚝 선 음악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5월의 축복이다. 우리 모두는 파란 잎이 춤추는 봄이 되었다. 이 행사를 위하여 뿔뿔이 흩어져 사는 단원들이 해 오름의 열정으로 시간을 쪼개가며,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였는지 짐작이 간다. 노력한 만큼 이루어진다고 물샐틈없이 준비한 최상의 음악회였다.
수고하신 성가 대원들, 성가대를 차분하게 이끌어가는 유정자 성가대장, 늘 그늘 없는 맑고 겸손한 미소로 긴 호흡을 하며 성가대를 성장시켜 가는 탁월한 김성미 지휘자, 강단 있는 이건주 반주자, 그리고 어떤 행사이든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도 안에서 의기투합하여 수고하신 모든 분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원근 각처에서 참석하셔서 수수밭처럼 환하게 마음의 휘장을 열고 진지하게 함께해 주신 귀한 손님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주님은 51년 전에 뒤셀도르프한인교회를 세우셔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부어 주셨다. 분에 넘치는 대궐 같은 예배당을 우리에게 주셨고 느지막이 신실하신 주의 종, 이권행 담임 목사님과 그의 사랑하는 가족, 이수미 사모님, 선준, 선율을 우리 곁으로 보내주셨다.
어디 그것뿐이랴? 이렇게 능력 있고 노른자 같은 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여러 보물이 옹기종기, 도담도담 착한 눈빛으로 능금 꽃 웃음 지으며 모여 사는 운명 공동체, 좋은 사람들 옆에 있으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우리 어머니의 말씀을 새삼 떠올리며 거북목 되어가는 저녁나절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흥겹다.
*오늘 음악회에서 모은 기부금 일부는 AWO Familientreff Düsseldorf-Holthausen에 전달된다고 한다.
1365호 14면, 2024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