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퐁미당,

신발 한 쪽의 해방감과 꼬까옷 입은 우리의 청춘

노석임

오래전 스님 께서 나의 호를 붙여주셨다 . 한 말씀 던지셨다. “글에서 그저 웃음이 퐁퐁 샘솟고, 마음씀씀이가 참 미당이십니다그려.”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속에서 특유의 해학과 오지랖이 툭 튀어나왔다. “스님요! 스님이 뭔 미당입니까! 제 이름에 예쁠 미 자 붙여주신 건 고마운데, 제 글은 멋대로 튀는 맛이 있어야 진짜라예.

앞으로 저를 ‘퐁퐁미당’이라 불러주이소! 샘물처럼 유머가 퐁퐁 솟아나고, 세상 비틀어보는 재미가 퐁퐁 샘솟는 미당입니다!“

그렇게 스님과 한탕 웃어젖히며 얻은 ‘퐁퐁미당’이라는 이름표는 오늘날 내 글의 당당한 훈장이자 삶의 간판이 되었다.

글을 쓸 때마다 입가에 슬며시 번져 나오는 미소는 도무지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가 없다. 마음속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슬픈 날에도, 가을바람처럼 쓸쓸함이 가슴 한구석을 휑하게 훑고 지나갈 때도, 혹은 마음이 사무치게 외로워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그렇다.

심지어 기분이 너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날에도 내 삶의 더하기와 나누기에는 항상 유머라는 고소한 양념이 팍팍 따라붙어야 비로소 마음이 오롯이 편해진다. 그래야 온전히 ‘퐁퐁미당’의 진짜 글이 되는 법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게 참 별거 있나. 슬픔이라는 짠맛도, 외로움이라는 쌉싸름한 맛도 유머라는 달콤한 설탕 한 스푼 툭 털어 넣고 슥슥 비벼버리면, 제법 견딜 만한 맛깔난 인생 비빔밥이 되는 것을.

오늘도 내 집 안방마냥 하도 자주 드나들어 주방 이모 얼굴까지 훤한 길가 단골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밖 사람 구경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긴장이 훌러덩 풀렸는지, 신발 한 쪽을 홀라당 벗어 던지고는 의자 위로 다리를 슬쩍 올려버렸다.

“에고고, 미당아! 니 지금 정신이 있나 없나, 여기가 어딘데 이카고 있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혼자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집구석에서나 하던 미련한 짓거리를 공공장소에 나와서 번젓이 하고 있다니, 참말로 ‘지 버릇 개 못 준다’카는 속담은 단 한 치도 틀린 게 없다.

우야겠노, 어디를 가든 이 달랑거리는 짧은 다리를 어디든 턱하니 올려두어야 비로소 천국처럼 편안해지니, 이 못 말리는 본능을 우찌 말리겠는가.

나이 들수록 자꾸만 편한 것만 찾는 이 몸뚱어리가 야속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참 솔직해서 귀엽다 싶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수십 년 전에 세미나 참석차 가보았던 독일 뮌헨의 으리으리한 호텔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 돈 주고는 감히 문턱조차 넘볼 수 없는 멋들어진 5성급 호텔이었다.

그런데 호텔 로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장면 하나가 눈에 턱 걸렸다.

누군가 맨발을 로비 탁자 위에 버젓이 올려두고 팔자 좋게 누워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나, 아연실색해서 입이 떡 벌어질 광경이었다.

나중에 가만히 들어보니, 그 사람들은 저 멀리 아랍에서 온 거물급 돈벼락 부자들이란다. 호텔 맨 위층 전체를 아예 통째로 빌려가지고 제집 안방인 양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엘리베이터 층수를 잘못 눌러서 그 거물들 층에 띵하고 내렸다가 기절초풍할 뻔했다.

정복을 단단히 쳐 입은 부리부리한 눈매의 호위 무사들이 딱 지키고 서 있는데, 그 눈빛에 압도되어 우리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빛의 속도로 다시 내려왔었다.

내 짧은 다리로 어디를 가든 달랑거리는 다리를 올려놓아야 편안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돈 많은 아랍 부자 양반들이 보여준 그 거만한 맨발 투혼의 혐오감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영영 잊히지가 않는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 하나, 품격이 맨발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오늘 단골 카페에서 슬그머니 신발을 다시 고쳐 꿰어 차며 혼자 허허 웃는다. 옛날 아랍 부자 흉보던 내가 오늘 몰래 ‘소심한 아랍 부자 놀이’를 할 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이 칠십을 넘어 오십년 넘은 가까운 세월을 이 타향만리 독일 땅에서 살며 내 청춘을 다 바쳤으니,

이 고단했던 다리 한 쪽쯤은 세상 어디서든 편하게 올려놓을 자격이 나에게도 있지 않은가 싶어 살짝 억울한 마음도 든다.

어제 보트롭에 다녀온 파독 간호사 60주년 행사장 풍경이 떠오른다.

내가 그 행사의 주인공으로 서지 않았더라면 그저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그 장면. 알록달록 고운 꼬까옷 입고 예쁘게 꽃단장을 하고 오셨지만, 그 슬프도록 깊게 파인 주름진 얼굴들은 어느새 양로원 행사장에서나 볼 법한 풍경과 어딘가 닮아 있었다.

그 눈시리게 아픈 모습들에 나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쿵 하고 쳐내 렸다.

단상 위 높은 분들은 우리를 기쁘게 한답시고 곱디고운 말들을 쏟아냈다. “독일에 한 두 살 때 오신 모습 같다”, “120살까지 살아서 다시 만나자”, “여러분이야말로 역사의 주인공이요, 대한민국 청춘의 밑거름이다” 하며 온갖 번지르르한 찬사를 바쳤다.

듣다 보니 부산 할매의 오지랖과 오기가 속에서 왈칵 치밀어 올랐다. “이봐요, 양반님들! 제발 그 입으로만 하는 말, 번지르르한 소리는 이제 그만 좀 하소!”

역사의 주인공이라 칭송하고 이 많은 기관과 후원자들이 모였으면, 고국 방문길에 오른 우리 늙은 간호사들에게 실질적인 숙박 카드 한 장이라도 제대로 발급해 주는 게 진짜 대접이 아닌가!!

민간 차원에서 쯧쯧 혀 차며 생색내는 것 말고,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숙박 카드 하나 딱 마련해 주란 말이다.

‘안 되면 말고’ 식이 아니다. 곱게 꼬까옷 입고 모인 우리 파독 간호사들의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릴 이 마지막 세월 앞에, 말뿐인 칭찬 대신 우리의 노고를 진짜로 알아주는 손에 잡히는 대접을 보여 달라는 뜻이다.

퐁퐁미당이 하는 이 소리가 그저 괜히 심술이 나서 툴툴대며 씨부리는 소리가 절대 아니란 말이다.

카페 창가에 앉아 신발을 고쳐 신고 다리를 아래로 바르게 내린다. 품격이란 건 아랍 부자들처럼 돈으로 사서 맨발을 내던지는 거드름이 아니라, 역사의 증인의 주인공들, 일평생 타국에서 청춘을 쏟아 붓고도 당당하게 제 몫의 권리를 요구할 줄 아는 우리들의 주름진 얼굴에 있는 것이리라.

사람이 살다 보면 외로워서 허기가 지기도 하고, 슬퍼서 기가 꺾이기도 하며, 지나간 세월이 야속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향해 “에구, 이 푼수야!” 하며 한 번 웃어줄 수 있고,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해버리는 이 정겨운 유머와 배짱이 있다면 무슨 상관이랴.

오늘도 내 삶은 삐끗할 뻔한 하루도, 억울하고 쓸쓸할 뻔했던 마음도, 입가에 작은 미소가 ‘퐁퐁’ 샘솟는 행복하고 당당한 수필 한 편으로 한 소리 내어 보게 된다.

​퐁퐁미당

​​스님이 붙여주신 미당이란 이름표에
스님요 뭔 소립니까 퐁퐁이라 불러주이
아무리 슬픈 날에도 웃음 양념 팍팍 친다.

​단골집 신발슬쩍벗어 던지고
달랑이는 요 짧은 다리 탁 올리니 천국이라
옛날에 흉본 아랍 놈 흉내 내며 웃는다.

​보트롭 모여 앉은 고운 꼬까옷 할매들
말뿐인 입사탕으로 오십 년을 때우나
정부서 숙박 카드나 딱 내놓으란 말이다.

​타향만리 구만리 청춘 다 바쳤는데
다리 한 쪽 올리는 게 무신 큰 죄 되길래
오늘도 배짱 하나로 퐁퐁 웃고 살아간다.

1474호 14면, 2026년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