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40)
동서독 정당통합(3)

통일과정에서 동서독 정당체제의 변모 ③

동독정당의 개편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동독인들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크게 두 가지의 형태로 나타났다. 첫째로 동독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요구이다. 이러한 요구 는 주로 과거 공산당 정권 시절 반대투쟁을 주도했던 예술인, 목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통일방식에 대해 거부하는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는 동독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동독 공산당 정권 독점 조항의 삭제였다.

① 동독 기민당

동독 기민당은 동독의 몰락에 자신들 또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블록정당에서 탈피하여 사회주의통일당과 뚜렷하게 거리를 두면서 동독의 법치와 투명성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되었다. 그러나 당시 동독 기민당의 당수였던 게랄드 괴팅(Gerald Götting)은 사회주의통일당과의 관계 에 중점을 둔 사람으로 그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1989년 11월 2일 괴팅은 파면되었고 동독 기민당은 11월 10일 개혁주의자인 로타 드 메지에르 (Lothar de Maizière)를 새롭게 당 총재로 선출하였다.

이후 11월 20-22일의 지도부 비공개정당대회와 12월 15-16일 있었던 특별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지지 아래 당 정강의 개정을 결의했고, 사회주의 노선으로부터 선회하여 사회적 시장경제와 연방제를 기반으로 하는 동서독 통일을 목표로 제시했다.

② 동독 사민당

사회주의통일당과는 다른 노선을 걷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의 하나는 동독 사민당에서 찾을 수 있다. 1989년 7월 24일 독일의 막데부르크(Magdeburg)와 포츠담(Potsdam)의 기독교 신학자인 마르쿠스 메켈(Markus Meckel)과 마르틴 구트차이트(Martin Gutzeit)가 이끄는 그룹이 동독 사민당 발족을 목표로 하는 이니셔티브 그룹 건설 제안서를 작성하였다.

이후 이니셔티브 그룹들은 1989년 9월 12일 호소문을 작성하였다. 이들 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건설을 제안하고 법치국가와 삼권 분립,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연방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 자유 노조를 촉구하였다. 이러한 호소문을 바탕으로 1989년 10월 7일 동독 사민당이 베를린과 동독 남부 지방 의 50인에 의해 설립되었다.

동독 사민당의 목표는 더욱 심각해지는 국가의 불안을 막고, 국가와 사회의 지속적인 민주화를 달성하고, 친환경적 사회민주주의를 도출해 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동독의 민주화 그룹과 이니셔티브 집단, 개인들의 협력이 요구된다고 주장하였다.

동독 사민당은 1989년 10월과 12 월 사이에 동독의 여러 도시에 지구당을 설립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동독의 중앙원탁회의에서 동독 사민당은 2석을 확보하였다. 제1차 대표자 회의에서는 동독 사민당의 당명을 사민당으로 변경할 것을 결의하였는데 이는 당의 방향과 관련해 서독의 사회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1990년 9월 26일 동독 사민당과 서독 사민당은 합당을 하게 되었다.

③ 동독 자민당

장벽이 붕괴되기 전 이미 사회주의통일당의 노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동독정당의 변화는 감지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첫 번째 주역은 9월 사회주의통일당의 노선을 비판하면서 반기를 든 동독 자민당(LDPD)이었다.

그러나 당시 당수였던 만프레드 게르라흐(Manfred Gerlach)는 인도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던 사람으로 장벽 붕괴 후 위성정당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정당 기저의 요구와 시장경제에 대한 찬성 및 조속한 독일통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에 1990년 2월 드레스덴(Dresden) 에서 열렸던 특별전당대회에서 게르라흐의 해임이 결정되었고 이를 계기로 전통적 자유주의 노선의 추구를 명확히 하였다.

④ 사회주의통일당

동독헌법에 보장되어 있던 동독 공산당 정권 독점 조항이 삭제된 사회주의통일당은 1989년 12월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당수 그레고 기지(Gregor Gysi)를 선출했고 그는 앞으로 사통당 내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하였다. 더불어 당명을 사회주의 통일당-민주사회주의당으로, 당 기관지의 별칭이었던 사통당 중앙기관지 대신 사회주의 일간지로 변경하였다.

이후 사회주의통일당-민주사회주의당은 1990년 2월 1일 중앙지도부 의장단의 제안에 따라 당명을 민주사회주의당으로 변경하였다. 이들은 강령 초 안에 민주사회당과 동독 사민당과의 차이점 7개 항을 적시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민주사회당은 완성된 사회 시스템이 아닌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과 끊임없는 과제, 도전으로 민주사회주의를 중시하며, 스탈린주의적 특징을 지닌 현실 사회주의의 개념 및 형상과 결별하였다. 또한 민주사회당은 독일과 전 세계 노동자 운동의 사조와 인민의 혁명적이며 민주적인 전통, 반파시스트 운동을 바탕으로 하며, 노동자 운동 중 한 가지 사조의 유산에만 기대지 않는다.

민주사회당은 행정적인 국가사회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도 거리를 두고 있으며, 사회적 재산이 지배적인 재산 형태로 남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민주사회당은 서독에 의존할 수 있는 모당을 갖고 있지 않으며, 동서독 모두가 개혁 과정을 추진하며 공존하는 것이 독일 영토와 전 유럽의 민주적이며 사회적으로 공평한, 친환경 적이며 연대적인 사회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교포신문사는 2020년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연재를 통해 살펴보며,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편집자 주

1216호 31면, 2021년 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