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30년 (49)

동서독 정당통합(11)

통일 후 동서독 정당지형 ④

정당통합에 대한 평가

동서독 정당통합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급속한 통일과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민주적 정당체계가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었다는 긍정적 평가 외에도 서독 정당체계의 이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동독의 정치적 이해가 적절히 반영되지 못하면서 통일독일의 전체 정당체계의 질곡을 겪는 계기가 되었다 는 부정적 평가 등 다양한 논의들이 있어 왔다.

총평: 민주적 정당체계의 안정적 유지

구동독 정당체계의 구서독 정당체계로의 흡입은 정당의 수라는 측면 에서 보면 구서독 정당체계의 특징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한 것 사실이다. 비록 통일과정을 놓고 봤을 때 정당체계가 급속히 분열해서 안정성이 상실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지만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1990년 통일 후 실시된 연방선거에서 5% 봉쇄조항이 구 동서독으로 분리 적용된 결과에 힘입기는 하였지만 결국 민사당만이 추가로 연방의회에 진출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아울러 1990년 연방선거를 통해 기민당이 유지하던 사민당에 대한 상대적 우위는 더욱 강화되었는데, 내용적인 측면에서 구 서 독 정당체계와 크게 상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독일의 정당체계는 이념적으로 구서독 정당체계에 비해 다소 좌경화된 것이 사실이다.

다른 한편, 통일 이후 재형성된 구 동독지역의 정당체계는 구 서독지역의 정당체계에 비해 상당히 양극화되어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러한 현상은 구 동독지역에서의 민사당의 강세와 자민당의 약화로 특징지어지는데 이에 따라 주정부를 구성하는 연정 대상이 좁아져, 대연정 이외에 또 다른 대안 은 현실적이지 못한 상태에 놓여있다.

결국 과거 구서독에서와 달리 주차원의 연정문제는 정책보다는 정치권력의 획득이라는 정략적 측면에 보다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1990년 통일 당시 독일의 정당체계는 상대적으로 높은 정당성을 인정받았으나 1991년대를 경과하면서 정당성은 점차 약화되기 시작하는데,88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통일 이후 열악해진 경제 사정과 구서독에 의해 주도된 통일 과정에 대한 불만을 들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 성공적인 정당통합

독일통일과정에서 정당통합이 성공적이었다는 의견은 성공적인 정당체제의 구축과 정치 엘리트 교체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성공적인 정당 체제의 구축과 관련하여, 사회주의 일당체제를 단기간에, 그것도 안정적으로 민주적 선출 의회체제로 탈바꿈시킨 점은 높은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통일 직후인 1990년 10월 다수의 동서독 정당이 통합된 것을 비롯하여, 1990 년대 초반 구 동독지역에 새로운 정당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이 완료되었는데 이를 통해 민주적 정치체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정당체제 구축이 성공적으로 구동독에서 완수되었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결국 구 동독지역 을 대표하는 정치 정당이 신속하게 설립됨에 따라 통일 후 공백 없이 전 독 일에서 민주적 의회체제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성공적인 정치 엘리트 교체를 꼽을 수 있다. 1990년 실시된 동 독 5개 주의회 선거에서 선출된 509명의 의원 가운데 동독 인민의회 출신이 5명에 불과하였는데 이를 이유로 구동독에서의 정치인력 교체는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정적인 측면: 서독 주도의 통합방식으로 인한 문제

성공적인 측면 외에도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평가들은 주로 서독 주도의 통합방식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점들을 지목한다. 즉, 통일과정에 있어 양 당사자들이 동등한 눈높이가 아닌, 서독의 주요 제도와 엘리트들이 동독지역으로 이전된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주도권을 쥔 행위자가 서독이었던 불균형한 관계 속에서 조우했다는 점이다.

정당통합이 화학적 결합이 되지 않고 물리적으로 서독 정당체제의 확장이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다. 즉 정당 간의 대등한 통합이 아닌 서독정당들의 당 조직과 행동영역의 구 동독지역 확대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실상 정치체제는 달라지지 않은 채 서독의 정치체제가 동독지역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과정과 관련하여 구 동독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정 치권만의 논의 속에서 통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정당 간의 통합 과정에서도 이러한 과정을 답습했다는 것이다.

서독의 기민/기사련과 사민당 및 자민당 등 주요 정당들은 통일과정에서 각각 동독 정당의 선거캠페인에 참여하고 물적·인적 자원을 적극 지원하는 등 인민의회 선거를 “동독 땅에서 치러진 서독의 선거”로 만들었는데, 이런 동독의 서독 정당 정치화는 결국 통일 이후 동독의 정당들이 서독의 정당들로 흡수 통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결과는 성공적인 정당 통합의 과정을 위해 당원의 의사를 구하거나, 구 동서독의 당 조직을 해체하고 새로 운 정당을 구성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구서독 정당이 구동독 정당을 단지 흡수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는데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동독정당의 서독정당 체제로의 흡수통합은 이후 구동독 주민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대변할 정당조직의 부재 문제뿐만 아니라 통일후유증에 의 해 구동독 주민 스스로 ‘2등 국민’이라고 느끼는 집단의식의 형성에도 상 당정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통일과정에서 분출하는 구동독 시 민들의 민주 열기를 통일독일의 정당체계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구동독인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은 정치체계에 또렷이 대변되고 있지 못하고 소외 되고 있다는 느낌까지 강화시켜 구 동서독지역 갈등의 계기로 작용하게 만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앙금은 급속한 정당통합에도 불구하고 경제, 문화 및 사회 심리적 영역에서의 내적 통합은 여전히 보다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1225호 31면, 2021년 7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