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67)

2차 대전후부터 메르켈 시대까지 독일 외교정책(1)

개요

전후 서독은 국제평화 추구, 개방적·협조적 국제주의, 인권 존중과 실현, 독일 통일 등을 외교정책 목표로 설정하였지만, 제1·2차 세계대전 발발 책임과 유태인 학살 등 ‘역사적 부담’ 때문에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수행하는 데 큰 제약이 있었다.

또한 동·서독 분단과 미·소 양극 체제의 형성으로 유럽의 냉전 구도에서 최전선에 놓이게 된 서독은 초대 총리인 아데나워 총리 주도 하에 적극적인 친서방 정책을 추구하여 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한편, 경제적 부흥에 주력하였다.

이후 미·소 간의 데탕트 무드와 유럽에서의 긴장완화라는 상황 변화에 맞춰 브란트 총리는 유럽의 현상을 인정하고 긴장완화를 추구하는 대동구 관계 개선 정책인 ‘동방정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동독과 협력 정책 추구하였다.

1980년대 말 동구권의 잇따른 붕괴와 동독의 체제 불안정을 기회로 포착한 콜 총리는 통일을 위한 대외환경 조성에 전력하였으며, 전승 4개국과 동서독이 참석한 ‘2+4 회의’를 통해 완전한 주권을 회복하고 마침내 1990년 10월 통일을 달성하였다.

동·서독간 통일로 재탄생한 통일 독일은 냉전 종식 후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과정에서 정치적·경제적 위상이 강화되면서 이에 상응하는 외교적 역할 강화 모색하였다.

2005년 11월 집권한 메르켈 총리의 대연정 정부는 ‘대서양 동맹 심화’ 및 ‘유럽통합 강화’를 외교의 양대 축으로 삼고 국제 평화·안보 문제에 대한 기여와 국제 개발협력 증진을 통해 독일의 국제정치적 위상 제고를 위한 노력 강화하였다.

특히 영국의 EU 탈퇴, 미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EU 통합 및 협력 확대, ▲ 자국우선주의 및 보호무역에 대항하는 중심 역할 수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의지와 행동을 보였다.

독일 외교정책의 역사

점령국의 대독일 정책(1945~1949)

제2차 대전을 전후한 연합국의 대독일 정책은 독일의 ‘완전분해(totale Zerstucklung)’가 목적이었다. 이러한 연합국의 공동보조는 마셜 플랜 협상 실패(1947, 파리), 트루먼 독트린(194년 .3월), 모스크바 외상회담 좌초 및 동구에서의 소련 팽창 등 양측간 이념 대립으로 균열 양상을 보였다.

미국·영국·프랑스 점령 지역에서의 통화개혁(1948.6.21)은 소련의 제1차 베를린 봉쇄(1948.6.24~1949.5.1)를 유발시켜 결국 1949년 서독 및 동독 2개 정부가 탄생하게되었다.

– Konrad Adenauer 총리 시대(1949.9~1963.10)

제1차 아데나워 내각의 대외정책은 전승국이 작성한 점령규칙(Besatzungsstatut)에 의해 제한되었고, 정당 간 입장 차이 및 정당 내부 갈등으로 인해 통일된 외교노선 설정이 곤란하였다.

아데나워 정부는 패전 독일의 경제재건과 주권회복을 위하여 친서방 정책을 추진하여, 1950년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1954년 10월 파리조약 가입 등을 거쳐 1955년 5월 주권을 회복하고 NATO에 가입하였다.

당시 서독 정부는 동독의 존재 및 ‘오데르-나이세(Oder-Neisse)’ 국경선을 부인하고, 소련을 예외로 하고, 동독국가와 외교관계를 맺는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단절한다는 ‘할슈타인원칙’을 제창하였다.

유고가 동독과 수교 시(1953) 최초로 이 원칙을 적용하여 유고와 단교하였으나, 소련과는 독일 문제에 책임을 진 4대국의 일원이라는 명분으로 1955년 국교를 수립하였다.

이와 더불어 친프랑스 정책을 추구하면서 작은 유럽의 통합을 추진했으며,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창설에 산파 역할 수행하였다.

– Ludwig Erhard 총리 시대(1963.10~1966.10)

미·소 간 해빙 무드, 유럽 긴장완화 및 동독과 제3세계와의 국교 수립 증가 추이에 따라, ‘역동적 외교정책(Politik der Bewegung)’으로 NATO와 유대를 강화하는 한편, 대동구권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다.

즉 ‘할슈타인 원칙’과 ‘힘의 우위’ 정책에 입각했던 아데나워 정책을 수정하여, 1963년 폴란드・루마니아 등 동구 국가들과 통상협정을 체결하고, 1966년 3월 에르하르트의 평화교서를 통해 소련에 무력사용 포기 선언 교환을 제의하였다.

– Kurt Georg Kiesinger 총리 시대 (1966.10~1969.10)

1966년 말 재정정책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기민당(CDU)의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FDP) 각료가 퇴진하자 기민당과 사민당(SPD) 간 대연정이 구성되어, 기민당의 키징어가 총리, 사민당의 브란트가 외교장관이 되었다.

브란트 외교장관은 친서방 기본 노선 이외에 ‘접근을 통한 관계개선(Wandel durch Annährung)’ 및 ‘인간적 고통 완화(Menschliche Erleichterung)’ 등을 표방, 대동구 및 대동독 정책에 있어서 적극적이고 신축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1967년 1월 31일 루마니아와 국교를 수립하고, 1968년에는 단절되었던 유고와의 국교를 재개하였다.

1968년 8월 소련의 체코 침공으로 독일의 대동구 접근 정책은 일시 중단되었으나, 1969. 7월 독·소 무력사용 포기에 관한 독일측 안 제시로 동구국가 접근 정책이 재개되었다.

1239호 29면, 2021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