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86

문화부분 (4)

◈ 독일의 국제도서전

매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가을)과, 라이프치히 도서전(봄)은 출판국가 독일의 면모를 보여주는 세계적인 도서전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는 전 세계 170여개 국가, 출판사는 1만 개 이상이 참가하여 매년 10만 여 종의 책을 전시하고 수출, 수입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다. 메세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며, 첫 3일(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은 B2B, 마지막 2일(토요일, 일요일)은 B2C 행사로 치러진다.

프랑크푸르트트 도서전은 단순히 책을 전시해서 판매하고 시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15세기 최초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처럼 자유롭게 책 주제에 대해 몇 분이고, 아니 몇 시간이고 토론하는 토론 부스들이 각 출판사 및 서점 부스마다 반드시 비치된다. 이점이 다른 도서전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래서 지식 산업의 세계 교역장이라고 불린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특징: 주빈국 제도

1960년대 만들어졌던 중점 테마제도가 80년대 중반까지 잘 지속되던 중 언론은 다시 이 제도가 68년 학생운동의 산물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도서전 당국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내고자 노력했으며 그 결과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주빈국 제도이다.

주빈국 제도는 주요사회 쟁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국가 단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제도이다. 이 제도는 1988년부터 도입되었으며 이전의 중점 테마제도와 달리 매년 한 국가를 선정하고 그 나라나 지역에 자체적인 운영을 맡기고 있다. 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문학과 출판 사업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 기간은 해당 국가의 문화를 전 세계인에 홍보하는 기회라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라이프치히 도서전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매해 가장 먼저 도서출판계를 한 자리로 모으는 독일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행사이다. 매년 3월이면 그해 봄의 신간 서적들이 이곳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이러한 전통은 벌써 수백 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라이프치히가 도서전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중세 시대의 서적 인쇄, 출판, 디자인의 발전과 관련이 깊다.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이 발간된 도시이자 ‘레클람 문고(Reclam Universalbibliothek)’ 시리즈로 유명한 레클람 출판사의 고장인 라이프치히는 16세기에 이미 베네치아, 파리, 바젤과 더불어 유럽의 주요 인쇄 중심지 중 하나였다. 수많은 출판사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 역시 책의 도시로서의 라이프치히의 위상에 기여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도서전은 원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었다. 구텐베르크가 15세기에 이미 마인츠에서 인쇄술을 발명했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출판업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만남의 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라이프치히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1632년에 개최된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는 처음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보다 더 많은 책들이 전시되었고, 1730년경에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카탈로그에 100권의 책이 실리는 동안 라이프치히 카탈로그에 무려 700권이 게재되었다.

확대된 동서화합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라이프치히를 제치고 다시금 1위 자리를 탈환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수천 개의 출판사들이 참가하는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읽을거리와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 하던 동독 시민들에게 놓칠 수 없는 중대한 행사였다. 라이프치히 도서전에 가면 심지어 금서들도 접할 수 있었다. 방문객들은 이러한 금서들을 그 자리에서 선 채로 읽거나 내용을 베껴 쓰곤 했다. 좀체 구하기 힘든 유명 서독 작가들의 책들도 접할 수 있었다. 주어캄프나 로볼트, S. 피셔 같은 서독 출판사들에게 있어 동독은 분명 중대한 시장이었다. 라이프치히 도서전에 전시되는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이나 볼프 비어만(Wolf Biermann)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은 전시장에서 도둑을 맞곤 했는데, 이는 이러한 작가들의 위상이 그만큼 높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렇게 동서독의 화합에 기여해온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이제 영향력의 범위를 유럽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도서전 프로그램 중 하나인 ‘트랜싯(Tranzyt)’에서는 매년 폴란드, 우크라이나 그리고 벨라루스의 책들이 소개된다. 1994년부터는 ‘유럽상호이해상’을 제정하여 수여하고 있는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독일출판평화상’에 해당되는 상이라 할 수 있다. 유럽상호이해상은 동서유럽 간의 상호이해를 드높이는 데에 기여한 작가들에게 수여된다.

친근한 도서전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당시 있는 힘을 다해 겨우 버티고 있던 동독 출판사들에게 치명타를 입혔고, 그 여파가 라이프치히 도서전에도 전해졌다. 하지만 1991년 통일 이후 최초의 도서전이 막을 올리면서,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오늘날의 모양새를 점차 갖추어 나갔다. 며칠 동안은 관계자들에게만 개방되고 도서 거래량도 훨씬 더 많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는 달리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무엇보다 방문객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엄청난 방문객수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친근하며, 독자와 작가 간의 만남에 가치를 두고 있다.

1258호 29면, 2022년 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