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87

문화부분 (5)

◈ 독일의 문화정책

독일을 대표하는 단 하나의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수의 문화가 놀랄 만큼 상반된 형태로 공존하거나 얽혀있고,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며 존재한다. 21세기에 독일을 문화강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독일이 성숙하고 발전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놀라움과 당혹감, 종종 긴장감까지 주는 다양성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1871년이 되어서야 통일국가의 모습을 갖춘 독일의 연방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49년 수립된 독일연방공화국뿐 아니라 1990년 재통일된 독일 역시 의식적으로 연방주의 전통을 계승하였고 문화고권을 각 주(州)에 일임하였다. 그 후 1998년에 이르러서야 연방총리실 직속의 문화미디어 특임관 제도가 생겼다.

생동감 넘치는 문화국가

수많은 중소국가 및 자유도시가 결합한 과거 독일의 구조를 반영하듯 약300개의 시립 및 주립 극장과 130개의 전문오케스트라(일부 방송국 소속) 등 다양한 문화 기관과 시설이 독일에 소재한다.

국제적으로 가치가 높은 전시물을 소장한 540개의 박물관 역시 독일의 자랑거리이다.

이처럼 독일은 문화시설의 다양성 면에 있어서 세계 으뜸이다. 대부분 공공부문이 운영하는 극장, 오케스트라, 박물관에 대한 만족도가 기본적으로 높다. 그러면서도 이들 문화시설은 공공예산이 제공하는 한정된 재정, 사회인구학적 변화와 미디어 변화 그리고 디지털화 현상으로 인해 격변의 시기에 있으며 새로운 방향 모색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문화강국으로서 독일의 명성은 음악계를 대표하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 문학계를 대표하는 괴테, 실러, 토마스 만과 같은 독일 출신의 거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예술에서도 독일은 모든 장르마다 대표적인 예술가들을 배출하였다.

반면에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이 이미 오래전에 겪은 과정을 뒤늦게 경험하고 있다. 바로 독일만의 전통이라는 토대 위에 외부에서 유입되는 영향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내러티브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 예로, 이민자 가정 출신의 젊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문화의 조우와 융합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을 음악이나 시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지역의 예술 및 문화 기관이 생동감 넘치는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변모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이들 기관은 독일의 저력이자 독일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문화 간 대화

독일의 대외문화∙교육정책은 전통적인 외교정책 및 대외경제정책과 함께 독일의 3대 대외정책을 구성한다. 독일의 대외문화∙교육정책은 문화, 교육, 학문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통해 국제 관계 구축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사람과 사람 간 소통을 이끌어내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그 결과 대외문화·교육정책은 상호이해의 길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평화관계를 추구하는 정책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다. 독일의 대외문화∙교육정책은 또한 전 세계에서 독일어 교육 장려, 독일의 우수하고 다채로운 문화 홍보, 독일의 생생한 소식 제공을 주요 과제로 한다.

구체적으로 전시회, 독일 극단의 해외 공연, 문학 및 영화와 같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더 나아가 이슬람 문화권과의 소통을 위한 프로젝트와 독일 청년의 해외자원봉사 프로그램인 “쿨투어바이트(kulturweit)”와 같은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독일 대외문화정책은 예술로 국한된 문화 혹은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로서문화가 아닌 대중중심의 포괄적 문화 개념을 기반으로 모든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대외문화정책이 독일의 문화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문화보존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의 주요 역사 문화재를 보존하는 사업 역시 지원한다.

독일 외무부는 1981년부터 2016년까지 144개 국가에서 약 2,800개의 문화재 보존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말리 팀북투에서 발견된 필사본 보존, 시리아 문화재 목록과 카메룬 전통 음악 디지털화 또는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찰 재건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열린 문화

독일에 다른 도시를 압도하는 절대적인 하나의 메트로폴리스가 없듯 다원주의에 기초한 독일 사회에 다른 문화 트렌드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주류 트렌드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독일 연극계와 영화계, 음악계, 조형예술, 문학계에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나타나고, 매우 상이하고 상반된 문화적 조류가 경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특히 독일의 연방주의 구조로 강해지고 있다.

또한. “포스트 이민”이라는 키워드 아래 대두되고 있는 문화 현상은 이민 국가로서 독일의 모습을 반영하며 베를린을 비롯해 수많은 도시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2대, 3대에 걸쳐 독일에서 살고 있는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이 수세기에 걸쳐 독일에서 살고 있는 독일인들의 이야기와는 다른, 자기 자신과 부모 그리고 조부모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독일의 조형예술도 개방적이고 국제화되었다. 이는 독일 미술대학 입학생 수 관련 통계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2013년부터 미술대학 입학생 중 외국 유학생의 수가 독일인 학생 수를 매년 추월하고 있다.

약 5백 개의 갤러리와 다양한 미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하는 도시인 베를린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중심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현대미술의 산지로 꼽힌다. 이 사실은 2년마다 개최되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입증된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한 전 세계 작가 중 다수가 베를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1259호 29면, 2022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