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스피노자(1632~1677)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이 격언은 그보다 100년 전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처음 한 말이라고 전해진다.
마틴 루터가 청년 시절 아이제나흐에 있는 라틴어학교를 다닐 때 일기장에 쓴 말인데, 지금은 그가 살았던 아이제나흐의 소박한 2층집 앞에 심겨진 한 그루의 사과나무와 함께 기념석에 새겨져 있다.
이 격언은 히틀러의 나치에 저항했던 고백교회의 ‘칼 로츠’ 목사가 1944년 10월 5일 헤센주 목회자들의 비밀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마틴 루터의 말을 인용하며 “비록 내일 나치에 탄압받아 죽을지라도, 오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자”고 동지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그후 마틴 루터와 이름이 같은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1929~1968) 목사가 이 말을 인용하여 더욱 유명해졌고, 한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몇몇 신문들이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스피노자의 말로 잘못 알려졌다.
사실 누가 한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세상이 우리의 바람대로 순탄하게 돌아가지 않아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흔들림 없이 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꼭 해야 하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데도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해로”의 입장에서는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이 연로하여 점점 몸이 연약해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자꾸 조급해진다. 그러나 어린 사과나무를 한 그루를 심는 심정으로, 멀리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바라보며 다시 힘을 내본다.
사단법인 해로는 올해를 섬김의 전환기가 되도록 힘을 쏟고 있다. 우선 급한 대로 혼자 지내시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작은 그룹홈 공동체를 만들어 보려고 다방면으로 집을 알아보고 있다. 또한 여러 기관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좁은 활동 공간을 벗어나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조금 더 넓은 장소를 구하여 옮기려는 숙제도 동시에 풀려고 애쓰고 있다. 재정도 없고 인력도 부족한 현실을 생각하면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에 바른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기도하며 추진하려고 한다.
사과나무를 심으면 10년을 자라야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 비바람을 견디며 지난 8년 동안 열심히 어르신들을 신실하게 섬기면서 튼튼한 나무로 자라고 있는 해로인 만큼, 이제 곧 많은 열매를 동포사회에 나누어 드릴 수 있게 되기를 꿈꾼다.
그동안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의 노후를 염려하며 한인 요양원을 만들려고 했던 분들이 많이 있었다. 때로는 너무 일찍 시도하여 도중에 그만두기도 했고, 어떤 요양원은 입소하는 한인 동포들이 없어서 결국 독일 요양원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대상자들이 나오고 있어서 동포들을 섬기는 요양시설이나 공동체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당한 시설이나 집을 구하는 것이 전보다 많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1세대 동포 어르신들에게 관심을 가진 분들도 새로운 도전을 하기 어려운 연세들이 되었다.
동포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은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일은 젊은 다음세대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해로가 관심 가지고 있는 일은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을 잘 돕고 섬길 수 있을까에 머물지 않고, 젊은 세대를 발굴하여 이 일에 동참하게 하는 일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젊은 세대들이 파독 어르신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분들의 노고를 기억하도록 다음 세대들을 섬김의 장으로 불러내고 협력하는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때마침 올해는 한독수교 140주년과 파독 60주년을 맞는다. 이런 맥락에서 4월에는 KBS “다큐 인싸이트” 팀과 함께 한국의 나눔 클라리넷 앙상블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해로와 베를린 주찬양교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아름다운 얼굴 사진” 촬영(4/7~8)과 베를리너 돔에서의 자선연주회(4/15)가 진행된다. 한국의 후원자들이 모든 준비와 비용을 후원하는 행사다.
또 6월에는 파독 사진 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 행사지역이 베를린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독일의 여러 지역을 돌며 섬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이런 일들은 큰물을 끌어 올리기 위한 마중물이 될 것으로 믿는다.
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마중물이 없으면 펌프가 아무리 수맥이 좋은 곳에 있어도, 물을 퍼 올릴 수가 없다. 지하의 수맥은 고무 튜브와 같아서 펌프질을 계속하면 물길이 넓어져서 물이 잘 나오지만, 펌프질을 멈추면 물이 줄어들거나 막혀버린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관심 가지고 있는 일이나 사람들과 소통을 계속하면 점점 더 관계가 깊어지고 풍성해진다.
해로 봉사자들의 눈물겨운 헌신은 우리 동포사회를 풍성하게 하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해로와 같은 마중물이 마르지 않고 더욱 풍성한 물줄기가 되도록 격려하고 후원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6)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08호 19면, 2023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