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의 기사를 통해 독자분들은 베를린 소녀상이 건립된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다 상세히 알게 되었으리라 본다. 또한 그동안의 다양한 시민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소녀상은 올해 9월 28일 이후로 철거되어야 할 운명에 놓인 것도… 그동안 소녀상 관련 활동을 꾸려오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많다. 몇 회에 걸쳐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코리아협의회 산하 모임으로,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주도하는 AG „Trostfrauen“(일본군 ‚위안부‘행동)이 설립된 것은 2009년이다. 느슨한 연대 모임으로 20대에서 80대까지의 페미니스트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남성도 페미니스트면 참여가 가능하다. 특히 30년 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일본과 한국계 교민들이 함께 참여하기에 주변의 여성단체들이 우리를 매우 부러워한다.
대부분의 다른 단체는 비슷한 연령의 회원들이 모여 창립한 후 그 구성원들이 그대로 활동을 이어가기 마련인데, 우리 모임에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노련한 1세대들의 경험과 신세대들의 참신한 아이디어, 중간세대의 추진력을 동력으로 한 자원봉사로, 실로 불가능에 가까운 많은 일들을 해내왔다. 오늘은 베를린 소녀상 문제를 계기로 모임에 들어온 한 신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며칠 전 <연합뉴스> 독일 특파원 이율 기자가 라이프치히대학 일본학과의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다룬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연속 강연회를 보도하였다. (독일 대학 강의실에 간 소녀상…”상징이면서 현실”, 4월 15일자 보도) 이 기사에 보도된 슈테피 리히터 교수는 베를린 소녀상 문제가 불거졌을 때 갑자기 „나탈리! (한 대표의 독일 이름)“를 부르며, 우리 모임의 줌 회의에 등장한 분이다.
리히터 교수는 한 대표가 1993년 서베를린 동아시아과에서 부전공이었던 일본학을 공부할 때 시간강사로 강연을 했던 분이었다. 지금부터 30년 전 독일 통일 직후였고, 리히터 교수는 한 30대 중반쯤 되었을 때였다. (참고로 리히터 교수는 철학과 일본학을 동독체제 하에서 공부하였다. 동베를린에도 일본학과가 있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로 배제된 일본 지식인층들이 동독인들과 함께 일본학과를 발전시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동독 훔볼트 대학에는 조선학과가 있었고 그곳에서는 북한에서 온 강사가 조선말을 가르치고 있었다.)
1990년도 초반에는 아직 국가브랜딩, 즉 한 국가가 자기 나라의 이미지를 개발해 브랜드로 만들어 홍보하는 것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리히터 교수는 일본에서 „일본인론“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한 예로 그 유명한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를 초빙하여 일본문화의 유일성과 특수성에 관해 연구, 발표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일본에서 자동차만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긍정적인 이미지도 함께 수출하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우리는 서로를 잊고 지냈다. 리히터 교수는 라이프치히 대학 일본학과에 교수로 취임이 되었고,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가깝게 지내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베를린 소녀상 문제가 불거지자, 리히터 교수가 자신의 조교인 믈레도바씨와 함께 우리 모임의 줌회의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리히터 교수는 일본 정부의 훼방과 독일 정부의 일본 옹호에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문제와 우경화에 대해 탄원서를 써 미테구 의회에 제출하였다. 다른 일본학과 교수들은 아무래도 일본 정부로부터 다양한 재정적 후원을 받기 때문에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보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독일 학계에서 성과를 올리려면 제 3의 재정 지원이 필요해서 한국학, 일본학, 중국학에서는 각 나라의 정부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노력하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리히터 교수는 이에 개의치 않고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을 하는 용감한 학자이다. (계속)
글/ 한정화•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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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4호 17면, 2022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