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36)

트리어 대성당

독일 최고(最古)의 도시 트리어(Trier)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트리어: 독일 기독교의 시작

트리어는 종교(기독교)적인 면에서도 트리어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의 수제자이자 초대 교황인 베드로는 Euchaius, Valerius, Maternus를 알프스 이북 지역의 선교를 위해 파견하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이 트리어이고, 이곳에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하게 된다. 이후 베드로는 Euchaius를 트리어의 초대 주교로 임명하였고, 이어 Valerius와 Maternus가 그 뒤를 이어 주교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렇듯 트리어는 유럽의 기독교 전파가 시작된 도시가 되었다.

◈ 트리어 대성당과 성모교회

트리어 대성당(Trierer Dom)

트리어의 로마시대 유적들이 외관만 남은 상태인데 반해, 트리어 대성당은 기원 350년 경 지어진 원형이 외관과 함께 내부까지 잘 보존된 곳이다.

그러나 로마네스크 양식이 품위있고 단정한 외관의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많은 부분이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일반인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러한 점은 유럽 대부분의 교회에서 발견된다.

그 이유는 실내공사, 또는 증축을 할 경우 당시 유행하는 건축 양식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독일과 유럽의 주택, 또는 공공 건물이 외관은 19세기의 화려한 바로크 양식이나, 내부는 초 현대식 시설로 꾸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교회건물 역시 증, 개축 시에는 당시의 건축양식을 따른 결과이다.

트리어 대성당은 5세기 게르만 족의 침입시기와, 882년 노르만 족(바이킹)의 침입으로 두 차례 걸쳐 대폭 훼손되었다. 오늘날의 모습은 Poppo(1016-1041) 대주교 치세에 완성된 것이다. Poppo 대주교는 Porta Nigra에 Simeon교회를 건축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대성당 입구에는 ‘Dom stein”이라 불리는 대형 석재물이 누워 있어, 방문객이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곤 한다. 전설에 의하면, 대성당 총감독이 건축 기일을 맞추기 어렵게 되자, 일반인들을 타락시키는 대형 술집을 건설한다는 말로 악마를 설득하여, Odenwald의 대형 화강암 기둥을 나르게 했고, 이 악마는 마지막 기둥을 나를 때야, 술집이 아니라 교회건축임을 깨닫고, 회를 내며 등에 맨 기둥을 내팽겨 쳐, 오늘날까지 그곳에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대성당 내부는 가로 112.5, 세로 41m로, 큰 형태로는 직사각형 형태로 로마네스코 양식을 따르고 있다.

성모교회(Liebfraunskirsche)

트리어 대성당과 나란히 있는 성모 교회(Liebfrauenkirche)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독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고딕 양식의 교회로 1260년에 완공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기 지어진 트리어 대성당은 오늘날의 그것보다 4배의 크기로 지어졌고, 오늘날의 성모교회 자리도 트리어 대성당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파괴로 인해 트리어 대성당이 재건축되면서, 분리되었고, 당시 유행이었던 고딕양식으로 독자덕인 교회로 건축되어진 것이다.

대성당이 워낙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지만, 여러 부분이 중첩된 외관이 상당히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마치 돔처럼 중앙이 높게 솟아 천장이 매우 높고, 비대칭의 내부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조각, 제단 등이 사방을 충실히 메우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십자형 평면도로 이루어진 성모교회는 그 모양은 12장의 꽃잎을 가진 장미를 닮았는데, 이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합니다. 또한 12명의 사도를 의미하는 12개의 지지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Walderdorff 궁전과 예루살렘 탑

한편 트리어 대성당 건너편에는 후기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는 1756년부터 1768년까지 트리어를 통치했던 발더도르프(Johann Philipp Reichsgraf von Walderdorff) 대주교이자 제후의 궁전이다.

프랑스와의 전쟁 후에는 프랑스의 통치 건물로, 그리고 프로이센에 합병된 후에는 프로이센의 행정 건물로 쓰인 아픔을 간작하고 있다.

한편 궁전 안에는 중세 초기의 독특한 주택형식인 탑집(Turmhaus) ‘Turm Jerusalem(1070년 추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주택형식은 유럽 전역에서도 몇 남지 않은 유적이라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1264호 21면, 2022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