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봉 선배를 보내드리며…

지난 11월19일(목) 새벽.

평소에 많은 한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수많은 한인단체 일들을 거들며 여러 면에서 덕을 세워 오셨던 이,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보통사람보다는 훨씬 더 힘든 삶의 질곡에서 몸부림하며 하루하루를 여여함과 이웃에 대한 고마움으로 사셨던 황성봉 선배께서 돌아가셨다.

별세(別世)하신 것이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면 그 분의 죽음을 좀 더 애도하고 우리들과 이별한 고인에게 예의를 표하는 길일까? 생각하다 고인의 삶 여정 그대로를 적으며 추모하는 마음에 대신하고자 한다.

적어도 그는 나름대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할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않은 그 순간 앞에서 더욱 담담하고 의연하고 수용적마음 가짐으로 닥쳐 올 시간을 준비해 나온 것 같이 보였다.

어느 날인가 양로원에서 만나 “빨리 몸을 추스르셔야 할텐데요” 라고 습관적인 인사를 하니, “무어 이러다 그냥 조용히 가는 거지 뭐” 라며 체념섞인 듯한 어조로 돌아 온 그 한마디가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지난 77년(2차 46진) 파독광부로 독일로 건너 온 황성봉 선배,

파독근로자들이 흔히 겪을 수 밖에 없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몸소 맞닥뜨리며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 온 고인, 많은 지인들은 그의 별세에 황망한 비보라며 놀라움과 애석함을 표했다.

황 선배는 지난 14일 저녁 급성뇌출혈로 거처인 독일적십자 졸페리노 양로원에서 병원으로 옮겨진지, 5일 만인 19일 새벽, 평소 입에 자주 올리던 본향섭리에 따라 우리와 이별을 고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불교 교리인 회심귀일사상에 심취했었다.

그는 해방 한해전인 1944년 3월1일, 독립운동가들의 요람인 신흥무관학교가 위치했던 중국 서간도 땅 유하현에서 태어났다. 고인은 명문 S고를 졸업하고 주월맹호부대 공병참모부 월남어 통역하사관으로 근무하였다.

독일에 오기 전, 월간 중앙에 “탄광촌의 부조리”란 제목의 글로 열악했던 탄광촌환경에 문제제기와 노동환경개선에 따른 담론을 여는 계기도 마련하였다.

그는 이 작품으로 월간중앙 제1회 평론가상과 가작으로 입상하는 문인으로서의 영예도 안았다. 광부로 파독된 77년, 그 이듬해에는 “파독광부 그 피와 땀의 현장을 가다”라는 글을 월간중앙에 발표해 파독광산근로자들의 실태를 국내에 알렸다. 또 단군신화와 홍익인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홍익사상과 단군신화를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재외동포재단(이사장 김봉규)이 개최한 제1회 ‘재외동포 문학상’ 시 부문 입상, 2001년에는 본지 편집장으로, 재외동포신문재외기자를 역임했으며

재독한국문인회원으로 활동하였고 2008년 불의의 사고로 인해 영어의 몸이 되었다. 그는 그러한 삶의 질곡 가운데에서 그리웠던 하나님과 부처님의 손길을 새롭게 발견하며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몇년이 흐른뒤, 그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과 동료들의 위로속에서 파란하늘과 가파른 절벽사이에서 비척거리며 나르는 아기 갈매기의 모습으로 사회로 복귀했다.

따뜻하게 내민 손길들은 그에게 큰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지난 2014년에는 옥중시집인 “그대 내동백이여!(Du die du meine Kamelie bist!)”를 한독문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2008년 재독한인간호협회가 발행한 “파독간호 40년사” 기획 편집자로, 2014년 파세연이 출판한 “재독동포 50년사”에 공동집필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의 언행은 지극한 절제를 뛰어넘는 그 무엇을 느끼게 하곤 했다. 속이 아주 깊은 사람을 대할 떄 느껴지는 바로 그런 감정이다.

동료들은 출소후 거처가 변변치 못할 것을 예상하고 파독광부기념회관 숙소에 거주할 것을 권했으며 차차 회관관리 일도 맡아보며 예전 같진 않았어도 여러 한인단체에 필요한 일들을 거들게 되었다.

고인은 생전에 많은 한인단체들의 정관 기초위원으로서 그 틀을 성안했으며 지난 1999년부터 삼성후원으로 시작된 3.1절 청소년 우리말웅변대회 탄생에도 연합회 임원(당시 한국웅변협회 독일담당관)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독일에 사는 청소년들에게 3•1절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를 알게 하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교육적인 웅변대회가 우리 한인사회에 꼭 필요하다며 그 일에 앞장섰다. 이 대회는 현재까지도 총연합회 연례행사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 기회를 통해 홀로 사는 파독근로자들을 돌보는 재독한인간호협회가 펼쳐온 현지보건의료사업과 코로나 펜데믹 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인에게 필요했던 수 많은 일들을 남 몰래 거들어 오신 윤행자 재간협 전회장님의 아름다운 이웃 사랑에 머리숙여 고마움을 전해 드린다.

다시 한 번 우리와 이별한 황성봉 선배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인 두 아드님에게도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다음은 옥중시집 “그대 내동백이여!” 에 실린 시이다.

<서글픈 노래>

어느 어두운 밤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기에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아, 빗방울들이 어디선가 와서 내 창문을 두드리네요.

어느 어두운 밤 누군가 부르는 소리 있어 무심코 창문을 열어보니

아, 마당가 동백이 보슬비에 흠뻑 젖어 있네요.

아, 아스라이 먼 곳으로 부터 아련하게 들려 오는 그 부름,

밤새도록 안개같은 환영을 쫒아 밤 구름바다를 헤매였나니

그게 이토록 가슴에 사무치네요.

칠흑같은밤은 점점 깊어가는데 저 보슬비가 영면의 세계로부터

서글픈 노래를 실어 오는가 봐요?

저 밤바람이 가련한 인생의 역정을 계속하나 봐요?

나복찬 중부지사장

1196호 12면, 2020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