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내 자신이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내 자신이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도시 스스로가 빚어내는 유럽 문화의 아름다움을 체험하자
고대 로마시대부터 온천지로 알려진 비스바덴, 중세에는 북구의 니스(독일어로 Nizza)로 유럽 귀족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던 비스바덴, 근대 건축의 정수인 신고전주의, 역사주의, 유겐트스틸 등 세기말의 화려함이 원형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
이번 비스바덴 역사산책을 통해 독일의 전형적인 제후국가의 하나인 나사우 공국(Herzogtum von Nassau)을 중심으로 격동의 19세기의 독일 역사, 오늘날 헤센주의 탄생을 살펴보며, 더불어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한다.
◈ 시청 앞 광장에서
유럽 대부분의 오래된 도시는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되어 있다. 시청사 앞의 광장, 또는 그 도시의 중심 교회 앞 광장을 구심점으로 해서 길들이 방사선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 일반적인 유럽 도시의 모습이다.
비스바덴 역시 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되어 있다. 특히 1806년 나사우 공국 성립과 함께 수도로 지정되어 발전된 도시이기에, 비교적 역사가 짧은 비스바덴은 시청사 앞 광장에서 비스바덴의 지난 200여 년간의 역사의 기억들을 살펴볼 수가 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인 보-오전쟁(1866)에서 오스트리아 편에 섰던 나사우공국은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프로에센에 병합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806년 성립된 나사우 공국의 60년 역사, 그리고 프로이센의 빌헬름1세와 2세의 50여년간의 역사가 이곳 시청앞 광장(Schlossplatz)가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시청(Neues Rathaus)
비스바덴의 상징과도 같은 현 시청사는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의 치하였던 1887년에 건축되었다.
신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서 도시가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원래 있던 시청사를 대체하기 위해 새로 건축된 신 시청사(Neues Rathaus)이다. 그러나 비스바덴에서는 그냥 시청사(Rathaus)로 부르고 있다. 그 유명한 뮌헨의 신 시청사(Neues Rathaus)를 설계한 건축가 Georg von Hauberrisser의 작품이다.
5각형의 기초 위에 각 면에 첨탑을 세워 각 면의 느낌이 서로 다르기 하여, 건축물 자체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입구는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의 반대편에 분수대 앞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 보기에도 상당히 크고 웅장하지만,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연합군의 폭격으로 일부가 파괴되었고,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많이 축소되었다.
오늘날에도 계속 시청사로 사용 중이며, 특이하게도 온천 도시에 걸맞게 건물 난방을 온천수를 이용한다.
시청사 지하는 Ratskeller 식당으로 주로 바이에른의 전통요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맥주도 바이에른 지역 Andechs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Andechs Bier 종류를 선보이고 있는데, 맛과 가격이 추천할 만 하다.
구시청사(Altes Rathaus)
시청앞 슐로스 광장(Schloßplatz)에서 시청사(Rathaus)와 왼쪽으로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는 있는 구 시청사(Altes Rathaus)는 비스바덴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로 꼽힌다. 1610년에 완공되었을 때는 하프팀버(Half-Timber) 양식의 목조 건축이 가미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었는데, 1828년 오늘날의 모습으로 리모델링되었고, 현재는 등기소와 결혼 관청으로 사용 중이다.
정면 2층의 5개의 창문에는 각각 힘, 정의, 자비, 절약, 중용을 상징하는 부조가 있다. 원래는 목조 건축에 장식된 것이었는데, 건물이 리모델링 될 때 석조로 대체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원래의 목조 부조는 비스바덴에 있는 헤센 주립박물관(Hessisches Ladesmuseum)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황금사자 분수대
구 시청사 앞의 분수는 마르크트 분수(Marktbrunnen)로 불리는데, 나사우 공국(Nassau)을 상징하는 사자가 방패를 들고 있다.
이 분수대는 1753 구 시청과 궁전 사이 현 위치에 설치되었다. 붉은 사암으로 만든 팔각형 분수대는 각 면에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팔각형 분수대에는 황금 Nassau 사자가 왕관을 쓰고 있으며, 앞발에 금관이 달린 타원형 방패를 들고 있다. 방패는 비스바덴의 문장인 파란색 배경에 세 개의 황금 백합과 나사우 가문의 문장인 사자가 장식되어 있다. 현재의 사자상은 2016 년에 새롭게 도금되었다.
나사우 궁전(Stadtschloss)
1806년 나사우 공국의 성립과 함께 나사우 공의 거처와 행정을 처리할 새로운 궁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기존의 비브리히 궁전은 도심과도 멀리 위치한 점뿐만 아니라, 여름 휴양 궁으로 지어졌기에 공국의 수도 궁전으로는 적합지 않았다. 나사우 공국은 새로운 궁전을 시내에 짓기로 결정하고, 그 위치를 현재 Luisenplatz를 지정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도시 주변의 변두리였던 관계로, 현 위치에 궁전을 신축하게 된다. 새로운 궁전은 라인강가에 있는 여름 궁전인 비브리히 궁전(Bibricher Scloss)와 차별을 두기위해 궁전(Stadtschloss)으로 불린다.
새로이 지어지는 나사우궁전은 당시 최고의 건축가로 명성을 떨치던 Georg Moller를 궁전 건설 총책임자로 임명하여, 1837년에 건축을 시작해 1941년에 완공되었다. Moller는 다름슈타트 역사산책에서도 설명한 바 있듯이, 다름슈타트 공국의 주요건물을 건물뿐만 아니라 마인츠 국립극장을 건설한 바 있다.
나사우 궁전은 이후 비스바덴 굴곡 많은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제 3대 나사우 공작인 아돌프 공작(Adolph Wilhelm Carl August Friedrich von Nassau-Weilburg)이 1941년 처음으로 입주하였으나, 1866년 보-오전쟁으로 프로이센에 병합된 뒤에는 그 소유권이 프뢰센의 빌헬름 1세에게 넘어갔다. 1871년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후 독일제국을 선포한 빌헬름 1세는 나사우궁전을 군사병원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손자인 빌헬름 2세는 비스바덴에 아름다움에 반해, 매년 5월 한달 동안 나사우궁전에 머물렀으며 이로서 “5월의 궁전”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또한 오늘날 비스바덴에서 매 해 5월에 열리는 문화축제인 “Internationale Maifestspiele”도 빌헬름 2세 제위시인 1896년 비스바덴에서 열린 제 1회 Internationalen Maifestspiele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문화축제는 바이로이트의 Richard-Wagner-Festspiele을 모방한 것이다.
비스바덴은 빌헬름2세의 후원으로 그가 황제자리에 있던 1918년까지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다. 빌헬름 2세는 그의 시종과 가족등을 대동하고 비스바덴을 자주 방문하였는데, 1897년에는 세 번에 걸쳐 비스바덴을 방문한 바 있다. 이 기간 동안 국립극장(1894), 중앙역(1906), kurhaus(1907) 등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많은 예술적인 건축물들이 빌헬름 2세의 후원으로 지어졌다.
비스바덴 시 인구도 이 시기 1871년 35,500명에서 1910년 109,002명으로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이후 1차대전의 결과 1919년부터 1930년까지 처음에는 프랑스의 그리고 1925년부터는 영국의 점령군 사령부로 쓰였으며, 2차 대전 직후에도 연합군 군정청으로 사용되다가고 1946년 이후 현재까지 헤센주 주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나사우궁전은 1841년 이후 지난 200 가까운 비스바덴 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마르크트 교회(Marktkirche)
시청사(Rathaus) 바로 옆에 위치한 마르크트 교회(Marktkirche)는 당시 나사우공국 책임 건축가인 Carl Boos의 감독 하에 1853년부터 건축을 시작해 1862년 완공되었다.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교회는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비스바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건축 당시의 명칭은 나사우 대성당(Nassauer Landesdom)이었다고 한다.
독일의 신고딕 양식의 출발이었던 베를린(Berlin)에 있는 프리드리히베르더 교회(Friedrichswerdersche Kirche)를 참고하여 만들었는데, 마르크트 교회는 네 꼭지점의 첨탑, 그리고 중앙에 높게 솟은 메인 첨탑(89m) 등을 추가하여 보다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네덜란드 독립운동을 이끈 빌헬름 1세
마르크트 교회 앞에는 청동으로 된 아담한 동상이 서있다. 침묵왕 빌헬름(Wilhelm Schweige 1553-1584) 동상이다.
현 네덜란드 왕가(Huis Oranje-Nassau)의 시조인 빌헬름 1세는(네덜란드 어로는 Willem) 네덜란드 독립운동을 이끈 네덜란드의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의 동상이 이곳에 서있는 것은 빌헬름 1세와 그 후손들이 나사우 가문의 일원이고, 비스바덴이 나사우 가문의 고향인 점을 과시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 동상은 당시 독일제국의 황제인 빌헬름 2세가 헌정한 것으로, 1908년 5월 15일 열린 동상 제막식에서는 빌헬름 2세는 동상을 가리고 있던 휘장을 직접 벗기는 의식을 진행한 바 있다.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에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10년 뒤인 1918년 1차 대전의 패배와 국내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나 네덜란드로 망명,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