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사상 처음으로 남북 최고지도자가 합의해 발표한 6•15 남북공동선언이 얼마 전 21주년을 맞았다. 최초의 통일 이정표로 평가받는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네 번의 정상회담과 세 개의 공동선언이 연이어 이뤄졌지만, 오늘날 남북관계는 다시금 얼어붙어 있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의 소중한 성과이자 다시 이어진 남북관계의 상징이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던 장면은 지금의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폭파시킨 배경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으나 직접적인 계기는 대북전단지였다. 폭파 이전에 북한은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 채널을 차단했는데, 이에 대한 공식적인 이유 역시 대북전단 살포였다. 폭파 이후, 북한 측에서 발표한 입장문에는 남북 합의로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를 재배치하고 한국을 향해 전단을 살포하겠다는 문장이 포함되었다.
올해 3월 <대북전단금지법> 제정 이후에도 대북전단 살포를 감행한 바 있는 박상학 대표(자유북한운동연합)는 “생지옥인 북한에 보내는 사랑의 편지”라고 표현하는 대북전단이 왜 평화와 소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자 서로를 자극하고 공격하는 기폭제가 되었을까?
전단지보다 더 익숙한 단어인 ‘삐라’의 역사는 사실 오래된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2차대전 때 미군이 유럽에 무려 80억장을 살포한 전시 전단이다.
전시 심리전의 도구인, 이른바 ‘종이 폭탄’으로 불린 삐라는 다양한 기구를 이용해 대량 살포되었는데, 한국전쟁 3년 동안 40억장의 전단이 한반도 전역에 뿌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당시 미국 육군부 장관 프랭크 페이스가 말했듯이 “적을 삐라로 파묻”을 만큼의 양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경우, 국가 차원의 심리전 전술로서의 전단 날리기가 몇몇 탈북자단체의 원색적인 대북전단 날리기로 변화되기까지 이어진 굴곡의 역사가 남다르다. 남북은 1953년 휴전 이후에도 양측 체제를 상호 비방하는 전단지를 풍선 등으로 날려보내며 심리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1991년 9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뒤,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서 정부 차원의 삐라 살포는 중단됐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탈북자단체가 주도하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가 다시 시작됐다. 송영길 의원이 통일부에서 받은 연도별 대북 전단살포현황(2020년)을 보면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여러 탈북자단체가 지난 10년간 살포한 대북 전단은 2천만 장에 이른다.
베를린자유대학 이은정 교수에 따르면, 이곳 독일에서도 통일 전 분단시대에 전단 살포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서독연방군이 지속적으로 동독 지역에 전단을 살포했던 것이다. 이를 알아챈 서독 언론은 전단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의회민주주의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부끄러운 일이라 비판했다. 마침내 1965년, 헤센 주정부 내무장관은 연방군을 포함한 어떤 단체도 헤센 영토 내에서 전단을 날리는 것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당시 금지의 이유로 든 근거들이 참으로 흥미롭다. 전단 살포를 위해 풍선을 날리는 것이 의미 없는 행위이고, 정보를 전달한다는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행위이며, 동시에 그것이 동독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접경지역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한겨레 1월 13일자 <왜냐면>).
이는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 제정 전후로 정부가 나서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에 찬성했던 이들의 주장과 똑닮아 있다.
50년대에나 통했던 전단지 살포를 탈북자단체들은 왜 아직도 고집하고 있을까? 그리고 접경 지역에서는 실제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오늘날의 전단지 내용은 어떻게 변했을까? 남북한 국경지대의 250만 거주민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전단을 날리는 행위를 두고 한쪽에서는 표현의 자유이자 북한의 인권 증진을 위한 행위라 하고, 다른 한편인 북측에서는 이 행위를 심각한 도발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대북 전단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전쟁 71주년을 맞아, 코리아협의회와 한민족유럽연대가 공동 주최하는 “대북전단 살포와 한반도 평화”라는 의미 있는 강연회가 열린다.
이를 위해 탈북자단체 활동가로 수년간 활동하다 지금은 북한인권변호사가 된 전수미 변호사(화해평화연대 이사장)가 강사로 나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또한, 독일 전문가 디엌 쉰델벡(Dirk Schindelbeck)이 동서독 분단시대, 치열했던 전단지 심리전에 대해 소개할 것이다.
휴전 68년, 아직도 평화협정은커녕 종전협정에도 이르지 못했으나, 탈북자단체가 헬륨가스 풍선과 함께 밤 하늘에 띄웠다는 대북 전단 뭉치를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모쪼록 이 강연회를 통해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사진 제공 / 코리아협의회 mail@koreaverband.de
“대북전단 살포와 한반도 평화“ 줌 강연회
강연: 대북전단 살포의 역사적 배경과 실태, 정치환경과 국제적 논쟁, 향후 과제
강사: 전수미 박사(화해평화연대 이사장, 북한인권변호사)
발제: 동서독 분단시대의 양국 간 풍선 날리기와 전단 살포
강사: Dr. Dirk Schindelbeck(독일 전문가, 작가)
-때: 2021년 6월 26일(토) 낮 12시(유럽시간) / 오후 7시(한국시간)
-참가신청: https://us02web.zoom.us/meeting/register/tZYlf–grjoiGtar8GqmsD6XxA6k4Mmf0yly
-주최: 코리아협의회 • 한민족유럽연대
-문의: mail@koreaverband.de / (0)30 3980 5984
* 한국어/독일어 동시통역 제공
1223호 14면, 2021년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