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4월 7일 9시45분 라인마인한인교회 강민영 목사의 집례로 프랑크푸르트 인근 Waldfridhof Goldstein에서 향년 87세로 3월 26일 새벽 4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한 고(故) 이동관 권사 장례식이 거행 되었다.
고(故) 이동관 권사는 6,25 당시 약관 18세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 소정의 정규 훈련을 마치고 육군 소위로 임관 제주도 공비토벌 작전에 소대장으로 참전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육군 대위로 군복무를 마친 참전 장교였다.
간간히 비가 뿌리는 날씨와 코로나로 불안한 때에도 불구하고 프랑크푸르트 인근 각지에서 고인을 보내는 천국환송예배에 많은 지인이 참석 고인을 추모하는 집례가 열렸다.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애절한 찬송에 평소 고인과 깊은 친분을 가졌던 지인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고인을 추모했다. 김승숙 권사의 기도에 이어 고인과 두터운 친분이 있는 전 성준 권사의 고인의 약력 소개가 있었다.
고인은 6,25동안 참전 장교 경력 외에 고인은 젊은 시절 영화제작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 충무로 영화인거리에 사무실을 차려 당대 영화계 성격배우 박암, 장동휘, 윤인자 등과 친분을 가졌고 인기배우 신영균과 윤정희를 주연으로 애정 영화 “못다 한 말 가슴 아퍼”라는 영화를 제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독일에 정착했다.
전성준 권사는 “프랑크푸르트 Lufthansa에 입사 정년퇴직, 연금자로 부부간 한국을 오고 가며 평범한 삶을 사시다 영면했다고 하며 고인께서 이루지 못한 그 꿈을 다음 세상에서는 꼭 이루시길 바란다”고 울먹이며 말을 맺였다.
이어 손녀 딸 이나현양은 할아버지의 생전의 모습 “추억을 기리며”를 낭독했다.
“언제나 자상하고 인자하신 할아버지는 우리 어린 남매가 즐겁게 놀 수 있는 그네를 정원에 손수 만드시다 허리를 다쳐 병상에 누워 고생하시던 일과 손자 손녀 우리들이 즐겨하는 그릴 준비를 하다 손가락에 작은 화상을 입었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지상하고 인자하신 할아버지 생전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을 하며 울먹여 잠시 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이어 임소희권사가 추모곡 ‘신 아리랑’을 열창 했다. 이 노래는 평소 고인이 애창하던 곡으로 간혹 동포모임에 참석하였을 때 즐겨 부르는 지정곡이라 듣는 분의 가슴을 뭉클케 했다.
이어 집례자 강민영 목사의 요한계시록 14장18절 말씀 봉독이 있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특하랴.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메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아멘”
말씀 봉독에 이어 이시재 안수집사의 추모 조가 “주는 산골짝의 백합”의 열창이 있었다.
천국으로 환송하는 고 이동관권사의 영면을 위한 강인영목사의 말씀에 이어 유족 이효준 장남의 가족인사가 있었다.
고인의 장남 이효준은 “비가 내리는 불순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희 아버지께서 가시는 자리에 참석하신 어르신과 친지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리 가족을 위한 격려와 위로 따뜻한 말씀을 오래 오래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평소 고 이동관권사가 섬기던 한길교회 김용한 원로목사의 축도로 천국 환송예배는 끝이 나고, 장지에서 하관 예배가 있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로라도 하는 듯 간간히 내리던 비도 멈추고 바람도 잔잔해져 하관 예배와 취토, 헌화가 무사히 끝이 나고 유족 측에서 준비한 간단한 도시락이 참석한 모든 추모분들께 전해졌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정자집사, 장남 이효준, 차남 이효진, 며느리 김소현, 전경아, 손자 이 승현, 이승민, 이승은, 이승빈 손녀 이나현이 있다.(편집실)
1263호 12면, 2022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