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국/Glasparadies>
“이거 검증된 이론이야! 근데 울 엄마는 한 술 더 뜬다. “부디 내가 키울 동안에는 얌전히 커라. 나중에 결혼해서 사춘기 오든가 말든가 니 짝이 알아서 하겠지. 지금은 일단 나 좀 살고 보자” 그러신다니까.“ – 친구 A 대사 중 –
“독일애들은 인종차별 같은 거 하지 않을까? 거기 가서 친구도 못 사귀면 어떡하지? 그럼 나 점심은 누구랑 먹지? 독일어 못한다고 놀리진 않을까?”- 하루의 대사 중-
한국의 중산층 가정인 하루네.
어느 날 엄마와 하루는 독일 행을 선택한다. 연극 속 하루는 그다지 독일에 가고 싶진 않지만 내심 또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도 있다. 하지만 막상 독일에 온 후 언어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힌다. 여전히 독일 친구들과의 관계도 해답이 없다. 결국 자신이 만들어 둔 벽 속에 들어가 일상의 삶을 회피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하루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일 때 장기들이 무대에 등장한다. 장기들은 하루의 몸 속과 내면에 존재하는 하루 자신이다. 즉, 하루가 투쟁적으로 싸워왔던 내면세계의 모습이다. 결국 죽어가는 스스로를 일으켜세우는 것은 자신일 뿐이다.
또한, 보이지 않는 존재지만 강렬한 아버지의 암묵적 메시지는 우리의 삶을 여전히 지탱해주는 철학과 가치관이다. 여전히 퇴색되지 말아야 할 순수한 철학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하루는 결국 사랑, 특히 가족의 사랑이 정체성을 만들고 자신을 이겨낼 에너지임을 조심스레 깨닫는다.
<한독문학공간>이 올 가을을 맞아 지난 11월 4일 베를린의 ‘Schwarze Villa’에서 ‘1318 당당프로젝트 한인청소년 연극 공연’을 올렸다.
박경란 작가의 희곡작품 <유리천국>을 통해, 현재 독일에 사는 한인 청소년들이 직접 무대에 섰다. 비단 공연행사에 국한되지 않고 연습과정에서 또래집단의 공감대 형성을 통한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또한 자기 이해 및 친구와의 관계 형성을 통해 대인관계능력을 습득했다. 집단의 상호작용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건강한 자아상을 향상하고, 회복탄력성을 증진시켜 심리적 성장을 돕는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지금 젊은 세대는 풍요의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 내재된 상대적 궁핍과 박탈감은 더 뿌리 깊은 상실감을 안긴다. 특히 자라나는 한인 십대 아이들의 정체성, 그리고 동기부여에 대한 독려와 어루만짐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제 독일 한인사회는 다음 세대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한독간의 문화 및 경제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정체성 교육 및 동기부여의 발판이 필요하다.
이번 청소년 당당프로젝트를 통해 독일에서 한인 십대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고, 연극 연습과정 속에서 같은 공감대를 가진 또래와의 만남을 통해 내면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유리천국>은 이 시대에 다소 고전적으로 보이는 가치철학인 가족 사랑이 결국 우리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돕는다.
이 작품에서 그리는 유리천국은, 천국처럼 보이지만 결국 깨어지기 쉬운 내면세계를 상징한다. 또한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수많은 선과 악, 그리고 보이지만 실체하지 않는 허상의 현실세계를 나타낸다. 이 연극을 통해 자신의 세계 안에 가둬 놓은 내면자아는 물론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과 사물들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할 시간을 관객 스스로 찾게 되길 바란다.
기사제공: 한독문학공간(KD Litkorea)
1290호 11면, 2022년 1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