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39)

제국의 도시, 슈파이어(Speyer)

고대 로마제국의 시작부터 지역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온 슈파이어는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바로 살리어가문(Salier Familie)의 힘이다.

신성로마 황제의 초대 가문인 오토(Otto)가의 하인리히 2세가 후손 없이 사망하자, 보름스(Worms)와 슈파이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살리어(Salier) 가문에서 신성로마황제가 배출되게 된다. 1024년 즉위한 콘라드 2세이다. 이후 슈파이어는 신성로마제국의 실질적인 수도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신성로마제국회의가 60차례 슈파이어에서 열렸고(Reichstage zu Speyer), 신-구교의 갈등이 첨예했던 1500년대에만도 5차례(1526, 1529, 1542, 1544, 1570)가 열릴 정도로 슈파이어는 중세시대 유럽의 중심도시로서 군림하였다.

1529년 회의에서는 루터파 제후들과 자유도시 대표들은 종교적 자유를 인정한 3년 전 약속을 지키라며, 약속 불이행에 대한 ‘항의 서한(protestation von Speyer)’을 들이밀었다. 루터파가 1529년 슈파이어제국회의에서 얻었던 별명인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항의하는 자)’는 시간이 흐르며 신교도 전체를 통칭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 슈파이어 도시의 상징, “슈파이어 대성당”

슈파이어 대성당(Speyerer Dom)은 살리어가문 최초의 황제인 콘라트 2세의 명령에 따라 1030년〜1106년에 창건되었다. 콘라드 2세는 이를 통해 슈파이어를 명실상부한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삼고자 하였으며, 본인을 포함 이후 황제들이 모두 이곳에 잠들기를 원했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폭 30m, 길이 133m에 이르며, 높이가 72m나 되고, 내부 중앙(nave)의 높이는 33m로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는 독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서쪽 입구보다는 동쪽 제단을 강조하여 강력해진 가톨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지하 제실은 천장 높이만 해도 7m에 달해, 지하 제실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마인츠(Mainz)와 보름스의 대성당과 함께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성당으로 꼽히고 있다.

슈파이어를 야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 중 하나가 하인리히 4세이다. 살리어가문 3번째 황제인 하인리히 4세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이른바 서임권 투쟁을 둘러싸고 격렬한 대립을 벌여, “카놋사의 굴욕(1077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한다. 1077년 1월 그 추운 날시에 카놋사로 가 3일 동안 추위에 떨며 용서를 구한 하인리히 4세의 출발지가 바로 슈파이어인 것이다. 그러나 끝내는 1084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을 축출하며 복수에 성공하게 된다.

이 하인리히 4세가 슈파이어대성당을 전면적으로 개축(1080~1106)하여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시켰다.

그러나 팔츠왕위계승전쟁(1688-1697)에서 프랑스 루이 14의 군대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고 만다. 1755년 슈파이어 대성당의 붕괴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동쪽부터 6번째 기둥만 남기고 파손된 서쪽은 철거해버리는 공사를 진행해야 할 정도이다.

이후 1772년부터 1778년까지 슈파이어대성당은 복원하게 되는데, 원형과 다르게 지어지게 된다. .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1세가 성당 내부에 성모 벽화를 그릴 것을 지시하였기 때문이다. 왕명에 따라 1846년부터 7년간 요하네스 슈라우돌프(Johann von Schraudolph)를 비롯한 나사렛 파 화가들이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이 벽화는 1957년 로마네스크 양식의 원형복원을 위해 떼어내어 황제실(Kaisersaal)에 옮겨 전시되고 있다.

1967년이 되어서야 슈파이어 대성당의 외부와 내부는 잘리어 왕조 때의 모습을 거의 되찾게 되었다.

슈파이어 대성당은 아헨성당과 비교하면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지어졌다. 아헨성당은 16각형 안에 8각형공간으로 이루어진 다소 복잡한 구성이다. 이에 반해 슈파이어 성당은 척도와 비례관계를 가진 정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평면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또한 슈파이어 대성당은 전체를 둘러싸는 회랑이 있는 최초의 구조물이다. 보수 작업 중에 추가한 회랑 체계 또한 건축 역사상 처음이었다.

흡사 성벽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대성당의 안쪽에는 황제의 동상이 양편에 놓여 있으며, 성당 내부는 일체의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채 엄숙함 그 자체로 방문자를 압도한다.

중앙 제단 아래 지하에는 역대 신성로마제국 황제 8명의 무덤이 있으며, 그 중에는 슈파이어 대성당의 건설을 명한 콘라트 2세(Konrad II), 대성당의 완공과 함께 봉헌을 명한 하인리히 4세(Heinrich VI)도 포함된다. 특히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와 왕족의 무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연유로 슈파이어 대성당은 통치자들의 안식처인 영국의 웨스터민스터 사원, 프랑스 파리의 생 드니 대성당과 비교되곤 한다.

다음 호부터 슈파이어 도시를 본격적으로 탐방해 보기로 한다.

1290호 14면, 2022년 1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