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경자 (프랑크푸르트)
21대 대통령 선거 재외동포투표가 시작한지 이틀이 지난 5월 22일 아침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그 몸으로 오늘 꼭 투표를 하려 총영사관에 갈꺼요?”
“그럼 엄마한테 주어진 마지막 권리를 행사 할 기회가 될지 모르는데…”라고 힘주어 말을 했으나 선 듯 용기가 나지 아니했다.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도 수술한 허리 부위가 아직도 간헐적으로 통증이 일어라고 거동이 자유롭지 못해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 별실 13층 투표장까지 무사히 갈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막상 아들한테 투표장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오늘아침 아들 전화를 받고 당연한 것 마냥 말을 했으나 편치 않은 몸으로 투표장에 무사히 다녀올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21대 대선 투표를 기권할 수가 없었다. 파독 간호사로 이 땅에 와서 5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궁지를 지닌 채 살아오면서 나한테 주어진 주권 행사는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일손을 놓고 바라던 연금 생활에 들어 편하게 여생을 보낼까 했는데 젊었을 때 너무 무리하니 건강을 돌보지 않고 살아 온 탓인지 나이 들어가면서 허리에 심한 통증이 말년을 괴롭혔다. 견디다 못해 전문병원을 찾았다. 척추 탈골로 인한 증상으로 철심을 꽂아 척추를 바로 잡은 대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무려 다섯 시간에 걸친 대 수술을 받고 2주 입원 후 퇴원. 집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때에 21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통증에 시달리며 몇 주간 집안에만 있다가 막상 투표장에 가려고 거울을 들여다보니 허옇게 빛바랜 머리와 꺼칠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척추 수술을 받은 환자답지 않게 모처럼 만의 외출을 위해 거울 앞에서 머리손질과 화장을 했다. 어쩌면 투표장에서 만날지 모르는 지인들한테 허리 수술한 환자티를 보이고 싶지 않아 오래도록 앉아서 단장을 했다.
떠나기 전에 진통제를 복용하였지만 자력으로 힘들게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연습을 해가며 마침 11시경 도착한 아들 차를 타고 총영사관을 향해 갔다.
초여름 화창한 날씨에 짙은 녹음이 우거진 가로수 길을 따라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투표장이 있는 총영사관 앞마당에 도착하니 오늘 상큼한 날씨만큼이나 입구에서부터 확 달라진 투표장 분위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종전 투표장은 건물 13층 총영사관 별실이었는데 이번 21대선 투표장은 아래층에 마련되어 에레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불편과 대기하는 지루함이 없어 아주 편리했다.

뿐만 아니라 투표장 분위기도 종전과는 달리 정당 참관인 또는 접수. 신원 확인 등 모든 분야에 젊고 생기발랄한 교포 3세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상냥하고 친절하니 안내를 하고 도움을 주어 종전과 다른 참신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그전 선거 투표장에는 정당별로 진보와 보수를 자처하는 동포사회의 원로와 지지자들이 자리에 앉아 분위기를 무겁게 했는데 이번 21대 대선 투표장에는 권위의식을 느끼지 않고 부담 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자를 위해 투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에 매우 좋았다.
한 달여 남짓 병상에 누워 지내다 오늘 대선 투표장에 투표를 핑계로 외출 내 권리를 행사한 것이 기뻐 인증샷 한 장을 남겼다.
내가 행사한 한 표가 내 조국 대한민국의 앞날을 이끌어 갈 유능한 대통령으로 출범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인생에 큰 보람으로 여기고 싶다.
나는 집에 돌아 와 오늘의 감회를 가슴에 묻어 두며 이 시 한편을 남긴다.
한 표의 무게, 인생의 무게
젊은 날, 조국을 떠나 독일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낯설고 차가운 언어 속에서, 환자들의 고통을 보듬으며
나는 간호사라는 이름 하나로 버텼습니다.
당시엔 삶이 무엇인지, 미래가 어떤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잠보다 귀한 건 책임이었고, 눈물보다 먼저였던 건 의무였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50년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허리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있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았습니다.
내 조국, 대한민국.
그 미래를 위한 작은 외침, 그것이 나의 한 표였습니다.
손에 쥔 투표용지는 마치 내 지난 세월 같았습니다.
주름지고, 아프고, 때론 잊혔던 시간들.
그러나 그 위에 꾹 눌러 찍은 도장은,
내가 살아왔다는 증거요,
내가 여전히 꿈꾸고 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젊은 날 무리했던 몸은 이제 말을 듣지 않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조국을 향합니다.
나는 파독 간호사,
그리고 오늘, 나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1413호 17면, 2025년 6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