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를 보며
언젠가 로마를 방문한 적이 있다면, 돌아온 후에 늘 기억에 남는 추억의 장면이 몇 장면 남을 듯하다. 긴 역사속의 현장과 빼어난 건축물들, 화려한 조각품들 등, 그러면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들 모든 것과 어우러진 물의 조형물, 바로 분수이다.
로마시내에는 크고 작은 분수가 여러 개 있는데 그중 불만한 것으로 으뜸으로 친다면 영화<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트레비 분수이다. 어깨 너머로 동전을 하나 던지면 다시 로마를 찾고 둘을 던지면 사랑을 찾고 셋을 던지면 그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속설 때문에 더욱 더 유명해진 분수, 그 낭만적인 멋 때문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그들이 사랑을 기원하며 던진 동전 덕분에 언제나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분수이다. 지난 호에 이어 로마분수의 여왕격인 트레비 분수를 찾아가보자.
골목마다 베어있는 바로크의 향기
계단과 분수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운 스페인 광장을 둘러본 후에 계단을 등지고 좌측의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비아 프로파간다(Via Propaganda)라고 하는 좁은 거리를 지나오면서 왼편에 예수회대학 건물을 보게 된다. 일명 콜레조 디 프로파간디 피테라고 불리는 이 건물은 16세기 말기에 종교개혁 이후에 손상된 가톨릭의 명예를 회복하고 종교적 재부흥을 위해 조직된 예수회의 본부 역할을 하는 건물이었다.
1662년경에 지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의 작품이기도 하다. 좁은 길목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정면을 직선이 아닌 타원형 곡선으로 은근히 패였다 다시 나오게 하는 수법과 얼핏 보면 단조로운 외형으로 보이지만 건물 전체에서 배어나오는 바로크적인 곡선의 맛은 여전히 보로미니의 작품임을 느끼게 한다. 붉은 색 회벽 칼라는 종교적인 엄숙함마저 배어 나온다.
건물 전면을 평면으로 처리하지 않고 볼록과 오목의 볼륨감을 더해 움푹 패였다 불룩했다 하는 변화를 주는 곡면처리 양식은 바로크 시대에 들어와 드물지 않게 선보이는데 그 첫 번째 사례는 20 여 년 전에 지은 교회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나(San Carlo alle Quattro Fontana)이다. 이 건물은 스페인 계단 위 프랑스 교회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로부터 비아 델레 콰트로(Via Delle Quattro Fontana) 거리로 10여 분 직진하면 비아 델 퀴리날레(Via Del Quirinale)와 교차하는 길모퉁이에 있다.
4거리 모퉁이마다 작은 분수가 있어 콰트로 폰타나(4개의 분수)거리라고 명명된 교차로 한쪽 면에 자리한 이 건물은 전면과 내부에 대담하고 유연한 곡선을 사용했다. 1층은 과감한 오목과 볼록, 그리고 다시 오목으로 이루어 졌고 2층은 오목한 면만 3회 연속 연결되어 크지 않은 건물에 역동적인 인상을 만들어 준다. 역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의 작품이다. 바로크시대의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되어 건축사에서 자주 언급되고 웬만한 미술관련 서적에도 반드시 나오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계속해서 남쪽으로 난 길을 걸어 내려오면 바로크시대의 교회 산 안드레아 델라 플랏데를 좌측에 면하게 되고 조금 더 지나면 제법 넓은 길(4차선)인 비아 델 트리토네 거리를 만난다,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an Rorenzzo Bernini, 1598-1680)가 만들어 유명한 트리토네 분수가 있는 바르베리니 광장이 이 거리의 시작이다. 이 4차선 거리를 건넌 후 마주하는 골목으로 접어들어 2분쯤 걸어들어가면 갑자기 펼쳐지는 물의 광장과 마주치는데 바로 이곳이 조각이 화려하고 물줄기가 시원한 트레비 분수이다.
중앙에 우뚝 선 바다의 신 포세이돈
르네상스시대 건축된 폴리궁전의 측면에 만들어진 이 분수는 역동적인 조각과 어우러지며 거대한 물줄기가 조그만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중앙에 우뚝 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조개껍데기 전차 위에서 근육의 뒤틀림이 보이는 자세로 한 발 내디디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전면 좌우에는 두 아들인 트리톤이 각각 말 한 마리씩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 오른쪽 말은 앞으로 전진 하고 있지만 왼쪽 말은 힘차게 앞발을 들고 몸부림치고 있어 더욱 역동적이다.
또 팔라초 폴리(폴리 궁 )벽을 배경으로 하여 중앙에 자리 잡은 조각들 때문에 좌우 대칭인 르네상스 구도인 것 같지만 좌우에 파격적인 변화를 조각의 자세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좌우 불균형을 통하여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을 잘 관찰해 보면 분수를 처음 보는 이들도 바로 이 분수가 바로크 시대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의 다른 분수에 비하면 조금 늦은 시기인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다, 이미 백여 년 전부터 새로 유행하는 바로크 양식의 흐름을 따라 수많은 건축물과 광장들이 화려하게 조성되었고 분수들이 만들어 졌지만 결국 가장 화려하고 장엄하게 만들어진 분수는 로마 바로크 최후에 만들어진 이 트레비 분수이다. 다음 호에는 트레비 분수의 유래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사진 1) 예수회 대학 건물: 스페인 광장에서 트레비 분수로 가는 길(비아 프로파간다)에서볼 수 있는 예수회 대학 건물(콜레조 디 프로파간다 피테),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의 작품으로 1662년경 건축됨
사진 2)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나(San Carlo alle Quattro Fontane) 교회 : 아래층과 윗층이 서로 다른 굴곡으로 이루어져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장엄하고 역동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준다.
사진 3)트레비 분수의 45도 측면 : 르네상스시대의 건축물 폴리궁의 측면 벽을 배경으로 장엄하게 조각군을 형성해 대단히 화려하게 보인다. 중앙에 포세이돈상이 우뚝 서 있고 그 양 측면이 그의 아들들 트리톤이다. 말들의 움직임이 사실적이면서 다양해 바로크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20년 3월 27일, 1164호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