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광장들(6)

제국의 수도는 부터 수도의 도시

원래 로마의 분수는 이미 로마 제국시절부터 도시의 물 공급을 위해 갖추어져 있었다. 고대 로마사 학자들은 세계의 경이로운 것들 중의 하나로 로마제국의 상수도를 꼽고 있다. 한창때 도시 인구가 150만까지 도달했던 로마제국은 원활한 물 공급을 도시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했다. 그로 인해 건설된 14개의 고가 수로는 도시 곳곳에 물을 공급했고 로마는 시내에 여러 개의 분수들을 설치하게 되었다.

이 분수들은 1000년 동안 방치되다가 15세기 말 교황 니콜라우스 5세 시절에 복원되기 시작했다. 또 바로크 시대 교황들은 고대 로마 제국의 상수도를 수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수로를 개발하여 물의 공급을 더욱 더 원활하게 했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들어와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로마 최대의 분수 설계를 공모했는데 니콜라 실비(Nicola Silvi)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1732년 착공되었지만 건축가의 사망과 재정난으로 완공된 것은 30년 후인 1762년, 교황 클레멘스 13세 시절이다. 바로 트레비 분수다. 로마에 새로운 명물이 탄생한 것이다.

분수의 여왕 트레비

트레비 분수에 공급되는 물은 로마에서 20킬로미터에서 떨어진 곳에서 운반된다. 운반 방법은 자연낙차를 이용한 로마 특유의 고가 수로이다. 아직도 지중해 연안 로마제국이었던 지역, 예를 들면 남프랑스의 님, 또는 스페인의 세고비아, 또는 그리스 등등, 세계 곳곳에 남아있어 때로는 1층은 보행을 위한 다리 역할도 하면서 2층위로 물을 공급하면서 지금도 사용되는 사례가 남아있다. 현재 남아있는 것들은 높은 아치와 함께 주변 경관과 함께 어우러져 역사속의 문화유산으로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트레비 분수에 공급되는 물은 일명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는 곳이 발원지인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로마 병사 앞에 나타난 한 처녀가 가르쳐 주었다는 샘이다. 로마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전해지는 이 물은 수량도 많고 수질도 좋아 트레비 분수에 도달했을 때는 충분히 넓고 시원스러운 폭포를 만들어 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 집정관 아그리파에 의해 건설된 고가수로를 통해 공급된 것이다.

트레비 분수의 명칭은 샘을 가르쳐 준 처녀 트레비아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분수 중앙의 포세이돈 상 옆에 서 있는 여인상이다. 분수 주변에는 분수에 동전을 뒤로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설을 믿는 사람들 때문에, 또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의 트레비 분수 장면을 잊지 못하는 관광객들 때문에 언제나 많은 인파로 북적된다. 그리고 로마를 다시 방문하기를 기원하는 많은 관광객들은 지금도 분수에 등을 돌리고 동전을 던진다. 이 때문에 분수 주변에는 매일 즐거운 광경들이 연출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분수 바닥에는 언제나 세계 각국의 동전(현재는 주로 유로화)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트레비 분수를 볼 때마다 생기는 의문사항이 있다. 매일 쌓이는 동전이 적은 돈이 아닌데 이렇게 모인 동전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누군가에 의해서 쓰여지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으로 조금 알아보았다.

분수 주변에서 낭만적인 추억은 옛일

트레비 분수에 모이는 동전은 제법 모이면 정기적으로 로마시 당국에서 자선 단체에 보낸다한다. 하지만 그 많은 동전들이 전부 자선 단체에만 보내질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의문시 하던 터에 트레비 분수에 모인 돈에 관한 뉴스가 터져 나와 눈길을 끌었다.

많은 관광객들의 꿈과는 달리 실제로 동전은 엉뚱한 용도로 흘러나가는 것 같다.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로마 시 당국은 한 달간 잃어버리는 자선 금액이 1만2천 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한다. 또 최근에 이 분수에서 주운 동전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한 노숙자가 자신의 수입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다가 시 경찰에 절도혐의로 체포된 사건도 있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로베르토 체르첼레타라는 노숙자는 일주일 중 6일 동안 매일 600유로를 주워 담아 왔으며 가톨릭 자선단체인 카리타스 회원들이 분수대에 던져진 동전을 수거하는 월요일에만 일을 쉬었다고 한다. 그러나 체르첼레타는 체포되기 전 일간지<코리에르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은 신문 보도와는 달리 하루에 2백유로 정도의 동전만 건지고 또 혼자 챙긴 것이 아니라 다른 두 명의 실업자들과 이 돈을 나눠 갖는다고 주장했다.

시 당국은 최근 들어 분수에 던져지는 동전들을 매일 직접 수거하기 시작했다. 또 최근 로마 시 당국은 1960년대 고전 영화인 <라 돌체 비타(아름다운 인생)>에서의 여배우 아나타 에크버그처럼 분수대에서 물 튀기는 장면을 재연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 조례에 따르면 앞으로 공공장소인 트레비 분수대에서 수영하는 이들에게는 최대 5백유로의 벌금이 부과되며 이밖에 방문객이 적은 다른 시내의 분수대에서는 최대1백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분수 주변에서 낭만적인 추억은 옛일이 되었다. 1994년 이탈리아 고등법원은 분수대 속의 동전을 건져 올리는 것은 그 속에 동전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혀 법적인 문제가 없으며 다만 분수대 속으로 뛰어 드는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새로운 수영 금지 조례는 이 1994년 판결에 근거한 것이며 노숙자의 행위가 위법이 된 것은 관광객들이 트레비 분수에 동전 던지기를 멈추게 만든 점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때 처녀의 샘에서 끌어오는 분수의 물은 로마에서 가장 부드럽고 맛있다고 알려져 있어 수세기 동안 바티칸 궁으로 실어 나를 정도였으며 로마에 살고 있는 영국인 차 제조업자들은 단지에 담아 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1916년 분수에서 나오는 물은 음료수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정되었고 오늘날은 전기 펌프에 의해 순환되고 있다. 여행에 지친 몸으로 분수 주변에서 쉬면서 말과 함께 목을 축이던 시원한 물은 더 이상 바랄 수 없다. 이제는 단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 할 뿐이다.

그림 1) 바다의 신 포세이돈 상. 한발을 내밀면서 상체를 트는 모습이 대단히 사실적이면서도 역동적이다. 트레비 분수는 설계는 니콜라 실비가 했지만 도중에 사망해 마무리와 조각은 그의 후배 부랏치가 만들었다.

그림 2) 트리토네의 길(비아 델 트리토네)를 건너 마주한 골목으로 들어가 트레비 분수를 마주칠 때의 첫 장면.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의 작품으로 1662년 건축됨.

그림 3) 트레비 교회: 트레비 분수의 건너편 바로크건축물

2020년 4월 3일, 1165호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