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1)
새해의 시작은 언제인가?

태양력을 쓰고 있는 우리들에게 1월 1일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날은 12월 25일인데 이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 새해가 시작된다. 원래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날을 1월 1일로 잘못 알았기 때문에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맨 처음 서양의 달력에서는 새해의 시작을 예수님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하고자 한 것이다.

태양력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1년을 정하고 이를 다시 12개로 나눈 달력이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르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를 잘 나타내 주지만 각 월의 날짜가 실제 달의 모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태양력에서의 달(영어로는 month)는 사실상 실제 달(moon)의 움직임이나 모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념이다. 단순히 1년이라는 기간을 12개로 나누어서 날짜를 볼 뿐이다.

당초에는 1년이 10개의 월(month)이 있었으나 로마의 시저와 아우구스투스황제가 각각 자기의 월(7월과 8월)을 추가하면서 지금의 12개로 확정된 것이다. 계절의 움직임을 잘 나타내 주는 태양력은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수렵민족, 계절에 따라 곡물을 기르고 수확하는 사람에게 아주 편리하다.

반면 달은 대략 30일마다 그 모양이 바뀌는데 이를 기초로 달력을 만들면 그 날짜와 달의 모양은 정확히 일치한다. 그것이 바로 태음력이다. 달의 움직임에 따라 조수 간만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태음력은 고기를 잡는 어부에게 아주 유용하다. 또한 보름달이 뜨는 날은 밤에도 환하기 때문에 밤에 일하려는 사람에게도 태음력이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달의 모양은 계절의 변화와 관계가 없어서 태음력은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별 쓸모가 없다.

태양이 부활하는 날, 동지(冬至) – 1221

그러면 1년중에서 어느 날을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 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이에는 여러 가지 후보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낮의 길이가 가장 작은 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동지(冬至)가 바로 그날인데 통상 12월 21일이다.

이날은 일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날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태양이 소생하는 날인 것이다. 따라서 낮 시간의 변화로 본다면 가장 타당한 일년의 시작은 동지일 것이다.

예수가 때어난 날인 12월 25일은 우연인지는 몰라도 동지인 12월 21과 비슷한 날인데 이 역시 동지부터 해가 길어지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일도 이에 맞추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성경의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정확한 생일날을 알려주고 있지 않다고 한다. 또한 지금의 1월 1일도 동지로부터 10일이 지난 다음의 날인데 이 역시 새해의 시작을 태양이 소생하는 날과 연관지어 하고자 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다.

가장 추운 날, 대한(大寒) – 121

동지부터 비록 낮의 길이가 점차로 길어지지만 추위는 동지 이후에도 계속된다. 동지가 가장 추운 것이 아니라 적어도 동지 이후 한달 동안은 더 춥기 때문에 새해를 동지로 하더라도 추위는 한동안 계속된다는 단점이 있다. 가장 추운 겨울날은 동지 이후 한달 정도가 지난 1월 중순이나 하순이 된다. 여름에도 하지(6.22일) 때가 가장 더운 것이 아니라 하지 이후 한달이 지난 7월말이나 8월초가 가장 더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가장 추운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하려고 한다면 1월 하순경, 절기상으로는 대한(1.21일)을 새해의 시작으로 생각해 볼만 하다. 그날부터는 비록 겨울이지만 추위의 최저점에서 점차 벗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봄이 오는 길목, 입춘(立春) – 25

또 다른 후보로는 동지(冬至)와 춘분(春分)의 중간 시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4절기 상으로는 입춘(立春)이 그것이다. 현재 달력의 날짜로는 2월 5일 경인데 아직 겨울이지만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어느 정도 가시고 날씨가 점차 풀리는 시기이다. 따라서 새해의 시작으로 아주 좋은 후보가 될 수 있다.

태음력에서는 이러한 춘분의 시기에 음력설이 위치해 있다. 물론 음력설은 달의 모양에 따라 매년 변하기 때문에 양력으로 특정일로 확정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2월 5일과 가까운 시기중 달의 모양이 없는 날이 바로 음력설 날짜가 된다. 태음력에서 이날을 1월 1일로 정한 것은 매서운 추위가 가시고 봄의 기운이 처음 오는 시기를 새해의 시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력에서는 새해의 기점을 양력보다 1달 정도 늦게 잡은 것이다.

결국 태양력에서는 동지에서 10일 정도 지난 날을 일년의 시작으로 삼은 반면 태음력에서는 이보다 훨씬 나중인 입춘의 시기를 새해의 시작으로 삼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음력설을 생각한다면 양력에서도 새해의 시작을 지금의 1월 1일이 아닌 의 2월 5일 정도로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새해의 시작을 2월 5일로 정한다고 하더라도 매년 2월 5일에 달의 모양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태양력이나 24절기는 달의 모양과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2월 5일을 새해의 기점으로 한다면 양력설과 음력설도 매년 비슷한 시기가 될 것이다.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지는 날, 춘분(春分) – 321

또 다른 새해 시작의 후보로는 춘분(春分)을 생각할 수 있다. 춘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며 현재 달력으로는 3월 21일쯤이 된다. 이날부터는 바야흐로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지므로 그야말로 밤을 이기고 낮이 우세한 시기가 도래한다. 날씨도 본격적인 봄이 오는 때이다. 따라서 계절의 변화 측면에서 볼 때 새해의 시작으로 춘분을 1월 1일로 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하겠다.

서양에서는 춘분과 비슷한 시기에 부활절이라는 축제가 자리해 있다. 사실 예수의 부활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유럽에서도 춘분 무렵은 축제일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고대부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에는 만물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날을 새로운 생명과 성장을 가져다 주는 이쉬타 신(Ishtar, 생산과 생식의 신)의 날로 정하고 축복하였던 것이다. 부활절을 의미하는 이스터(Easter)라는 단어도 이쉬타(Ishtar)라는 신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춘분을 맞이하는 전통과 기독교에서의 예수 부활이 결합되어 부활절이 정착된 것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본다면 새해의 시작점으로서의 지금의 1월 1일이야 말로 별로 의미가 없는 날이라고 하겠다. 태양의 움직임으로는 동지가, 봄의 도래로는 입춘이 마땅히 새해의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바꾸는 것은 너무나 많은 혼란과 비용을 야기할 것이므로 실현가능하지 않을 것 싶다. 새해 시작점을 바꾸게 되면 과거 역사적 사실까지 모두 혼란스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실)

2020년 6월 12일, 1174호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