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모습의 합창단

함께 노래하기

독일의 전통적인 남성 합창단들은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매우 오래된 느낌을 준다. 요즘에는 이러한 합창단들 대신 ‘무리 지어 노래하기’와 같이 자유롭게 함께 노래하는 형태의 모임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어떤 모양으로든 노래하기에 대한 독일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하다.

노래는 공동체를 형성시켜줄 뿐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건강에 유익하다. 호흡과 대장 활동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심장박동과 혈압을 조정시키고 혈액 내 산소량과 혈액 순환을 활성화시킨다. 신체적 측면 외에 심리적 측면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가령 집중력과 자기 회복력, 사교성을 향상시킬 수 있고, 분노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긴장을 완화시키고 심리적 여유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호흡 조절과 관련이 깊은데, 건강한 호흡 조절은 신체적 심리적 균형을 맞춰주며, 이는 또다시 활력을 강화시켜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래하기는 정체성을 강화시켜주는 활동으로서 혼자서이든 함께이든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합창단과 전통

‘무리 지어 노래하기’와 같이 즐거움으로 가득 찬 자유로운 분위기의 노래하기는 독일의 전통적인 합창단과 거리가 매우 멀다. 19세기 국가주의가 자리를 잡으면서 남성을 중심으로 창설되었던 리더타펠(Liedertafel)을 비롯한 합창 단체들을 보면 매우 예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전통적인 노래들을 지키려는 고전적 남성 합창단들은 신진 대원들을 양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합창단 협회(Deutscher Chorverband)의 니콜 아이징거는 특히 지방에서 이러한 어려움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독일 합창단 협회에는 6만 개에 달하는 전국의 합창단 중 2만1천 개의 합창단이 소속되어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독일 합창단계에는 활력이 넘친다. 가톨릭 어린이 청소년 합창단 연합 푸에리 깐토레스(Pueri Cantores)의 프리데리케 달만 대표는 어린이 청소년 합창단들이 지난 몇 년 동안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한다. 십 여년 전까지만 해도 300개밖에 되지 않았던 어린이 청소년 합창단의 수가 최근 450개로 증가했고, 합창단원들도 총 1만9천 명으로 늘어났다. 독일 개신교 합창단 협회(Chorverband der Eve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d)의 상황도 비슷하다. 종교적, 비종교적 단체를 포함한 28개의 독일 합창단 협회들은 2015/16년도의 합창단원수가 총 215만6천 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출처: statistica.com).

인기의 원인은?

이와 같은 인기의 원인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아마도 청소년들에게는 TV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2002년부터 방송된 “‘독일 슈퍼스타 찾기(Deutschland sucht den Superstar)’와 그 뒤를 따른 ‘보이스 오브 저머니(The Voice of Germany)’, ‘보이스 키즈(Voice Kids)’ 와 같은 가창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청소년들을 무대로 유혹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에 관한 정확한 통계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열정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젊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는 합창단 협회들의 적극적인 노력도 노래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열정이 사그라지지 않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어쩌면 합창이라는 활동이 옛 이미지, 즉 과도한 독일주의와 낡은 시대착오적 인상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난 덕일지도 모른다.

‘무리 지어 노래하기’라는 형태를 모범으로 삼아 함께 노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조직한 베를린의 음악교육학자 미하엘 베츠너-브란트는 이제 가장 큰 나치 트라우마가 극복되었다고 본다. 웅장한 가창을 장려하고 노래를 선전에 악용했던 나치로 인해, 독일에서는 오랫동안 모든 노래와 가창 형태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사실은 노래나 가창 형태들 자체가 나치 활동과 깊이 연관되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디지털 시대에 유혹거리가 넘쳐 나지만, 함께 노래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노래 모임 활동에 관심을 갖는다. 디지털화로 인하여 합창에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합창 플래시몹들은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플랫폼 상에서 아날로그 시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새로운 형식, 새로운 미디어

독일 음악 위원회(Deutscher Musikrat)와 독일 음악정보센터(Deutscher Musikinformationszentrum)는 2014년 ‘아마추어 음악활동’ 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공동 연구에서 “합창의 인기는 21세기에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합창단들은 개인주의의 추세를 따라가면서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다. 재즈 합창단이나 가스펠 합창단과 같이 다양한 장르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있는 합창단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가스펠 합창단의 수가 독일 전국적으로 3천 개, 단원수가 10만명에 달한다. 동성애자 합창단들도 있는데, 이들은 노래 레퍼토리에 자신들의 성 정체성을 풍자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또 실력과 뛰어난 예술성에 가치를 두는 합창단들도 있는데, 남부바이에른 지방의 리더타펠에서 유래한 노이보이에른(Neubeuern) 합창단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합창단은 지휘자 에노흐 추 구텐베르크의 지도 하에 뉴욕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편안하게 함께 노래할 수 있는 형태의 모임들이다. 플래시몹들이나 ‘무리 지어 노래하기’와 같은 모임들 외에도 ‘싱 드 라 싱(Sing de la sing)’이나 ‘노래 못하는 합창단(Ich-kann-nicht-singen-Chor)’과 같은 술집 합창단들도 있다.

여기에서는 프로 및 준프로 합창단들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동질성, 완벽성, 경쟁에 대한 압박이 전혀 없다. 이곳에서는 함께하는 것에 의미를 두며 노래를 부르는 재미와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의무적인 연습 일정이나 복잡한 협회 규정 없이 주로 인터넷을 통해 즉흥적으로 약속을 잡는다. 이러한 모임은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이동이 잦은 현대 사회에 딱 맞는다.

이러한 합창 모임에서는 청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를 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느끼고,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과 만나는 것이기에, 이들은 악보나 정해진 파트 없이 마치 ‘대형 노래방’에서 노래하듯 모두가 함께 노래한다.

1187호 32면, 2020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