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회화 ⑦
이전 연재에서 살펴본 것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로 분류되는 화가들은 이전의 관습화된 화풍을 버리고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는데 집중했다. 19세기가 끝나고 20세기가 되자, 이러한 새로움을 시도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피카소, 뒤샹 등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서 계속 확대, 발전되었고, 그 결과 유럽 현대 회화(모더니즘 회화)의 전성기를 만들게 된다.
특히 후기 인상주의는 이후 20세기 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표현주의란 인간의 내면의 감정과 감각의 표현과 구성에 주목하는 경향으로. 사실상 후기 인상주의, 추상주의, 상징주의, 입체파 등 20세기 전반의 회화 사조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20세기 이후의 회화 사조를 발생시대 순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다다이즘(Dadaism)
다다이즘은 1차 대전 중부터 전후에 걸쳐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에서 일어난 문학, 조형 예술/미술상의 반항운동이다. 제1차 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 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하고,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려는 것이 이 운동의 근본정신이었다.
‘다다’라는 말은 아이들의 장난감 목마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임의적인 선택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기존의 예술형식을 파괴하고 우연성을 개입시킴으로써 자율적인 발상과 오브제/미술, 꼴라쥬/미술등의 자유로운 표현양식, 그리고 풍자적 표현에 영향을 주었다. 그 회의적이고 조소적인 태도는 1917년 창간된 기관지 <다다(Dada)>를 통하여 국제적 운동으로 확대되었고 주지의 운동이 합류하여 1918년 <다다선언>을 하고 그 파괴적 운동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다다이즘 탄생 배경
산업혁명이후 급속히 변화한 물질과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합리적이라 여겨졌던 문명이 1차대전을 야기하게 되자 물질문명의 결과로서 노출된 인간이 자기 위치에 회의를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이 예술로 표현되게 되었다.
다다이즘 예술가들의 시작은 스위스 취리히에서부터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중립국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스위스는 주변 국가 프랑스, 독일 등과는 달리 반정부주의적 예술가들을 향한 박해가 적었던 곳이였기 때문에, 자연히 다다이즘의 중심지는 스위스가 되었다.
후고 발, 에미 헤닝스, 트리스탕 차라, 마르셀 얀코, 장 아르프, 리하르트 휠젠베크 등의 나이 어린 예술가들이 활동하였다.
다다라는 단어는 휴고 발(Hugo Ball)이 <카바레 볼테르>라는 제목으로 취리히에서 발간하던 “문학 및 예술에 관한 글 모음”에 1916년 5월 처음으로 인쇄되어 발표되었다. 1917년 3월에는 다다 화랑이 취리히에 문을 열었다. 짜라(Trisstan Tzara)는 다다운동 진행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18년에 <다다 선언문Manifeste Dada 1918 >을 발표함으로써 그 이론적 배경을 제시했으며, 1919년 파리로 이주한 이후로는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무대에서 다다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이 선언문에서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으로 결합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이후 대다수의 다다이즘 예술가들은 거리에서 자신들의 미술과 창작을 보여주는 등의 일명 ‘거리 예술’이라는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다다이즘의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우선 다다이즘은 1917년 베를린으로 이사 간 리하르트 휠젠베크에 의하여 패전 이후의 독일 베를린으로 퍼졌다. 그는 1918년 ‘다다의 밤’이라는 행사에서 《다다 선언 1918》을 읽기도 하였다. 쾰른에서는 1920년 다다 전시회가 열렸다.
다다이즘의 특징
다다는 아주 다양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오로지 모더니즘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것과 미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기존관념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다는 것이다. 즉 미술작품이 성립되는 것은 형태, 재료, 내용, 범주, 기술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술가가 그것을 미술이라고 간주한다는 사실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다다이즘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하여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 세계대전이 가져온 상처는 합리적 이성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다다는 재래의 전통을 부정하고, 비합리주의적 사고를 내세우며, 일종의 허무의식과 이어지는 무의미의 예술을 추구한다.
다다이스트들은 작품의 영구불변하고 기념비적인 특성보다는 작품이 대중들과 만나면서 생기는 교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즉흥적이고 일회적인 성격이 강한 퍼포먼스나 이벤트를 자주 행하였다.
오늘날에는 그것이 무체계·무절제·무의미의 예술이라는 평가와 함께, 한 시대의 암울한 회의주의, 인간의 정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역설적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이루어진다. 다다이즘은 예술사조상으로는 사실주의 내지 자연주의 정신에 대한 반박적 입장을 보여주고, 그 운동이 퇴조하면서 뒤로는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문예사적 맥락을 형성한다. 다다이즘이 초현실주의로 바뀌는 시점은 1922년이다.
다음 회에서는 초현실주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지난 해 6월부터 시작된 연재 “이달의 전시”는 코로나 19로 인한 미술관과 박물관 폐쇄가 해제되는 시기까지 잠정 중단합니다.
교포신문사는 “이달의 전시” 연재와 연관하여, 미술관 관람이 허용되는 시점까지, “유럽의 미술사, 회화 중심으로 살펴보기”를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미술관의 작품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1223호 28면, 2021년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