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의 정수 판소리(3)
클래식에 취미가 없는 사람들에게 서양의 오페라는 바로 듣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쉬운 상대는 아니다. 우리의 판소리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서양의 오페라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쩌다 들어 본 판소리에 마음이 실리고 절로 흥이 나는 경험을 한번씩은 해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에 녹아있는 전통이 갖는 힘이다.
판소리다섯마당(2)
수궁가
판소리 <수궁가>는, 병이 든 용왕이 토끼 간이 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더러 토끼를 꾀어 용궁에 데려오게 하나, 토끼는 꾀를 내어 용왕을 속이고 세상으로 살아나간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으로, ‘토끼타령’, ‘별주부타령’, ‘토별가’ 따위로 불리기도 한다. <수궁가>의 사설이 소설로 바뀐 것은‘토생전’, ‘토끼전’, ‘별주부전’, ‘토공사’, ‘토별산수록’ 따위로 불린다.
<수궁가>의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면, 인도의 옛 불교 경전에 나오는‘원숭이와 악어’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인데, 중국의 옛 불교 경전에도 나오며 우리나라 <삼국사기>에도 보이는‘자라와 잔나비’ 이야기를 거쳐서, 조선 왕조 때에 와서는‘자라와 토끼’ 이야기로 바뀌어 판소리로 짜인 것이라고 한다.
송만재가 적은 글인 “관우희“에 <수궁가>가 판소리로 불리었고,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고 적혀 있다.
<수궁가>는 역대의 명창들 가운데서도 순조 때의 신만엽, 염계달, 철종 때의 송우룡, 김거복, 김수영, 고종 때의 김찬업, 유성준, 일본 제국주의 때의 임방울, 김연수와 같은 명창들이 잘 불렀다고 한다.
조선 왕조 때에는 전라도 동편 소리에나 전라도 서편 소리에나 경기도와 충청도 소리에도 두루 <수궁가>가 많이 불렸으나,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 전해지던 중고제 <수궁가>는 일본 제국주의 때에 김창룡을 끝으로 전승이 끊어졌고, 철종 때의 명창인 정창업에서 고종 때의 명창인 김창환을 거쳐 김봉학으로 내려오던 서편제 <수궁가>도 전승이 끊어졌다. 동편제 <수궁가>는 순조 때의 명창인 송흥록과 송광록에서, 철종 때의 명창인 송우룡을 거쳐, 한편으로는 고종 때의 명창인 유성준에게 전승되어 지금 정광수, 박초월이 부르고 있고, 한편으로는 송우룡의 제자로서 고종 때의 명창이던 송만갑을 거쳐 그 제자 박봉래에 이어지던 <수궁가>는 지금 박봉술이 부르고 있다.
흥보가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의 하나로, ‘박타령’이라고 도 불린다. 가난하지만 착한 아우 흥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 주었더니, 그 제비가 물어 온 박씨를 심었다가 얻은 박을 타서 보물을 얻어 부자가 되고, 부자이나 심술궂은 형 놀보는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서 고쳐 주고 얻은 박씨를 심었다가, 박 속에서 나온 상전, 놀이패, 장수 따위에게 혼이 난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흥보와 놀보 형제를 등장시켜 엮어 나가는 이 이야기 속에는 서민다운 재담이 가득 담겨있고, 또 놀보가 탄 박통 속에서 나온 놀이패들이 벌이는 재잠도 들어 있어서,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가장 민속성이 강한 마당으로 꼽힌다.
<흥보가>를 재담소리라고 하여 한편으로 제쳐 놓던 가객들도 있었던 점으로 봐서도 <흥보가>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와는 달리,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 <배비장타 령>, <옹고집타령>과 같이 민중의 해학이 가득 담긴 판소리로 꼽힌다고 하겠다.
판소리 <흥보가>의 내용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순조 때의 문인 송만재가 쓴 “관우회”라는 글이다. 그 속에는 <흥보가>를 포함한 판소리 열두 마당의 내용이 짧게 소개되어 있다. 조선 왕조의 영조 때에서 헌종 때에 걸친 시대의 명창인 권삼득이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하니, “관우회”가 쓰인 순조 무렵에는 <흥보가>가 꽤 널리 불렸을 것이다.
권삼득의 뒤를 이어 많은 명창들이 <흥보가>를 불러 <흥보가>는 훌륭한 판소리로 발전했던 것 같다. 권삼득은 특히 놀보가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 설렁제 대목을 더늠(옛날 명창들이 특징있는 가락으로 짜서 장기 삼아 부르던 판소리 대목)으로 내어 놓아서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 순조 때의 명창인 염계달도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한다. 헌종 때에 전라도 장흥 사람인 명창 문석준도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하는데, 특히 흥보가 궤에서 돈과 쌀을 매우 빠르게 떨어 내는 대목을 소리로 짠 것으로 유명하며, 그 대목은 그의 더늠으로 오늘날까지 전재하고 있다.
그밖에도 헌종 때의 경기도 수원 명창인 한송학, 철종 때의 전라도 함평 명창인 정창업, 충청도 한산 명창인 정흥순과 최상준이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한다.
지금 전해지는 <흥보가>에는 송홍록에게서 송광록과 송우룡을 차례로 거쳐 송만갑에게 이어지는 동편제 <흥보가>와, 정창업에게서 김창환에게 이어지는 서편제 <흥보가>가 있으며,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전해지던 중고제 <흥보가>는 전승이 끊어졌다.
<흥보가>는 내용으로 보아, 첫째로, 초앞에서 흥보가 쫓겨나가는 데까지, 둘째로, 흥보가 매품 파는 데에서 놀보에게 매 맞는 데까지, 세째로, 도사 중이 흥보 집터 잡는 데에서 제비 노정기까지, 네째로, 흥보 박 타는 데에서 부자가 되어 잘사는 데까지, 다섯째로, 놀보가 흥보 집 찾아가는 데에서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 데까지, 여섯째로, 놀보가 박 타는 데에서 뒤풀이까지로 가를 수 있다.
<흥보가>에서 유명한 소리 대목은 놀보 심술, 돈타령, 흥보가 매 맞는 대목, 중타령, 중이 집터 잡는 대목, 제비 날아드는 대목(사설에 따라 “겨울 ‘동’자, 갈 ‘거’자…”라고도 불린다), 제비 노정기, 박타령, 비단타령, 화초장타령,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 따위를 들 수 있다.
1252호 23면, 2022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