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83)

미술관 밖의 미술, 공공미술 (5)


길을 가다 무심코 지나치는 구조물들, 최근 지은 빌딩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이나 조각들, 지하철역이나 골목길 등에서 우리 눈을 밝게 해주는 벽화들과 같이 오늘날 도시는 시민들에게 휴식공간과 심적 풍요로움을 선사하고 있다.
이렇듯 미술관이 아니라 우리 주변 공공 장소에서 만나는 미술작품들이 바로 공공미술(Kunst im Öffentlichen Raum)이다.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에서는 ‘공공미술’을 주제로 공공미술이 무엇이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또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특징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와 함께 유럽 3대 미술 축제로 손꼽히는 권위 있는 현대 조각 전시회이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약 네 달간 뮌스터시 전역의 다양한 야외 공간과 공공 공간에 작품이 설치되며, 방문객은 작품을 찾아다니면서 자연스레 이를 둘러싼 도시를 함께 구경한다.

현지에서(In situ) 이뤄지는 작품의 제안과 구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기획 과정에서 전시 주제를 설정한 뒤 작품 아이디어를 공모하지 않는다. 대신 적절한 작가를 선정하고 초청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이 행사는 단순히 작가가 이미 만든 ‘완성품’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아니라 예술과 공공장소, 도시환경의 관계를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미학적, 도시공학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질문하며, 그 과정을 작품으로 실현하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시에 초대받은 작가들은 직접 뮌스터를 방문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작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그에 적절한 장소를 찾아낸다. 이때 작가들은 뮌스터라는 도시의 역사성, 장소성, 지형에 대한 연구하며, 도시 특성과 동시대의 이슈를 함께 반영하는 작업을 고안한다. 장

소가 정해지면 작가는 그곳에 맞게 작품을 디자인하고, 모델이나 스케치를 만들어 최종 작품 계획안을 제출하는데, 이 아이디어 중에는 실제로 제작되어 설치되는 것들이 있는 반면에 때로는 비용이나 기술적인 문제로 수정되거나 아예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와 기획자 간 장시간의 의견 교환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를 통해 그들은 현대 공공미술의 의미와 형식을 심도 있고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게된다.

관의 적극적인 협조

공공미술 작품 구현을 위해서는 비용과 공간 사용 허가 등의 사안을 두고 여러 주체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어떤 작품이 특정 개인의 사유지에 설치되어야 한다거나, 전시 기간 내내 특수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작가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주최하는 LWL미술관과 디렉터팀을 주축으로 뮌스터시, 베스트팔렌주, 독일연방문화재단은 물론 여러 기업과 기관, 일반 시민들은 긴밀하고도 지난한 의사소통 과정을 수행한다. 끊임없는 설득과 협의의 과정을 거치는 한편, 이 전시가 도시 및 기업마케팅의 수단으로서 어떠한 정치적 압력도 받지 않게끔 그 독자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전거와 그룹워크숍

뮌스터는 자전거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독일 내에서 자전거 이용자가 유독 많은 도시이다. 실제로 뮌스터의 상주인구 수의 두 배에 가까운 약 50만대의 자전거가 있을 정도이며, 시내를 빙 두른 원형 숲길처럼 곳곳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기 완벽한 코스들이 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는 이 특징을 살려 자전거를 타고 전시를 관람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관람객은 미술관 옆에서 자전거를 저렴하게 대여할 수 있으며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지도 또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확인하면서 시내 중심부에 있는 작품들부터 외곽쪽으로 몇 킬로 떨어진 작품까지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는 작품들을 이동하는 동안 탐험하듯 적극적으로 도시를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전시의 문턱을 낮추는 또 하나의 장치로, 주최 측은 또 관람객의 연령대, 국적, 배경 지식 수준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그룹 워크샵을 마련하고 있다. 각 작품에 연계된 워크샵이 있는가 하면 작품을 함께 돌아보는 그룹 투어가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워크샵들은 작품에 대한 기본 정보 제공 후, 관람객의 생각과 의견을 위주로 두 세시간 가량 토의를 진행한다.

이러한 공공미술 교육을 통해 넓은 범위의 관람객들이 저마다 작품과 전시로부터 구체적으로 의미 있는 순간을 하나씩 가지고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도시를 조각하는 조각들, 퍼블릭 컬렉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사실 네 달여의 전시가 막을 내리더라도 끝나지 않는다. 각 회마다 전시에 선보여진 작품 중 몇몇이 시민들에 의해 영구 소장용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퍼블릭 컬렉션’에 속한 이 작품들은 이후에 ‘조각 프로젝트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공공기금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 및 유지된다. 결과적으로 작품이 담아내는 당대 사회적 이슈와 기억이 도시에 남게 되고, 뮌스터시 곳곳에 서로 다른 시점의 십 년의 흔적들이 층층이 쌓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겨진 38점의 작품들은 이렇듯 도시경관을 바꾸어 왔고 뮌스터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매일 새롭게 경험되고 있다.

1258호 23면, 2022년 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