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 (9)

독일 속 한국가정에서 겪는 대표적 어려움은 자녀교육,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의 언어문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이를 위해 윤재원 박사의 논문 “ 다중 언어 시스템 속 우리의 아이들”을 매월 첫째 주에 연재한다. 전문적인 논문을 일반인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새로이 쉽게 풀어 연재를 해주시는 윤재원 박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청소년기의 다중언어 지식과 사용의 발달

못된 말은 다 독일어로 하고 한국어는 착하고 예쁜 말만 한다고

언어 학자 니폴드(Nippold)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언어 발달은 세 가지 큰 틀에서 볼 수 있다.

첫째, 구문론적인 발달로 문장의 길이와 복잡도가 증가한다. 그리고 문장을 길게 발화하기 위해 접속어 사용이나 종속절 등의 사용이 증가한다.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간단하게 혹은 짧막하게 말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제법 복잡한 문장과 구문을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부모와 입씨름을 제법 근사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둘째로는 의미론적인 발달이다. 고차원적인 어휘 사용, 즉 추상명사, 접속 부사,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용어 등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내 눈앞에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던 어린아이의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 학교에서 배운 것들에 대해 유려하게 설명하고, 티브이를 시청하면서 부모와 정치에 대하여도 갑론을박할 수 있으며 복잡한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말하고 자신의 감정도 점차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비유적 언어 사용도 늘어난다. 즉 ‘불빛이 태양처럼 이글 이글 빛난다‘ 등의 직유 및 은유 표현, 또한 관용구, 속담의 사용은 물론 농담과 유머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언어 사용면에서 또래와의 대화 빈도가 증가하게 된다. 이것은 청소년을 키우는 부모들은 아마 모두 골치를 썩이고 있는 부분일 텐데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도 계속해서 쉬지 않고 친구와 통화를 하거나 끊임없이 핸드폰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의사소통을 이렇게 빈번하게 하다 보니 이야기, 설명, 또한 설득하는 기술들이 골고루 발달하게 된다. 또래와의 빈번한 의사소통은 청소년기에 매우 결정적인 요소로 이야기 자체가 목적이지 어른들처럼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청소년의 언어 중에 눈에 띄는 또 한 가지는 욕설이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스타일을 드러내기 위해 각가지 새로운 표현을 발굴해 내고 테스트하는데 욕설도 빼놓을 수 없는 기호 중 하나이다. 청소년의 욕설은 가정과 학교, 사회의 훈육 대상으로 세월이 흐르며 청소년 욕설의 강도와 빈도도 높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청소년 시절의 욕설을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리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 테다 (교육기관에 있는 분들은 분명 다른 의견을 가지고 계실 것이고 청소년들이 바른말을 쓰는데 애쓰시는 그분들의 노고에 앞의 문장과는 무관하게 깊이 감사드린다).

삽화:노민선 작가

이 외에도 청소년기의 언어 발달에 눈에 띄는 것은 성차이이다. 남아와 여아 사이에 말하는 습관, 발음, 단어, 문법 등이 점점 더 차이가 많이 나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성인 남녀의 두드러지는 말 차이가 시작되는 시점이 청소년기이겠다.

그렇다면 다언어를 사용하는 청소년들은 이 시기에 어떤 특징을 보일까? 청년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의 이중언어 및 다중언어의 수준은 아이들마다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하나로 묶어서 일반화할 수 없다. 어렸을 때에 한국어를 곧잘 하다가도 청소년기에 조가비처럼 입을 다물어 버리는 아이들도 있고, 반면에 청소년이 되어 한국어를 청산유수처럼 하며 독일어와 비등한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다언어 수준이 어떻든 간에 일단 두 개 이상의 언어가 상호 작용하는 언어적 체계를 갖춘 이중 언어자들은 독특한 다언어적 체계를 가지게 된다. 특히 다중언어 청소년들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그들이 언어를 접해온 경험과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들 가정의 사회 경제적 상태도 반영한다. 한 개의 언어를 하는 개인은 가정 외에도 여러 다른 환경에서 그 언어와 접하기에 가정적인 배경이 언어에 절대적으로 반영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독일에서 살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접하고 배우는 독일어와 달리 가정에서만 한국어에 노출되는 한독가정 청소년들에게 한국어는 그들이 어떠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를 볼 수 있는 거울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독일어로는 뻔질나게 청소년 레벨에 맞는 욕설을 해댈지는 몰라도 한국어로는 욕할 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전혀 아이들에게 욕설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존댓말만을 가르쳤고, 아이들은 반말을 들은 적이 거의 없었다. 특히 한국어로 노는 친구가 없다 보니 아이들에게 한국어는 무조건 존댓말이다.

가끔 우리 집에 방문하는 한국인 손님들은 아이들이 어쩌면 저리도 순하고 예의 바르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 칭찬이 오래가게 두기 위해 나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반말을 가르친 적이 없어서 그래요“라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한국에 놀러 갈 때마다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고 착하고 한국어 잘한다 칭찬받는다. 커다란 덩치에 순수하고 착하게 한국어를 하는 청소년. 아마 한국에서는, 아니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그림이겠다.

반면 우리 아이들이 독일어로 말할 때, 남편은 그냥 씩씩대고 말 고치느라 난리다. 늘 아이들에게 훈육하는 말은 “내가 네 친구냐?” 혹은 “그런 말은 밖에서나 해라. 아빠에게 말할 때는 이렇게 말해라.”이다. 아이들이 사춘기 초반에 들었을 때 남편은 아이들의 말을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느라 부모의 역할을 한 몸에 떠안고 아이들을 훈육하느라 고생했다. 그러면서 맨날 억울해 했다. 못된 말은 다 독일어로 하고 한국어는 착하고 예쁜 말만 한다고. 나는 그저 뒷짐을 지고 아련한 눈으로 남편을 마음속으로 응원해 줬다. 그래, 뭔가 나만 좋은 것도 있어야지. 하하하.

이렇게 한국어 입력이 단일화된 채널, 즉 가정, 즉 엄마에게 한정되다 보니 엄마의 말을 그대로 배워 사용하기에 두 아이의 말씨는 여성적이다. 특히 이것은 큰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되었는데 해요체를 사용하는 나의 말씨를 그대로 배워 대부분의 말을 해요체로, 게다가 나의 억양과 단어를 사용하는 키가 2미터에 가까운 청소년 남학생을 보면 어딘가 어색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여성적인 말씨를 쓰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화자에게 노출되지 못하다 보니 한정적인 스타일의 언어 밖에 배우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이러다 보니 16세의 청소년 남학생의 한국어 자아는 부드럽고 엄마와 같은 말씨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타인에게 읽히게 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정체성은 “자신이 누구인가임과 동시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의 집합체”이기에 내가 어떠한 말투를 사용하는 가는 타인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삽화:노민선 작가

이러한 말씨가 더욱 발전되지 않고 그대로 머무른 다면, 언젠가 한국어만 사용하는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었을 때에 여자친구가 이 아이의 진정한 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중에 아이의 진면모를 파악하게 된 후 처음에 받았던 부드럽고 엄마 같은 모습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아마도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쉬운 것 중의 하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에 대해 말할 때인데 고차원적 개념을 학교에서 배우는 아이들은 이것을 한국어로 나에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어 사용보다 아이들과의 소통이 항상 우선하기에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말할 때는 결국 뼈다귀만 한국어지 단어는 모두 독일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아래의 대화는 우리 집에서 아주 비일비재한 일이다.

나: 엄마는 학교 다닐 때 미분까지는 어찌어찌 이해했는데 적분을 몰라서 수학 시간에 고생했다. 시험도 다 망하고.

큰아이: 미분이 뭔데요?

나: 아 미분, 적분? 엄마도 독일어로 몰라. 번역기 돌려보자

아이들이 핸드폰 가져와서 번역기 앱을 펼친다.

나: 미분이 Differential이고 적분이 Integral이네.

큰아이: 나는 디프랜셜, 인테그럴 둘 다 쉬운데

나: 그럼 다행이야. 미분 적분 잘 배워두고 엄마 나중에 가르쳐줘.

또 다른 맥락에서 학교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역시 독일어 단어 없이 매끄러운 대화는 힘들다. 다음은 학교 다녀와서 작은 아이와의 대화이다.

작은 아이: (징징대며) 엄마 나 오늘 파우제 (Pause) 때 아나랑 놀다가 무릎 다쳤어요.

나: 넌 아직도 쉬는 시간에 뛰어노냐?

작은 아이: 나 내일 zweite Stunde entfall이야. 집에 올 건데 엄마 집에 있어요?

나: zweite Stunde면 2교시지? 그럼 몇 시예요?

작은 아이: 9시 정도?

나: 엄마 집에 있을 거야.

작은 아이: 오케이, 그럼 친구 데려올게요.

나: 코로나에 친구랑 마스크 안 쓰고 붙어 있으면 안되지.

작은 아이: 계속 테스트해서 괜찮아요…

이렇게 학교에 관한 여러 가지 용어들은 한국어로 가르쳐줘도 받아서 쓰는 말이 있고 계속해서 독일어만을 고집해서 쓰는 말들이 있는데 그것은 학교 일은 독일어로 고정된 아이들의 습관 때문이지 그 단어를 한국어로 몰라서는 아니다.

삽화:노민선 작가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는 다중언어 사용 청소년의 이야기하는 방식은 특정한 언어 발달에 달렸다기보다 전반적인 그들의 인지적인 능력에 달렸다. 이것은 독일어나 한국어 둘 중 하나의 이야기 방식이 잘 발달되어 있으면 다른 언어에 긍정적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일단 하나의 언어가 그 나이 단일 언어 사용자 기준에 맞게 발달되어 있으면 덜 발달된 다른 언어들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즉 독일어든 한국어든 영어든 하나의 언어가 잘 발달되어 있으면 나머지 언어들은 잘 발달된 언어의 수혜를 받아 빨리 발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달은 그냥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나 선생님이 개입해서 끊임없이 정확하게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예시를 보여줘야만 그것을 스펀지처럼 빨리 받아들일 수 있다.

단일 언어자에 비해 언어의 음률과 문법 규칙을 발견하는 데에 훨씬 더 예민한 아이들은 다른 언어 뿐 아니라 지방 사투리까지 정확하게 받아 따라하고 그 규칙을 금세 익혀 사용한다. 그러한 능력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발화를 하는지까지 알아내는 능력까지 발달될 수 있는데 이것은 결국 타인을 잘 이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탄력성으로 발전된다.

즉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포함된 조망수용능력이 잘 발달된다는 것으로 이것이 높으면 원만한 사회적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고 이러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 작금의 시대에 문화 간 충돌로 생기는 전쟁과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순진무구한 관망을 하면서 이번 연재를 마친다.

<기고자 소개>
• 현 독일 루르 보훔대학교 한국학 강사, 쾰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사회 언어학 및 어린이 다중언어 발달 교육 강사
• 기업 이문화 컨설턴트 (Interkuturelle Beratung, Cross-cultural consultant)
• 독일 쾰른대학교, 다중언어 어린이 한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로 언어학 박사
•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UMBC) 언어문화교육 석사
• 현 11학년과 10학년 자녀의 엄마

1258호 20면, 2022년 3월 11일